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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씀 Mar 25. 2024

불행 속에는 날개가 있다


그거 아실까요? 


불행 속에는 날개가 있다는 거. 살다가 불행의 늪으로 가라앉을 때, 아무리 버둥대고 애를 써도 도무지 길이 보이지 않을 때. 견디다가 견디다가, 그래 이제 내려놓자. 여기까지 버틴 것도 잘한 일이야. 괜찮아, 할 만큼 했어. 하- 가는 숨 내쉬며 몸 안의 산소 다 내보내고, 수면 가까이 내 모습이 선명해지는 순간.


아니야, 그러지 마. 그러면 안돼. 갑자기 내 몸에서 왈칵 날개가 펼쳐진다는 사실을. 아직 안된다고 날개를 퍼득이며 제 몸을 띄우려 안간힘을 쓴다는 것을. 게다가 그 날개는 사람의 손을 닮았다는 것을. 내가 아는 손의 형상들이 중첩되어 날개를 구성하고 불행의 늪에서 나를 건져 올린다는 것을, 혹시 알고 계실까요?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접어둔 날개가 있고, 결정적인 위기의 순간이 되면 '에어백'처럼 펑- 하고 터지도록 준비되어 있어요. 날개의 출현, 이것으로 유추해 보면 어쩌면 천사는 행복이 있는 곳이 아니라 불행이 있는 곳에 사는 것 같네요. 기억해야겠어요. 우리의 날개는 불행한 순간에 돋아난다는 걸, 천사는 불행의 순간에 내 옆에 있다는 것을.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완벽해지려고 애쓰는 사람이래요. '완벽'이 무엇인가요. 완전히 벽으로 둘러 막힌 상태가 아닌가요? 나를 만나는 사람들이 숨이 턱! 막히는 벽을 느낀다면 얼마나 불행할까요. 사람의 몸도 영혼도 틈이 없으면 숨을 쉴 수 없어요. 틈이 있어야 빛도 공기도 들어오는 거니까요. 빈틈 하나 없는 벽으로 둘러싸인 독방에서 행복할 수 있을까요? 아니 살 수나 있을까요?


구멍을 뚫어 놓지 않으면 터지는 군밤처럼 사람도 생존을 위해 '구멍'을 만들어야 해요. 이란 사람들이 카펫에 의도적으로 남겨 놓은 '페르시아의 흠'과 인디언들이 목걸이에 일부러 꿰어 넣은 살짝 깨진 '영혼의 구슬'처럼 일부러라도 빈틈을 만들어야 해요. 의도적 실수, 계산된 허점, 고의로 열어 놓은 마음의 문. 이런 빈틈은 쉴 틈이고, 살 틈이기 때문이지요. 막힌 혈관을 뚫듯 틈새를 만드는 일은 아무리 힘들어도 해야만 하는 일이거든요. 이미 빈 틈이 충분히 많다면 그건 행운이지요.



혹시,


불행해지는 비결은 무언지 아실까요? 흠, 불행의 비결은 '남처럼 행복했으면' 하고 바라는 거래요. 맞는 것 같아요. '비교'때문이 아니라, 과연 내가 <남처럼> 행복할 수 있을까요? 남의 행복과 나의 행복은 결코 같을 수 없는데. 남의 불행과 나의 불행이 다른 것처럼. 남을 기준으로 삼거나 남에게 기대하면 어김없이 실망하게 되잖아요.


타인의 날개로 나는 새를 본 적이 있나요? 모든 새는 자기의 날개로 날고 있어요.  날개를 달고 태어난 이상 자기의 날개로 날아야 해요. 남을 따라 날지 않아야 하는 거죠. 남들처럼 빠르게 날 필요도 없고 그냥 내 속도대로, 내가 가고 싶은 대로 날면 되는 거지요. 그러다 보면, 푸른 창공 속에서 자기도 모르게 싱겁게 웃으며 '아, 행복하다.' 하는 순간이 올 거예요.


이제 접어 두었던 날개를 펴고 새처럼 날았으면 좋겠어요. 새도 날개를 펴지 않고는 날 수 없듯이, 사람도 마음을 열지 않고는 수 없어요. 보여주지 않는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은 세상에 없거든요. 새의 사명이 하늘을 나는 거라면 사람의 사명은 마음을 펼쳐 세상을 나는 게 아닐까요? 두렵지만 날개를 펴는 어린 새처럼, 용기를 내 마음을 열기로 해요그리고 마음껏 사랑하며 세상을 날아 보아





딸 그림, 나를 살리는 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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