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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ar Pang Jun 21. 2021

(곰팡이 리뷰(공연 '꽉 찬 움직임'

PaAp LaB에서의 첫 음악공연 밴드 만동滿動과 함께.

기타리스트의 등 뒤로는 공병, 저울, 믹서기, 티포트, 크림색 접시들, 커피잔, 오븐, 밥솥이 보인다. 드러머의 옆으로는 핸드드립용 커피 머신, 얼음 제조기, 식기세척기, 식재료를 보관하는 은색 통들이 보인다. 겹겹이 쌓인 은색들 사이사이로 챙, 쿵, 찌잉- 음들이 뛰논다. 영락없이 레스토랑 주방 같은 이곳에 드럼과 기타 스피커가 설치되고, 테이블 의자들이 질서 정연하게 '주방' 방향을 향해 놓인다. 여기는 PaAp LaB. 오늘은 공연장.


밴드 만동의 드러머 서경수 님

'발효는 움직임이다'라는 주제로 이어지는 PaAp LaB의 여러 기획 중 하나로 음악 공연을 마련했다. 밴드 만동滿動이 함께 해주었다. 문자 그대로 '꽉 찬 움직임'이라는 이름의 의미가 마치 짠 것처럼 정확히 들어맞는다. 만동과 유기농맥주의 기타리스트이자 영상 음악 등 다방면으로 활동 중인 함석 영과 만동, 쾅프로그램에서 등으로 활약하는 서경수 2인이 한 팀이다. "말이 잘 통하는 것 같아서" 결성하게 됐다는 이 팀은 클럽이나 공연장이 아닌 작업실이나 사무실 같은 '무언가가 만들어지고 발생하는 특별한 공간'을 찾아 공연한다. PaAp LaB은 주방이자 발효실이자 바(Bar)이자 작업실이자 스튜디오로서 만동의 공연장이 될 자격(?)을 제대로 갖췄다고나 할까.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대한 위험과 안전망으로 여유 있게 30명의 관객을 모시며 공연을 알린다. 


공연을 준비 중인 만동의 서경수, 함석영

비가 세차게 왔다. 직선으로 쭉쭉 뻗는 힘 있는 물줄기가 특징인 봄비다. 차는 막힐 테고, 길 찾기는 어려울 테고, 겉옷은 축축해져 갈 텐데... 관객들이 어렵지 않게 잘 찾아올지 걱정하면서도, 황사며 미세먼지를 씻어내리는 비가 반갑다. PaAp LaB의 통 창문을 활짝 열고 빗소리를 안으로 들인다. 두 대의 택시를 나누어 타고, 바리바리 악기를 내리는 밴드 맨들의 모자와 어깨도 조금씩 젖는다. 툭툭, 차악 차악. 시작부터 리드미컬한 하루다. 발효실의 미생물처럼, 음표가 떠다니는 듯한 오후. 


주방을 무대 뒤로 하여, 악기 세팅을 시작한다. 은색 통들, 믹서기, 전자레인지, 국자, 수전, 양념통... 명백한 주방임을 주장하는 듯한 장소에 들어서는 기타와 드럼이 낯설지 않다. (아, 고무장갑이랑 빨아 널어둔 행주는 좀 치우자.) 

리허설을 시작한다. 온갖 은색에 부딪혀 빛을 산란하듯 발산하는 음을 오늘의 습기가 부드럽게 나른다. 콩닥콩닥, 일상에서 듣는 것보다 큰 소리와 울림, 박자감을 느끼며 온몸이 조금씩 흔들린다. '흥'이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라 '뭔가가 뭔가에 부딪혀 왔을 때' 발생하는 상태다. 일상에서 느끼기 힘든 이런 작은 흥분감, 몸과 감정의 작은 움직임 생명에 새로운 숨을 불어넣는다. 


성실하고 진실한 관객들은 출입자 명단을 체크하고, 체온을 측정하고 원하는 좌석에 앉는다.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의자들이 어색하진 않을까 걱정도 되지만 괜한 것. 즉흥연주와 함께 공연도, 공연장으로서도 시작이다. 밴드의 팬 외에도 PaAp 템페의 고객, 지난 워크숍 참가자들의 얼굴이 보인다는 것은 기획자로서 기쁜 일이다. 한 번 오고 끝인 것이 아니라, 다음을 기대하며 이어지고, 다시 찾을 수 있는 곳이 될 수 있다는 증거니까. 새로운 얼굴에는 반가움을, 낯익은 얼굴에는 감사함을 느끼며. 

공연을 시작하며 인사를 나누는 밴드 만동

음악 너무 좋다. 유튜브를 통해서 미리 듣기도 했는데, 눈앞에서 연주되는 음악은 다른 차원의 감격을 맛보게 한다. 이들의 첫 앨범 <먼저 출발해야지>를 두고 작가 김희천이 기술한 것처럼. 


"<먼저 출발해야지>는 만동의 첫 앨범이 아니라 만동이 이제까지 수많은 앨범을 낸 후, 코로나 시대에 맞춰 미발표곡들을 모아서 낸 것 같다는 망상도 하게 된다. 이 망상은 전 세계의 수많은 뮤지션들이 판데믹 속에서 시간을 이상한 방식으로 굴리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고, 만동의 앨범 자체가 아주 익숙한 구성과 조금 엇나간 구성이 한 곡에서 이리저리 엮인 것들의 집합처럼 느껴지기 때문일 수도 있다. (중략) 만동의 <먼저 출발해야지>를 듣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이 앨범 이후 앞으로의 행보가 과거의 일 같아서 그립거나, 미래의 일 같아서 기대된다. (작가 김희천)" 


공연 초반, 아직은 덜 흥분한 PaAp 팀원들(?

여기 이 순간, 음악을 통해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함께 있다. 움직이고 비벼지고 마찰하고 끌어안으며 계속되는 시간 그리고 발효. 앙코르가 터져 나온 한 시간 동안 객석 뒤에 있던 PaAp 팀원들이야 말로 스탠딩 공연의 광분한 관객처럼, 흔들고 움직이고 뛰어놀았다. 자신이 하는 일을 자신이 제일 좋아하고, 자신이 제일 즐기는 것처럼 부끄럽지만 행복한 일도 없다. 


PaAp LaB MaT 울퉁불퉁 쉽지 않은 이름의 우리의 프로그램. '발효'를 중심으로 진행하는 우리의 일들은, 모든 것에 억지스레 발효라는 이름을 붙이거나, 발효의 개념 안에 모든 것을 걸고넘어지는 것이 아니다. 발효가 무엇인지 좀 더 구체적으로 그리고 멀리 찾아가는 과정에서 발효의 방식을, 발효의 개념을 나누고 실험하고 싶을 뿐. 구름 위의 이야기 같은 기획의 마음을 다른 이들과 그리고 무엇보다 나 스스로와 명징하게 나눌 수 있다면. 

밴드 만동의 팬이자 소중한 관객분. 연신 앉은 자세로 해드뱅잉하며 공연을 관람하셨다.


*****

 PaAp LaB MaT '음악공연'

2021년 5월 1일 오후 4시

밴드 만동滿動 그리고 32명의 관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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