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그 만큼의 시간이 흘렀다. 낯선 땅 미국에서 가족과 함께 지낸 그 세월이 4년하고도 반이었다. 귀국 후 딱 4년하고 반이 흘렀다. 그럼에도 내 머릿 속에 그곳에서의 생활은 너무 생생하다. 내가 다니던 거리, 내가 늘 장보러 다니던 코스트코, 매일같이 들락날락 하던 우리 애들이 다니던 학교와 뛰놀던 플레이그라운드, 격일로 다니던 대학원의 한 시간 운전길, 일요일마다 설교를 들으며 꾸벅꾸벅 졸던 그 예배당....
일상의 많은 시간을 그 낯선 곳에서 보내면서 어느 덧 그곳은 내 마음에 아주 친숙한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그런 곳을 뒤로하고 귀국한 지가 딱 그곳에서 보낸 시간만큼 흘렀다. 하지만 그 공간에 대한 기억과 그곳에서 가진 나의 생각들과 나의 마음들은 여전히 생생하다.
그곳의 삶도 참 녹녹하진 않았다. 하지만 그곳의 삶을 생각하면 ‘나 그때 참 열심히 열정적으로 살았었지.’하는 마음이 절로 든다. 당연한 것이 하나도 없던 그곳에서 일상은 도전이 되는 일로 가득했다. 말 그대로 공중에 둥둥 떠다니는 깃털인 양 나와 우리 가족은 마음 속 안정감을 쉽게 가질 수는 없었다. 행여나 거센 비나 센 바람이 일면 그 깃털은 그저 그 비와 바람을 피할 길 없이 그저 이리저리 날릴 수 밖에 없는 노릇이다. 그런 나의 상황에서 밀튼 할아버지과 레인할머니는 늘 격려와 힘을 주던 마음의 안식처가 되어 주셨다.
신앙심이 깊은 그 두 분의 일상은 나에게 귀감이 되었다. 낯선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사람들과 함께할 때 대화법, 그리고 나의 고민을 들어주시는 그 마음씀씀이 등, 그리고 늘 검소한 생활과 옷차림, ...... 학위를 따러 간 그곳에서 나는 학위보다 더 소중한 배움을 그 두분으로부터 얻었다. 그 배움이 나의 마음 속 깊이 자리 잡길 바라며 그 두분과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곳을 떠나오며 그곳에서의 따뜻했던 추억과 소중한 배움을 마음 깊이 안전히 잘 보관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 기억과 마음의 온도는 시간이 흐르며 조금씩 모래성이 무너지듯 스스로 마음에서 옅어지고 있다. 그분들의 삶의 태도와 가치, 철학 그 무형의 것을 내 머릿속으로 간직하기란 쉽지 않았다. 구체적인 행동을 눈에 자주 보지 못한 공간에서 그분들처럼 살아보리라 마음 먹기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그분들처럼 살고 싶었다.
▮별똥별
사실 2년 전 그분들이 우리를 방문할 때만 해도 나는 그저 신기했다. 꿈 속 사람이 살아서 내 앞에 온 것 같은 그런 신기함이 내 마음 가득했다. 그래서 여기저기 관광지를 함께 다녔다. 특히 레인 할머니는 그 방문이 생전 처음인 한국 여행이었기에 더더욱 한국적인 것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2년이 지난 이번 가을. 다시 두 분이 한국을 방문하신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그분들이 문득 우리를 찾아오신다고 하신다. 한밤중 깜깜한 밤하늘을 무심히 바라보다 반짝이는 별똥별이 떨어지는 걸 본 것 만큼 나에게는 신나고 반가웠다. 특히 이번 가을은 귀국 한 이후 최고의 위기을 맞이하던 시기였다. 나의 직업과 생활은 많은 안정을 맞이했지만 사춘기에 접어든 고1 아들을 어떻게 잘 이끌어야 할지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했다. 신앙심도 사라져가는 것 같은 아들, 학교 시험과 평가에 대한 회의감을 가지며 1학기 기말고사 시험을 대놓고 버려버리는 아들, 그걸 바라보는 엄마의 마음은 이루 말로 표현하지 못 할 만큼 답답했다. 일일이 간섭하는 것도 답이 아니였다. 그래 그렇게 하렴하며 망연자실 바라만 보는 것도 할 수 없었다. 우리나라의 말도 안되는 입시 제도를 정면으로 거부하는 아들에게 그걸 이해시킬 도리도 없었다.
이 일을 어떻게 해야하나. 밤마다 집 앞 강변을 걸으며 그저 내 마음을 달래며 하루를 인내하고 있었던 때였다. 이럴 때 그 두분이 내 곁에 있다면 얼마나 나에게 의지가 될까? 그리워하고 그리워했다. 그런데 진짜 내 소원이 이뤄졌다. 아무런 말도 없이 카톡 문자가 와 있었다. 2주 후에 한국 방문을 할 예정이란다. 우리가 사는 곳에서 닷새나 계실 수 있다고 한다. 물론 그 두분의 방문 일정은 참 빠듯했다. 일본, 괌, 한국이 4주간 그분들의 방문 장소이다.
▮꿈 같은 4일의 일상 (Day1): 무심, 무뚝뚝한 사춘기 아들도 설렘
드디어 그분들을 모시러 가기로 한 날이다. 금요일 퇴근 후 남편과 둘이 부산으로 내려가서 그곳의 지인들과 저녁을 함께 먹고 그길로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로 모셔오는 날이 다가왔다. 당연히 아들은 우리와 동행하지 않을 것 같아 미리 물어보지도 않았다. 그날 아침 혹시나하는 마음에 물었다. “오늘 오후에 부산으로 너도 같이 갈거니?” “응~.” 그 짧은 대답이었지만 나에겐 참 반가운 대답이었다. 마음의 문을 닫고 있는 고1 아들에게 그 두분 만큼은 아직 그 아들의 마음속 열쇠를 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에서 초등학교를 다 보내고 온 아들에게 그 세월 밀튼 할아버지는 친할아버지 만큼이나 아들을 챙겨주시고 든든한 아들 편이 되어주셨다. 그런 할아버지가 오신다니 아들은 무척 반가웠던 모양이다. 딱히 얼굴 표정은 그런 마음을 드러내진 않았으나 아픈 허리에도 불구하고 세시간 정도의 왕복 거리를 마다하지 않는다는 거다.
역시나 퇴근 후 부산행 고속도로는 정차가 많이 되었고 예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식당에 들어서니 이미 나머지 일행들은 도착했고 식사를 한창 하고 계셨다. 연신 말없이 먹기만 아들, 그럼에도 어른들의 이야기에 귀를 열고 있다. 그렇게 두 시간의 정신없는 뷔페식 식당에서의 시간이 지나고 두 분을 모시고 조용한 밤길을 나섰다. 오는 길 내내 나와 레인 할머니의이런 저런 밀린 수다로 그 길을 채웠다.
▮꿈 같은 4일의 일상 (Day2): 영어 스터디 & 좋은 사람들
이번 여행에서는 내가 만나는 사람들을 그 두 분의 친구로 맺어주고 싶었다. 2년전부터 운영하고 있는 영어 스터디의 멤버들은 조금씩 변동이 있었지만 최근 모이게 된 분들은 대체로 영어 공부에 진심이신 분들이시고 웬만큼 영어로 소통을 하실 수 있는 수준이다. 최근 읽고 있던 <Number the Stars>는 성경적 세계관을 바탕에 두고 있다. 그런 만큼 두 분을 모시고 함께 그 책을 읽는 것도 의미있는 시간이 될 것 같았다. 더군다나 그분들의 삶이 나 뿐 아니라 스터디 멤버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치길 바랬다.
그리고 내가 미국에 있을 동안 나의 대학 동기 중 두 명이 그 두 분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 친구들도 그 스터디 모임에 별도로 초대했다. 특히 그 중 한 명은 싱글인데 최근 많이 지쳐보였다. 직업에서 보람도 시큰둥하고 삶의 의미를 찾는 것도 쉽지 않다고 했다. 그런 그 친구에게 신앙적인 버팀이 필요할 것도 같았다. 하지만 알량한 나의 신앙심과 나의 삶으로는 그 친구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절호의 기회가 온 셈이다. 다행히 그 친구도 흔쾌히 모임에 왔다. 나머지 한 친구도 예전의 기억을 떠올리며 두 분께 드릴 선물까지 준비해서 왔다.
신기했다. 30년이란 오랜 세월 전부터 알고 지내던 내 대학 동기에서 최근 알게된 분들, 그리고 저 먼 나라에서 알고 지내던 좋은 사람들과 이곳에서 알고 지내는 사람들이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있는 그 느낌은 마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고 있는 착각마저 들었다. 그 사람들의 유일한 공통 분모는 나 한 명이다. 그래서 다들 나와 어떻게 만났는 지를 먼저 나누고 각자 자신의 이름을 소개했다. 이렇게 점 하나가 여러 점을 연결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랍다. 점이 점을 연결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아무 점을 연결하지 않고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점으로 연결한다는 건 참 소중한 일이다.
누가 시켜서 그 모임을 주선한 것도 아니다. 그저 그렇게 좋은 사람을 좋은 사람들에게 소개해주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일었다. 우리 가족이 미국에서 보내던 시절, 두 분과 함께 찍은 사진을 짧은 영상으로 제작해서 깜짝 선물로 보여드렸다. 1분 남짓한 영상이지만 많은 추억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스터디 문을 열고 레인 할머니가 평소 아끼는 성경 구절도 함께 나눴다.
And we know that for those who love God all things work together for good, for those who are called according to his purpose.
-Romans 8:28-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계획대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결국 모든 일이 유익하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로마서 8:28-
그리고 크리스찬으로서 삶을 사시면서 힘든 시절을 어떻게 지혜롭게 보낼 수 있었는 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다.
말씀이 아닌 행동으로 그 믿음을 실천하시는 두 분임을 알기에 더욱 마음에 새겨졌다. 그리고 함께 읽던 소설책 <Numbe the Stars>의 Ch.15를 서로 돌아가며 읽었다. 역시 두 분도 동참하셨다.
그날 읽은 부분은 우연인 듯 일어난 일련의 일들이 결국 주인공을 좀 더 성숙되게 만들었고 그의 용감함은 결국 어린아이의 순수함에서 비롯된다는 메시지가 담겨있다.
<Mathew 18:3>
And he said: “Truly I tell you, unless you change and become like little
children, you will never enter the kingdom of heaven.
그가 말씀하셨다: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변하여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두 분에게도 역시나 하나님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 그 위기의 시간들을 견딜 수 있게 했다고 하셨다. 읽고 있던 소설의 밑바탕이 두 분의 신앙과 정확히 일치한 덕분에 오늘 스터디는 어느 때보다 풍성한 이야기로 채워졌다.
약 2시간 가량의 스터디가 아쉬워 점심 식사도 하고 함께 미술관도 방문했다. 안타깝게도 미술관이 새로운 전시를 위한 준비기간이라 많은 작품을 감상할 수는 없었다. 그런 핑계로 짧게 감상하고 근처 커피 숍에서 다시 대화를 이어나갔다. 미리 예약을 해야 하는 세미나룸이 운좋게 바로 예약하지도 않았지만 사용할 수 있었다. 거의 10명이 넘는 대군이라 같은 주제로 줄곧 대화를 나누진 않았지만, 두 분에게 각각 삼삼오오 어울려 다양한 소재를 넘나들면 대화를 나누었다. 이제 그들은 낯선 사람이 아닌 서로 아는 사람으로 되어가고 있다. 이제 이 대화를 끝내야 하는 시간이 곧 다가오겠지만 또 언제라도 다시 만나면 오늘을 기억하며 낯섦이 아닌 아는 사이로 되어 더 깊은 대화를 할 수 있겠지?하는 기대를 하며 그날의 아쉬움을 서로 달랬다.
▮꿈 같은 4일의 일상 (Day2 밤): 힐링 아지트 & 우리 넷
마침내 딱 우리 넷이 오롯이 편안하게 대화를 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남편의 힐링 아지트는 포도밭 한 가운데 위치한 아지트이다. 그곳에서 조촐한 불멍의 시간을 가졌다. 남편은 밀튼 할아버지와 나는 레인 할머니와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할머니에게 나의 근심이 되던 이야기를 다 털어놓고 나니 한결 마음이 후련했다. 늘 그렇든 할머니는 물끄러미 나를 바라봐주시고 나의 이야기를 들어 주셨다. 그리고 나의 속내를 잘 헤아리시는 듯 나를 위해 기도해주마 하신다.
그렇게 나의 이야기를 온전히 들어주시니 너무 감사했다. 특히 전적으로 의지하고 그분의 삶을 닮아가고 싶은 나로서는 더욱 그렇다. 이제 내가 가진 삶의 고달픔과 슬픔은 나 혼자의 게 아니라 나를 알고 계시는 그분도 알고 계시니 그 사실 만으로 든든하다. 그리고 할머니께서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신다고 하니 더욱 그렇다.
저녁마다 집앞 산책을 하곤 한다. 마음이 놓이지 않는 날 특히 레인 할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더욱 강해진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 듯 할머니께서 어느 날 나에게 이런 문자를 보내오셨다.
“We continue to pray for your prayer requests.
In my Bible reading, I read some verses I thought might be helpful and encouraging to you and especially your two children.
Philippians 4:6-7, Psalm 16:11, Psalm 46:1. I hope these verses (and the Bible is full of encouragement) will give hope and wisdom to you all.
❤❤
Philippians 4:6-7
English (NIV):
"Do not be anxious about anything, but in every situation, by prayer and petition, with thanksgiving, present your requests to God. And the peace of God, which transcends all understanding, will guard your hearts and your minds in Christ Jesus."
Korean (개역개정):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Psalm 16:11
English (NIV):
"You make known to me the path of life; you will fill me with joy in your presence, with eternal pleasures at your right hand."
Korean (개역개정):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Psalm 46:1
English (NIV):
"God is our refuge and strength, an ever-present help in trouble.“
Korean (개역개정):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꿈 같은 4일의 일상 (Day3): 함께 교회 예배
전날 자정을 넘어서야 자리를 털고 숙소로 모셔드렸다. 젊은 사람들에게도 힘겨울 여정이지만 두 분은 기꺼이 우리와의 시간을 허락하셨다. 이튿날 귀국 후 우리가 다니던 교회로 초대를 했다. 두 분을 모시고 모처럼 두 아이도 함께 예배를 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했다. 하지만 아들은 두 달 전 농구를 하다 입은 허리 부상으로 컨디션이 좋지 않아 결국 그날 아침 예배를 함께 하지 못 했다. 같이 가고싶은 아들이었을 테지만 그러지 못 하고 혼자 집에 덩그러니 남아 있을 아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웠다.
우리가 다니는 교회는 대형 교회 중 하나라 목사님을 만나는 것도 미리 약속을 잡아야 한다. 다행히 2주 전에 약속을 잡아 예배 후 잠시 시간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복도에 서서 5분 간의 대화만 가능했다. 딱히 만나야 할 이유가 없는 두 사람이다. 그럼에도 굳이 두 분을 만나게 하고 싶었다. 내가 알고 지내는 좋은 미국 장로님 내외가 모처럼 온 한국에 내가 다니는 교회의 목사님이 어떤 분이신지 소개해드려 두 분의 의견을 여쭙고 싶기도 하고 먼 훗날 어떻게든 서로를 알고 지내는 것이 도움이 되지 해가 될 리가 없기에 그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이건 다분히 어메리칸 스타일이긴 하다. 하지만 한국에서도 그 소설 네트워킹이 중요해지는 사회이니 손해볼 일도 아니다 싶어 결국 두 분을 만날 수 있게 자리를 짧지만 마련했다.
다행히 목사님이 기쁘게 반겨주셨고 밀튼, 레인도 대화를 잘 이어나가주셨다. 짧은 만남을 하고 다시 교회 소모임 멤버들과의 약속 장소로 향했다. 같은 신앙인으로 국적은 다르지만 서로를 위해 기도를 해주는 건 참 의미있는 일이다 생각했다. 사실 두 분이 이 곳으로 온 이유는 일본과 괌에 설립한 교회를 방문해서 그곳 운영을 좀 더 원활히 하게 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고 하셨다. 그리고 새롭게 크리스찬 학생들을 위한 영어 캠프도 운영해보고 싶은 계획이 있어서 거기에 대한 시장 조사도 하고 싶다고 하셨다.
신기하게도 그 모임 멤버중에 이미 미국으로 여름방학 영어 캠프를 보내는 영어 학원 원장님이 계셔서 소개시켜드리고 구체적인 대화를 많이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우연히 만난 사람들 사이에서 그렇게 필요한 정보를 가진 사람을 만나게 되는 것도 신기하다. 역시 사람은 사람을 만나야 일을 할 수 있다는 나의 신념대로 일부러 이렇게 모임을 주선한 게 잘 한 일이라는 생각에 스스로 보람을 찾았다.
▮꿈 같은 4일의 일상 (Day3 밤): 저녁 불빛 공원 & 우리 가족들
일요일 저녁은 나의 가족을 다시 만나게 해드리고 싶었다. 신앙심이 없는 나의 가족들 특히 언니네, 동생네, 그리고 조카들에게 밀튼, 레인 할머니와 더 시간을 갖게 해주고 싶었다. 집 근처 공원에 들러 산책을 간단하게 했다. 별 기대없이 들른 공원인데, 그날 보니 아름다운 불빛 장식을 특별히 해두었다. 조용한 시골 마을에 위치한 그 공원을 30분 정도 거닐면서 어쨌든 아들과 밀튼 할아버지의 대화가 이뤄지길 기대했지만 결국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소 늦은 일요일 저녁이지만 인근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겼지만 역시나 언어의 장벽은 높았고 사춘기 아들의 마음의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꿈 같은 4일의 일상 (Day4 마지막 밤): 월요일 퇴근 & 우리 여섯
월요일 오전은 평소처럼 학교 출근을 했다. 남편이 두 분을 모시고 마지막 하루를 보냈다. 퇴근 후 나는 두 분을 모시고 저녁 시간을 마지막으로 함께하기로 계획했다. 동네 큰 전통 시장을 돌며 사람 구경을 시켜드리고 싶었지만 비가 부슬부슬 오는 바람에 그냥 가까운 작은 시장을 함께 둘러보기로 했다. 딱히 신기할 것도 없는 곳이지만 밀튼 할아버지는 연신 카메라를 꺼내셔서 사진 찍기에 바쁘시다.
그날 저녁 만큼은 외식 말고 우리 집에서 같이 저녁을 먹고 싶다고 할아버지께거 말씀하셨다. 2년 전 너무 맛있게 먹은 교촌 치킨이 생각난 할아버지는 자기가 쏠 테니가 우리 집에서 그걸 시켜서 같이 먹자고 하셨다. 얼마나 생각이 나셨으면 그럴까 싶어 흔쾌히 마지막 저녁은 조촐하게 우리 집에서 먹기로 했다. 다행히 며칠 전 고모가 보내오신 대하가 한 상자 냉장고에 있던 걸 할머니와 같이 손질하며 찜기에 쪄서 같이 먹기로 했다. 대하요리는 자신이 없었다. 할아버지가 옆에서 코치해주시고 할머니와 내가 새우 머리를 따고 후후룩 흐르는 물에 헹궈 찜기에 넣고 할아버지가 코치해주신 대로 어느 정도 익었을 때 바로 흐르는 찬 물에 헹궈 한기를 뺐다.
그 사이 할머니와 양상추 샐러드를 만들어 한끼 식사를 뚝딱 차렸다. 두 아이와 함께 남편도 뒤 늦게 합류해서 모두 여섯 명이 먹고도 음식이 남았다.
배불리 먹고 정말 마지막으로 기도의 시간을 가졌다.
거실로 위치을 이동해서 할아버지가 먼저 성경 구절을 소개하시며 서로 교독했다. 그리고 찬송가 하나를 불렀다. 할머니가 먼저 기도를 시작했다. 우리 가족을 위한 기도, 우리 아이들을 위한 특별 기도로 마음이 울컥해졌다. 그리고 생전 처음으로 나도 영어로 기도를 했다. 솔직히 신기하다. 두분 앞에서 절대 영어로 기도를 하지 않았던 나였다. 영어에 대한 자신감도 자신감이지만, 기도가 가지는 특별한 그 문체가 적응이 되지 않기도 하고 신앙 생활을 미국에서 처음 한 나로서는 너무 어색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날은 참 달랐다. 남편 말에 의하면 내가 방언이 터졌다고까지 할 만큼 술술 영어로 기도가 나왔다. 내가 하면서도 참 신기하다는 생각을 살짝 하긴 했다. 그리고 남편도 뭣 한지 우리말로 기도를 보탰고 마지막으로 밀튼 할아버지가 전체적인 기도를 해주셨다.
그날의 그 시간이 5일의 시간 중 가장 절정에 달하는 시간인데, 미처 녹음을 하지 못 한게 너무 아쉬웠다. 그런데, 남편이 나 몰래 그 기도의 시간을 다 녹음해두었다. 이럴 때 보면 남편은 참 꼼꼼한 부분이 있다. 나는 허둥지둥 일을 해내느라 정신이 없는데 남편은 옆에서 조용히 나를 서포트 하는 역할을 티도 내지 않고 잘한다. 남편 덕분에 그 귀한 시간이 언제고 다시 들을 수 있도록 저장이 되어 있다.
▮ 내 마음의 별
그날도 월요일 밤이지만 정말이지 마지막이라 거의 11시가 다 되어야 숙소로 모셔다 드렸다. 지난 번 마지막 작별의 시간은 많이 슬펐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다. 곧 줌으로 정기 바이블 스터디 모임을 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내 마음의 별이 멀리 떠나고 있지만 언제고 다시 만날 수 있는 거리에 있기도 한 사실에 안심이 된다.
어두운 밤 길에 문득 고달픔이나 서글픔이 들 때 멀리서 반짝이며 내 마음을 다 헤아려주는 두 분이 있기에 또 다시 안심과 감사함을 느낀다. 그렇게 어느 날 문득 찾아온 그 두 분과의 만남은 아쉽게 끝이 났다.
이제 가을의 끝이다. 이제 겨울의 시작인 12월에는 레인 할머니와의 온라인 모임에 대한 구체적 일정을 잡으며 다시 내 삶의 별을 가까이 두고 지낼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