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로 나는 어려운 문제에 봉착할 때마다 나 자신은 물론 직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신이 손을 뻗어 도와주고 싶을 정도로 일에 전념하라. 그러면 아무리 고통스러운 일일지라도 반드시 신이 손을 내밀 것이고, 반드시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나모리 가즈오, '왜 일하는가?' 중)
역경은 어떻게 경력이 되는가.
그냥 얻어지는 경력은 없다며, 경력을 거꾸로 읽어 보라고 한다. 역경을 견뎌야 경력이 되는 거라고 말한다. 역경을 이겨내고 피어난 꽃이 가장 아름답다고 말한다. 추위와 비바람을 맞지 않고 온실 속에서 자란 꽃도 아름답지만, 눈보라 속에서 모질게 피는 꽃에 비할 수 없다고 한다. 나도 안다. 어쩌란 말인가. 그냥 참아내기만 하면 된다는 것인가.
같은 후배라도 일부러 참견하여 도와주고 싶은 사람이 있고, 그래 네 마음대로 한번 해 보라고 외면하게 되는 사람이 있다. 고민 없이 묻기만 하거나, 묻지 않고 고민만 하거나, 묻지도 고민하지도 않는 경우가 그렇다. 선배는 후배의 물음 속에서 고민의 벼랑 끝을 보았을 때, 손을 내밀고 싶어 한다. 자기가 그랬듯 그 벼랑 끝에서 선배의 흔적을 따라 도움을 요청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해답으로 가는 길이 어려울 순 있어도 답이 없는 문제는 없다. 세상 모든 역경에는 반드시 먼저 지나간 선배가 있다는 걸 기억하자.
고민의 벼랑 끝에서 역경은 경력이 된다.
어떤 난관을 극복하려면 먼저 난관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역경도 마찬가지다. 아, 지금 역경이 왔구나. 그래, 올 것은 오고 갈 것은 가는 거지. 어차피 내게만 오는 것도 아니니, 한 번 끝까지 가보는 거야. 이렇게 '역경'을 똑바로 바라보고, '어떻게'를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역경을 '기회'나 '축복'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취해야 한다. 동화작가 안데르센은, 가난했기에 '성냥팔이 소녀'를 쓸 수 있었고, 못생겼다고 놀림을 받았기에 '미운 오리 새끼'를 쓸 수 있었다며, 자신의 역경이 축복이었다고 회고한 적이 있다.
자기 집이 무너진 것을 발견했을 때, 개미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집 지을 재료를 다시 모으는 일이라고 한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냐고 슬퍼하거나 분노하는 일은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주기적으로 역경이나 위기가 찾아온다. 그때 나는 "왜"를 생각할 것인가, "어떻게"를 생각할 것인가. 위기는 '위험한 기회'일 뿐이고, 역경은 '축복받은 경력'일 뿐이다. 최선을 다해 고민하고 또 고민하자.
나는 여기가 체질이 아닌가 봐요. 일이 내 적성에 안 맞는 것 같아요. 입사한 지 두 달도 지나지 않아 공공연히 이런 말 하는 후배가 있다. 우리는 적성에 맞는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일에 적성을 맞추는 사람들이다. 체질이나 적성은 맡겨진 일을 해내려고 애쓰다 생겨나는 익숙함이고. 맡은 업무가 낯설면 낯설수록 설렘은 더 뜨거운 것이다. 그 두근거림을 즐겨야 한다고 말해 주고 싶다. 그래야 축복도 되고 경력도 된다는 것을. 어떻게든 지금에 전념하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