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시 알람 진동에 눈을 떴다. 메테오라 수도원을 가려면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몸이 움직여지지가 않는다. 가만히 이마에 손을 대보니 다행히도 열은 나지 않았다. 오늘 무리하면 안 되겠다 싶어 알람을 끄고 잠을 더 청해 본다.(만약 같이 갈 일행이 있었다면 약속 때문이라도 힘겹게 일어났을 것이다.)
돈 들여 멀리까지 와서 가급적 많은 곳을 돌아보고 싶은 욕심은 첫날부터 가진 마음이어서 계획이 틀어진 날은 조금씩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언제 또 이곳에 와볼 수 있을지 모르는데 이걸 못 보고 가는 아쉬움이란... 혹시 몸이 아플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중간중간 쉬어가는 날도 만들어놨는데...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예기치 못하게 일정을 쉬어야 하는 날은 어김없이 속이 상했다. (이 시간도 소중하게 즐길 수 있음을 이때까진 알지 못했다.)
조식을 먹고 천천히 나갈 준비를 했다.(한인민박은 청소시간에 가급적 외출해있기를 권한다.)피곤했지만 아프진 않았기에 오늘 하루 가벼운 산책 정도로만 돌아보기로 했다.
숙소와 가까운 곳에 사설 박물관인 베나키 박물관이 있었다. 민박집 사장님께서 추천했던 곳 중 하나이다.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가 보았다. 개인 소장품을 전시해 놓은 것 치고는 꽤 깊이가 있어 흥미롭게 관람했다. 박물관이 크지 않아 금방 돌아보고 또다시 길을 나섰다.
걷다 보니 국립 역사박물관이 보여 들어가 보았다. 이곳은 주로 근대 그리스의 모습이 담긴 전시물이 주를 이루었는데 결론적으로.. 그저 그랬다.(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다.) 어제 봤던 박물관 덕분에 눈이 높아진 탓인 걸까.
조금 더 걸어 아테네의 중심지 신타그마 광장(우리나라의 서울광장과 비슷한 곳)을 중심으로 형성된 주변 번화가를 지나 아크로폴리스 지구에 들어왔다. 파르테논 신전이 있는 이곳은 아테네의 최대 관광지이자 상권이다.(경복궁과 명동이 합쳐진 형태라고 생각하면 쉽다.) 남은 시간들은 이곳에서 더 보내고 싶었다. 점심으로 이틀 전 먹었던 타나시스를 한번 더 먹고 후식으로는 요거트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그리스 요거트는 매일 사 먹고 있는데 맛있고 또 맛있다.
고대 아테네 국립묘지
발걸음을 옮기다 보니 고대 아테네 국립묘지가 나온다. 그리 넓지 않아한 바퀴 휙 돌며 빠르게관람해본다. 아크로폴리스 주변은 이런 곳이 많다. 복원 중인곳도 많았는데 아무렇게나 널려 있는 돌 같아도 가까이서 보면 옛 터이다. 일반 주택가에 버려진 돌들도 왠지 그 옛날에 있었던 돌 같아 예사롭지 않아 보였다.
아크로폴리스 언덕과 파르테논 신전이 한눈에 보이는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그리고 프라페 커피 한잔을 시켰다. 그리스에 와서 발견한 프라페 커피는 진한 아메리카노에 생크림을 많이 섞어 놓은 형태인데 정말 맛있다. 커피를 마시며 주변을 보니 맑은 날씨가 경치를 더 아름답게 해 준다. 우뚝 솟은 파르테논 신전은 아테네의 존재 이유를 더 상기시켜 주는 듯했다. 밤에 와도 멋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으나 혼자서 이 번화가를 다시 찾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사람이 붐비는 이곳에 소매치기가 많다고 한다.) 파르테논 신전을 바라보며 한낮의 여유를 즐기고 있는 나 자신을 보니 참 뿌듯했다. 나른함이 몰려와 기지개도 펴본다.
'오늘 메테오라 수도원을 갔으며 더 좋았을까?'
그곳에 가지 못한 아쉬움이 계속 생각이 난다.사실 몰타에서도 가까운 시칠리아 여행을 잠시 다녀오고 싶었으나 여러 여건들 때문에 가지 못했었다. 대신 몰타에 더 집중하며 시간을 보냈었는데 포기한 것에 대한 미련이 계속 남아 아쉬움은 그대로 남아있었다. 앞으로 여행을 계속하면서 포기해야 하는 부분들이 또 생길 텐데 어떻게 마음을 다잡아야 할지 계속 고민하게 되었다.
저녁으로는 뭘 먹어볼까 고민하다 그리스 음식인 기로스를 먹었다. 별것 아닌 조합이었지만 굉장히 맛있었다. 기로스를 손에 들고 신타그마광장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리스의 많은 역사적 사건들이 신타그마 광장과 연결되어 있겠지? 마치 우리나라의 서울 광장처럼 말이다. 신타그마 광장을 비롯한 아크로폴리스 언덕 주변은 3일 내내 와서 그런지 이제 안 보고도 길을 외울 정도다. 이렇게 직접 찾아보고 발로 걸어본 여행지는 지금도 그 길이 기억이 난다. 다시 가보라고 해도 찾아갈 정도다. 자유여행의 장점 중 하나이다.
사람들이 한가득 있던 곳을 빠져나와 신타그마 광장 국회의사당 뒤편 거리로 나가니 한적한 거리가 나온다.숙소로 돌아갈까 하다가 내일 또 이곳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아쉬워서 괜히 길을 걸으며 시간을 보내본다.
'지금쯤 한국에 있었다면 주말만 바라보며 정신없이 직장 생활을 하고 있겠지?'
지극히 평범했던 일상을 뒤로하고 모험 같은 유럽 여행을 선택하고 실행에 옮긴 내가 대견하게 느껴져 웃음이 났다. 두려움도 많았지만 일단 저지르고 나니 생각했던 것보다 편안하고 행복하다. 물론 중간중간 느껴지는 외로움과 혼자서 모든 걸 다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지만 아직까지는 그럭저럭 해볼 만하다. 몰타에서 했던 결혼에 대한 고민도 문득문득 들지만 아직까지는 결혼보단 연애가 좋다.
숙소로 돌아와 짐을 정리한 후 자리에 누웠다. 룸메이트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었는데 엊그제 메테오라 수도원에 다녀온 분의 감탄을 들으니 묻어두었던 미련이 또 생각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