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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르다 Sep 10. 2021

적당한 위로

입추라고 적혀있던 날

살다 보면 아주 죽을 만큼은 아니고,

우울해서 금방이라도 바닥에 딱 붙어버릴 만큼 또한 아니고,

그저 적당히 울적해지는 날이 있다.

하루 속에서 묵묵히 수행해내는 일련의 과정들이

특별히 빛나는 것도 아니고

특별히 괴로운 것 또한 아니었으나

적당하고 별스럽지 않은,

그래서 대놓고 울상 짓기도 멋쩍어

'그냥 좀 울적하다' 쯤으로 마무리해야만 하는 날이 있다.

-

그런 날에 어쭙잖은 위로의 말 대신 나를 태우고

15분을 차로 달려갈 수 있는 카페에 가주는

당신에게 감사하다.

멀지도, 그렇다고 가깝지도 않은 15분의 거리.

그 카페의 커피는 5천 원이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치고는 비싼 편이지만

나는 이 맛을 좋아하고 그래서 싸지도 비싸지도

않게 여긴다.

우리는 오며 가며 별 말이 없다.

그저 앞질러가는 주인 모르는 차들의 번호판을

눈으로 익히는 무의미한 행동을 할 뿐이다.

4701 3823 4576 6721...

-

늦은 밤 별말 없이 5천 원짜리 커피를 사고

돌아오는 것만으로도 그날의 울적함은

딱 그 크기만큼의 위로를 받는다.

-

돌아오는 길에는 마침 선선해진 날씨 덕분에

내친김에 '내일은 좀 기운을 내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물론 그런 호기로운 마음은 다음 날이면 뜨거운

8월의 땡볕에 보기 좋게 내팽개쳐지기도 하지만

달력에 '입추'라고 쓰여있으니,

뜨거운 날씨도 저녁이면 입추다운 위로를 건넨.

-

누구에게든, 무엇으로든 위로라고 불리는 것을

주고받지만 적당한 위로는 어렵다.

크기에 딱 맞추지 못하면 하나마나받으나마나,

어쩐지 입맛이 깔깔해진다.

-

완연해진 가을에 날씨야 마음을 이리저리 잘도

휘두르며 쓸어내려준다만,

나는 크기에 알맞은 위로를 건네기엔

아무래도 센스가 부족한 사람인가 보다.

-

아니면 사랑이 부족한 걸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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