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앞에 서는 걸 즐기는 사람은 극소수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남 앞에 서는 것을 두려워한다. 심지어 자기 자리에 앉아서 말 한다 하더라도 여러 사람들에게 뭔가를 말해야 하는 상황이면 저절로 긴장이 된다. 말하기를 좋아할 것 같은 미국 학생들도 실상은 마찬 가지였다. 미국에서 대학원 수업을 들을 때 현지 미국 학생들 중에도 목소리를 떨면서 프리젠테이션을 하는 학생이 종종 있었다.
❚프리젠테이션이 무서운 이유
내가 생각하는 그 두려움의 원인은 대체로 다음 세 가지다.
첫째, 메시지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영어든 우리말이든 남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할 때 떨린다는 것은 그 메시지에 대한 확신이 없을 경우가 많다. 교사 초년 시절에도 나는 수업방법연구에 관심이 아주 높았다. 영어 교사들의 스터디 그룹에도 활동하며 좀 더 나은 수업 방법을 모색하려고 애를 썼었다. 그런 와중에 교사 연수회에서 나는 우리 스터디 그룹을 대표하여 전국에서 오신 영어 선생님들 앞에서 영어 수업 방법에 대한 발표를 했어야 했다.
경력이 별로 없던 시절이긴 했지만, 무대에 오른 것에 대한 두려움은 별로 없었다. 무대에 올라서 나는 미리 생각해둔 발표 내용을 차분히 풀어나갔다. 그러다가 문득 청중들의 얼굴을 봤다. 감정 표현에 인색한 직업군이 교사이다 보니 그날도 선생님들은 다소 무표정하게 나의 발표를 듣고 계셨다.
그들의 시무룩한 얼굴 표정을 보자마자 갑자기 나는 내가 발표하고 있는 내용에 자신감이 없어졌다. ‘내가 설명하고 있는 그 수업 방법이 그렇게 대단한 거였나? 전국에서 모인 교사들에게 전할 만큼?’ 스스로 이렇게 자문을 하는 순간 나의 자신감은 순식간에 증발해버렸다. 나의 목소리는 흔들렸고 더 이상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앞이 캄캄했다. 그 이후로 남 앞에서 발표하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생겼었다. 그 이후로 나는 다른 사람의 발표를 들을 때마다 미소를 지어주고 고개를 끄덕여주는 소위 방청객 모드를 늘 가동시키는 버릇이 생겼다.
둘째, 프리젠테이션의 목적을 오해했기 때문이다. 대부분 청중들은 발표를 들으면서 발표자가 주제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을 잘 엮어서 전해주기를 기대한다. 그들은 굉장히 새롭고 놀라운 무언가를 들을 것을 기대하며 온 게 아니다. 성경에 나온 말씀처럼 새로운 획기적인 것은 세상에 없다.
What has been is what will be, and what has been done is what will be done, and there is nothing new under the sun. (Ecclesiastes 1:9)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나니 (전도서 1장 9절)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프리젠테이션은 이미 새로울 것도 없는 것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발표자가 그의 관점에서 자신의 목소리로 메시지를 ‘기승전결’로 잘 엮어서 프리젠테이션하는 것을 듣고 싶어 한다. 발표자는 발표의 목적이 대단한 새로운 무언가를 전하기 위함이 아님을 정확히 받아들여야 한다.
셋째, 자신의 프리젠테이션을 통째 외워서 멋지게 해내려는 엉뚱한 과욕 때문이다.우리는 본능적으로 영화 속 주인공처럼 막힘없이 드라마틱하게 프리젠테이션을 하고 싶어한다. 최대한 꼼꼼하고 철저히 준비하고 자신이 하려는 모든 말들을 다 외워서 하려는 사람도 있다.
일단 우리말로 하는 프리젠테이션도 하기 두려운데, 그걸 영어로 해야 하는 경우라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특히, 영어 울렁증이 있는 사람들은 그런 실패 위험에도 불구하고 꾸역꾸역 프리젠테이션 대본을 만들어 통째로 달달 암기하려 한다. 프리렌테이션 초보자나 영어에 자신이 없는 사람들은 일단 ‘완벽한 대본 또는 정답지’를 써 두고 그걸 달달 외워서 하려고 계획을 세운다.
그런데 그것은 마치 한 가득 볏단 짐을 지게에 메고 무대에 올라가는 것과 같다. 주어진 시간 내에 그 한 가득 지게에서 작은 볏짚 하나하나를 순서에 맞게 꺼내려는 계획처럼 무모하다. 무대에 올라가면서부터 발표자의 마음은 아주 무거울 것이다. 그 볏짚을 다 내려놓는데 집중한 나머지 관객이 눈에 들어올 리가 없다. 발표자는 혼자 그걸 다 내려놓느라 바쁘고 내팽겨진 관객은 슬슬 지루함을 느낄 것이다. 그런 프리젠테이션은 관객에게 기대한 효과를 거두지 못 할 것이다.
❚통째 암기 본능은 어디까지일까?
비단 영어로 하는 프리젠테이션 뿐 아니라 학생들의 영어 쓰기 수행평가나 선생님들의 영어 수업 시연과 같은 경우도 통째 암기 본능은 여지없이 발동된다.
1. 학생들의 영어 쓰기 수행평가
5년의 세월 동안 미국 유학을 다녀온 후 그 사이 바뀐 것 중에 하나는 바로 수행평가에 관한 교육청의 방침이다. 최근 들어 교육청은 각 과목 마다 논술형태의 과정 평가를 거의 강제하다시피 하고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영어과 수행평가는 영어로 주어진 주제에 대해 글을 쓰고 쓴 내용을 가지고 영어로 말하는 형태을 취하고 있다.
이번 학기 내가 맡은 학년의 영어과목 수행평가도 그런 형태의 수행 평가를 실시하고 있다. 학생들은 스티브 잡스의 스탠포드 대학교 영어 연설문을 공부했다. 영어 교과서에도 그런 형태의 영어 연설문이 읽기 파트에 나온다. 그래서 이번 학기 영어과목 쓰기 말하기 영역의 수행평가는 총 4차시에 걸쳐 영어 연설문 쓰기 및 인터뷰하기로 정했다. 학생들은 이미 꿈을 이룬 어른이 되었다고 상상하고, 꿈을 이룬 과정에 관해 영어로 연설문을 쓰고 원어민 선생님의 인터뷰 질문에 영어로 대답을 하도록 했다. 4차시에 걸친 평가는 대략 다음과 같다.
1차시: 여러 참고 자료를 활용해서 브레인스토밍 및 생각 조직하기
2차시: 온라인 영어사전 및 여러 참고자료를 활용해서 각 생각을 실제 영어문장으로 쓰기
3차시; 아무런 참고자료 없이 이전 차시에서 연습한 같은 주제에 대해 단락글로 완성하기
4차시: 꿈을 이룬 어른으로 가정하고 원어민 선생님이 각 학생들을 영어로 인터뷰하기
1, 2차시의 작문 단계에서 학생들은 자신의 생각을 간단하게 구성한 후 영어 사전을 활용하여 자신의 생각을 영어 문장으로 쓴다. 어떤 학생들은 ‘파파고’, ‘네이버 번역기’와 같은 전문 번역 앱에 전적으로 의존해서 영어 글을 쓰기도 한다. 그들은 자신의 작문 능력을 조금도 활용하지 않고 그 앱이 알려주는 문장을 토시하나 빼지 않고 그대로 옮겨 적기에 바쁘다.
그 중 몇 명은 자신이 베껴 쓴 문장을 해석조차 못 한다. 이런 학생의 경우 3차시 쓰기 시간에는 큰 낭패를 본다. 비록 1, 2차시에서 연습한 같은 주제의 글을 쓰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의 생각이나 작문 능력을 활용하지 않고 번역 앱에서 베껴 쓴 문장을 단순 암기하려고 했기 때문에 아무런 참고 자료 없이 자신이 글을 써야하는 시험에서는 아무것도 적지 못한다. 더 심각한 문제는 그 이전 차시에 번역앱에서 베껴 적은 문장이 자신의 영어 실력을 훌쩍 뛰어 넘는 수준의 복잡한 문장들이라 감히 외울 엄두도 못 낸다는 것이다. 결국 그들의 영어 작문 시험 결과는 형편없기 마련이다.
한편, 비록 달달 외울 정도의 노력과 실력이 되는 학생이라 할지라도 시간제한이 있는 대부분의 시험에서 자신의 기억력만 의존해서 글을 쓴다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자칫 한 줄을 놓치거나 생각이 나지 않으면 학생들은 멘탈이 흔들린다. ‘좀 더 달달 외우고 올 걸’하며 후회를 하느라 남은 시간 집중을 하지 못 하고 시험을 포기하고 만다.
2. 교생 선생님의 영어 수업 시연
이번 5월 한 달 간 교생 선생님을 지도하면서 비슷한 상황을 목격했다. 내가 지도한 영어과 교생선생님이 교생들 전체를 대표하여 하는 발표 수업, 즉 ‘갑종’수업을 하시기로 했다. 왕초보 선생님인 교생 선생님은 자신이 수업에서 할 모든 멘트를 다 적어서 달달 외우겠다고 나에게 알려왔다. 마치 연극에서 주인공이 그 많은 대사를 달달 외우듯이 하겠다는 것이다. 나는 손 사례를 치며 말렸다.
그 선생님은 영어로 수업을 하실 수준이 못 되어 모든 영어 수업을 우리말로 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수업의 모든 멘트를 달달 외우겠다고 하니 참 충격적이었다. 그 분의 심적 부담감은 충분히 이해가 갔다. 하지만, 수업은 늘 역동적이고 예측 불가능 요소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암기해서 대처하는 것은 효과적이지 못 할 거라 했다. 차라리 수업 상황을 머릿속으로 상상하면서 입으로 실제로 말해보는 것을 연습해보라고 추천해주었다.
❚영어 프리젠테이션 ‘암기’가 아닌 ‘연습’이 필수인 이유
미국 대학교 석사 두 번째 학기에는 교육 심리학을 수강했었다. 학기 초에 각자 자신이 발표한 부분을 정하고 각자 돌아가며 40분간 맡은 부분을 발표하는 식으로 수업은 진행되었다. 달달 외우면 더 긴장될 것을 알기에 나는 파워포인트만을 제작해두고 아무런 연습을 하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영어로 하는 영어 수업을 많이 해서 나름 자신이 좀 있었던 터라 나는 차분히 발표를 시작했다. 그러나 처음으로 영어 원어민인 ‘미쿡 사람들’ 앞에서 100% 영어로 프리젠테이션을 그것도 장장 40분간 혼자 하는 것이라 슬슬 나의 영어 배터리가 방전되기 시작했다. 그러다 사단이 나버렸다.
영어로 전문적인 심리학적 내용을 설명하려니 핵심 영어 단어가 바로 바로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내용 설명에 필요한 핵심 영어 단어는 미리 챙겨서 메모라도 해두었어야 했다. 그렇게 나는 첫 영어 프리젠테이션을 완전히 말아 먹었다.
❚영어 프리젠테이션/영어 쓰기&말하기 수행평가/영어 수업 시연에 다 통하는 방법
영어 프리젠테이션이든, 영어로 글 쓰기 및 말하기 수행평가이든 영어 수업 시연이든 다 공통으로 한 가지 능력을 요구한다. 그건 바로 자신의 메시지를 기, 승, 전, 결의 흐름을 가지고 표현하는 능력이다. 이 일들은 대본을 통째로 달달 외워서 하려고 하면 외울 게 너무 많아진다. 그렇게 많은 내용을 기억력에만 의존하여 전달하려고 할 경우 실패할 확률이 상당히 높아진다.
미국대학원 석사, 박사 과정을 하면서 다양한 주제에 대한 프리젠테이션하고 박사과정 내내 미국 대학교에서 영어로만 진행하는 한국어 강좌를 가르친 나의 경험으로부터 얻게 된 나의 노하우는 다음과 같다.
Step 1. 전달할 메시지의 아웃라인 잡기
Step 2. 아웃라인에 근거하여 각 핵심 내용마다 핵심 문구를 파워포인트 슬라이드에 써넣기
Step 3. Step2에서 완성한 파워포인트 슬라이드를 꺼내놓고 직접 입으로 발화 해보기
Step 4. 영어문장으로 실제 발화해봤을 때 자신이 막히는 구간을 체크하기.
Step 5. 사전을 활용해서 막히는 구간에 썼어야 할 영어 단어 및 영어 표현 메모해두기.
발표에서 막히는 이유는 필요한 영어 표현, 단어를 원활히 생각해내지 못 하기 때문.
Step 6. 메모한 영어 단어 및 영어 표현을 사용하여 발표하던 내용을 영어로 다시 설명하기.
Step 7. 실제 시연할 때 아래 사항을 기억하며 마인드 컨트롤하기
1) 가벼운 마음으로 몇 개의 나무 둥치(핵심 아웃라인 메모)만 들고 무대에 올라가기.
2) 하늘 아래 새로운 게 없음.
3) 나의 메시지를 잘 엮어서 내 목소리로 전하는 게 목적임.
4) 세상에 영화 같은 멋진 프리젠테이션은 없음.
5) 청중과 눈을 마주치며 이야기 하듯이 편안하게 하는 것이 최고.
[저자 출간 도서 안내]
효과적인 아카데믹 영어 글쓰기/ 영어 프리젠테이션에 필요한 핵심 영어문법을 그림으로 설명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