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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ar Pang Jun 21. 2021

)곰팡이 에세이)곰팡이는 아름다워

내 자랑을 하자는 게 아니라요.

곰팡이를 발음할 때, 입술이 움직이는 모양이 좋다. 입안에 공간이 생겼다가 '이'를 발음하면서 밖으로 뱉어지는 공기를 느끼는 것도 좋다. 곰팡이. 나에겐 너무 귀여운 이름이지만, 일반적으로 곰팡이가 좋다고만은 할 수 없다. 정작 나만 해도 이름은 곰팡이지만 화장실이나 부엌 싱크대에 곰팡이를 보면, 즉시 고무장갑을 끼고 과탄산수소를 풀거나 락스의 파란 뚜껑을 돌린다. 타일 줄눈 사이사이가 누렇게 변해가는 것, 실리콘 안쪽에서 푸른 기운이 올라오는 것 또한 곰팡이 출연의 전조로 보여서 바로바로 없애버린다. 누구나 자신만의 결벽이 있다고 하는데, 나의 결벽은 집 청소와 관련해있다. (즉, 다른 것의 위생상태엔 무던하단 이야기) 어딜가도 그 공간이 청결한가를 유심히 보게 되고, 그때마다 곰팡이는 엄격한 기준이 된다. 


뭐? 곰팡이가 있어? 

있을 곳이 못 되는군.

뭐? 곰팡이의 전조가 있어?

있을 곳이 못 되는군.

뭐? 전에 곰팡이가 있었어? 

있을 곳이 못.되.는.군.


그야말로 곰팡이 안티. 그런 내가 모순적이게도 곰팡이가 된 것은 단순이 발음상의 귀여움 때문은 아니다. 발효를 공부하다 보니 필연적으로 '균'의 세계와 가까워지고, 균의 세계에 들어가자 필연적으로 곰팡이를 만나게 됐다. 곰팡이에 대한, 지독히 편협하고 단순한 수준의 정보만으로 그동안 안티를 자처했음을 깨닫고 나자, 그간의 오해와 혐오에 관해 소명하고 사과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이 생겼기 때문에. 


그래서 오늘은 곰팡이에 관한 다른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여기서 '다른 이야기'란 철저히 나를 기준으로 그동안 내가(나만) 몰랐거나, 잘못 알았던 것을 정리해보겠단 뜻이다. 


일단 곰팡이에 대한 오해 하나, 곰팡이는 식물이 아닌 '생물'이라는 것.  본체가 가느다란 실 모양의 균사로 이루어진 균계(fungi) 생물을 통칭한다. '균계'라고 번역하여 쓰는 까닭에 박테리아를 의미하는 세균과 친척인 것처럼 혼동하기 쉽지만 세균과는 범위부터 다르다.

구글에서 가져왔어요. 곰팡이 바이러스 박테리아.

사실 균(菌)이라는 게 원래 버섯이라는 의미로 쓰는 글자였으므로, 오히려 세균이 나중에 번역할 때 차용한 이름이고 원래는 이쪽을 부르던 말이 맞을 거다.


변질, 부패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예시이기도 하지만 의외로 요리와 의학 역사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기도 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페니실린" 항생제 외에도, 몇몇 지질 강하제(콜레스테롤을 낮추는 약), 몇몇 면역 억제제가 곰팡이를 이용해서 만들어진다.


음식에 관해서라면 콩을 발효시켜 된장, 간장을 만들어내거나 막걸리를 만들어주는 누룩곰팡이, 살라미 같은 일부 소시지의 풍미를 증진시키기 위한 곰팡이, 치즈를 만들 때 사용하는 푸른곰팡이가 유명하다. 곰팡이는 알콜을 만들어내는 효모에 당분을 공급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화알못(화학 몰라)은 여기까지 이해하는데도 힘이든다. 


요약해보자면 곰팡이는 '생물' 즉 살아있는 독립적인 '생명체'이다. 탄생하고, 성장하고, 변화하고, 소멸하는 것이 그러므로 당연하다. 두 번째로 곰팡이는 '매개체'로서 기능한다. 물질과 물질 사이를 연결하면서 가능한 긍정적인 변화를 촉진하는 아름다운 미디어다. 곰팡이는 그 자신으로 있을 때, 나 같은 곰팡이 무식자에게 배척당하고 욕을 먹기도 하지만, 사실은 세상의 곳곳에서 이것과 저것을 연결하고, 연결을 통해 새롭고 이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데 도움을 준다. 


곰팡이의 본질을 살펴보다보니 왠지 나랑 닮았군? 곰팡이의 곰팡이에 대한 동변상련. 기획자라는 포지션으로 일을 그리고, 엮고, 진행하는 나는 '연결자'로서의 자신을 자주 떠올리게 되기 때문에. 나의 일들은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리고 설계를 하면서 실체화 되지 않는다. 사람들을 섭외하고, 만나고, 모아 여럿을 같은 시간과 장소 속에 엮음으로서 겨우 모습이 드러난다. 그 과정까지 오고 가야하는 수많은 경로와 무수한 접점들은 개인의 정신과 육신의 기억과 피로로 저장될 따름이다. 


아니 아니 오해는 말아줘요.  나는 내 일이 지닌 범위와 영향력을 사랑하니까.  다만 엮음과 엮음 사이, 연결과 연결 사이 부딪히며 까지고 마모되는 '연결자'로서의 나 자신도 분명히 있다. 곰팡이의 잘못된 사용 혹은 곰팡이에 대한 오해랑은 태초부터 다른 문제일 수도 있지만. 한 마디로 티 안나고 고생되는 일이 많다는 이야긴데, 그렇지만 그럴 때가 있쨔나. 서운하고 힘들어질 때 있쟈나. 티 안나고 고생만 하구 내 존재는 지워지고 잘 한 건 안 남고 못한 것만 남는 그럴 때 있쟈나!!!!! (갑자기 폭주해서 미안해)


연결함으로서 변화를 촉진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곰팡이'의 속성을 좀 더 잘 이해하고 싶다. 그래서 곰팡이를 좀 더 잘 만나고 싶다. '발효는 움직임이다'라는 LaB이 지향하는 정체성을 가장 그 답게 해주는 것이 곰팡이가 지닌 '연결의 힘', '변화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그런 곰팡이가 되고 싶다. 서둘러 요약하자면 그렇습니다. 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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