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알기 전에 묻고 싶은 것
2020년 5월 18일
한남동에서 만나다.
늘 다르면서 같은 사람이 있다. 늘 다른 상황에서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 늘 같은 것에서 늘 다른 걸 보고 싶어 하는 사람. 인터뷰의 주인공이 그렇다. 모든 것이 다르고 같아서, 시간이 흐름이라던가 장소의 변화, 역할의 변경 같은 것들이 중요하지 않다. 이토록 비선형적으로 하루하루를 살아도 괜찮은 거야? 묻고 싶어질 만큼. '그게 한결같음을 유지하는 비결이야' 하고 답하는 것만 같은, 이 오래 전의 대화가 여전히 또 새롭게 ㅇㄱ을 말해주기를.
Part 1. 초성을 통해 떠오른 것들: ㅇㄱ
‘얘기’
두 종류의 이야기를 생각해 본다.
즐겁고 편안해서 힘들지 않을 때의 이야기와 괴롭고 기운을 짜내서 해내야 할 때의 이야기.
어떤 얘기를 나누냐에 따라서 신체적 정신적 상태가 드러난다.
나는 실없는 소리 하는 걸 좋아한다.
진중한 대화는 생각보다 좋아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떠드는 건 좋아하지만 대화는 어려워하는 사람.
내가 하는 일들을 생각하면 놀라운 이야기겠지?
정신과에 심리치료를 받으러 가면 우선 대화를 시도한다.
나는 말하는 게 힘들다는 걸 토로하려고 병원에 간 건데, 자꾸 대화하자고 이야기하자고 하니까 더 힘들더라.
사람을 만나는 것도 비슷하다.
편안하게 이야기하게 되는 사람, 이야기하는 내내 뭔가를 생각하고 떠올려야 하는 사람.
배려해야 하고, 말하면서 계산해야 하고, 정확하게 감정과 생각을 계산해서 해야 하는 대화들.
대화가 아니라 언어의 배치라고 느낄 때 많이 힘들다.
대화로 생겨난 압박감들이 요즘에 나를 괴롭히는 요소다.
‘응가’
아… 응가는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것.
어렸을 때부터 장이 안 좋았다, 소화기관이 약한 편인데.
찬 걸 먹거나 우유를 먹거나 안 먹다가 먹으면 배가 종종 아프다.
화장실이 여의치 않을 때 배가 아파지면 식은땀이 난다.
그런 상황이야 말로 인생에서 겪기 싫은 상황 베스트 3가 아닐까.
슬프게도 그런 상황을 삶에서 자주 겪었기 때문에 몇 가지 노하우를 개발했다.
하나, 어딜 가도 화장실부터 파악하기
둘, 힘을 분산시키는 신체 활용법
셋, 먹는 걸 조심하자.
사실 세 번째가 가장 확실한 방어법인데, 잘 못한다.
모든 것에 무딘 편이라 자신을 돌보는 일에도 마찬가지다.
스스로를 살피는 일에 서투른 것 같다.
‘윤기’
윤기 있다는 말,
참 예쁜 말이다. 칭찬처럼 느껴진다.
말에도 윤기가 흐르고, 태도에도 윤기가 날 수 있다.
윤기의 반대를 푸석 푸석으로 이해하면 더 그렇다.
박완서 작가의 <그 남자네 집>에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들었던 최고의 칭찬이 탐스럽다는 말이었다는 구절이 있다. 그 문장을 계속 기억하게 된다.
탐스러움이 주는 충만함, 매끄러움, 완전함과 윤기.
참 고귀한 칭찬처럼 여겨진다.
어른이 되어 이 문장을 말했을 때, 몇몇은 섹슈얼하게 해석하기도 했는데
당시 소설 속 상황이 전후라고 이해했을 때 그 문장이 희롱이 아니라 찬사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평범한 재료로 싼 김밥에 참기름을 한번 발라주면, 그 윤기 덕에 더 정성스럽고 먹음직스러워 보인다.
윤기 나는 사람이 되고 싶다.
Part 2. 단어를 보고 떠오른 것들: 휘발, 가치, 손
오… 어려운데, 근데 하필이면 ‘휘발’을 보고 욕이 생각났다.
욕을 할 때 괜히 민망하니까 부드럽게 하지 않나, 마치 그럴 때의 발음.
단어 그대로 생각하면, 기억이 휘발되거나 노력이 휘발되는 것을 떠올려 볼 수 있다.
휘발되어 다행인 것이 많다. 좋았던 것도, 나빴던 것도 휘발되지 않고 머물러 있기만 한다면 힘들지도 모른다.
적당히 휘발되고, 적당히 또렷한 게 좋다.
책을 만드는 일을 하고, 공연을 기록하는 작업을 자주 하다 보니
남기고, 저장하고, 기록하는 것에 대해 항상 고민한다.
모든 걸 남김없이 망라하는 것만이 잘하는 저장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좋은 것도 나쁜 것도 그때 그 순간의 밀도로 남아있다면 무거울 듯하다.
최대한 잘 휘발시키고 남은 것이야말로 진짜 좋은 기록이 아닐까.
‘가치’라니…
왜 이렇게 무거운 단어를 주는 거야?
가치는 주로 있다, 없다로 가늠된다.
많다, 적다, 50%는 가치 있고, 30%만큼은 없다… 있다가도 없다처럼,
가치는 절대적인 것에 가깝고 잘 안 바뀌는 것에 가깝고 무겁고 육중하다.
타인을 좋아하고 존중함에도 그 사람의 가치와 내가 추구하는 가치가 맞지 않다고 생각한 적이 많다.
<흐르는 강물처럼>이라는 영화에 나오는 대사로 기억하는데
“우리는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완벽하게 사랑할 수 있다”는 말이 이와 비슷한 상황이 아닐까.
그렇지만 반대로 타인이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오해한 상태로 나를 이해하고 있을 때
심리적으로 타격을 입는다.
듣고 넘기거나 인정하거나 그런가 보다 하면 될 것을, 그게 잘 안 된다.
마지막으로 ‘손’
이사하거나 개업할 때 손 없는 날, 손 안 타는 날 골라서 한다고 들었다.
손 없는 날의 어원은 모르겠지만, 무탈한 날 재수 없지 않은 날이라고 통용되는 것 같다.
궁금하다. 2020년에도 손 없는 날을 찾는 우리들이 우습다.
또 성씨 ‘손’이 떠오른다.
손석희, 손예진… 가끔씩 자연스럽게 호명하던 것들이 어색하다거나 특이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손석희.. hand? 성이 왜 손이지? 라던가.
부 씨면… 사장이 되면 부사장, 반장이 되면 부반장이겠군? 이라던가.
단어로 유희하는 걸 좋아한다.
네이밍 하는 것도 좋아하고, 언어로 장난치며 노는 게 좋다.
Part 3. 단어를 이으며 생각난 것들: 어쩌다 우연히 + 들리다, 철석같이 + 만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어쩌다 우연히 (소리가) 들리다”
이미 아닌 걸 아는데 그렇게 믿어지는 것들이 있다.
N 년 정도 한국을 떠나 있던 적이 있는데 쓰레기통을 그렇게 사기 싫었다.
그런 병이 있는 듯하다. 작은 것들을 사는데 주저하고 고민하는 반면에 큰 것들은 그냥 사버리는.
N 년 동안 쓰레기통 없이 흰색 비닐봉지를 걸어놓고 살았다.
침대 프레임 모서리에 흰색 비닐을 걸어두고 지냈는데, 가끔 잠결에 그게 강아지처럼 보일 때가 있었다.
우리 강아지 칸타라고 착각해서 몇 번을 잠결에 (만취이거나..) ‘칸타!’하고 불렀다.
칸타가 아님을 물론 안다. 근데 순간적으로 벌어지는 인지과정이랑 그걸 다시 깨닫는 순간에 버퍼링이 있다.
칸타와 이별한 지 어느덧 3년이 지났는데, 가끔씩 혼자 있을 때 느껴지는 인기척에 ‘칸타?’하고 반응할 때가 있다.
“철석같이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믿지 않았지만.…”
나의 소심함 혹은 미련함과 관련이 있는 문장이다.
가끔 가봐야 다 끝나서 소용없는 일에도 마음을 다한답시고 향하는 경우가 있다.
공연에 초대받았다, 안 가도 괜찮다, 심지어 공연은 끝났다. 그래도 꾸역꾸역 가서 로비에 앉아있는 나.
그래야 마음이 조금이라도 편하니까.
실은 그게 마음이 잠깐 편한 거고, 스스로를 피곤하게 만드는 건데도 잘 안 된다.
아름답게 마무리되지 않는 것을 잘 못 견딘다.
마무리가 지저분하거나 미완된 것들이 싫다.
마음에 안 드는 책도 끝까지 보고, 마음에 안 드는 영화도 가능하면 다 본다.
그러지 못했을 때 끙끙 앓는다.
못났지?
생각하고, 계획하고, 만들어내는 일을 하는 허영균입니다. 파아프에서 브랜딩과 공상하기를 맡고 있어요.
실천을 제일 중요한 덕목으로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