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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누 Sep 04. 2021

김초엽의 장편 '지구 끝의 온실'

김초엽의 첫번째 장편소설 지구끝의 온실을 읽고


 '생명'을 가진 것들을 생각해 본다. 인간 중심의 세상에서 그동안 생명을 지닌 다른 것들에 관심이 부족했음을 깨닫는다. 인간 중심의 지구에서 나를 중심으로 살아가는 일상에서 다른 생명체에 대한 관심과 존중은 무가치한 일이 되고 말았다. 김초엽의 첫번째 장편소설 '지구 끝의 온실'을 읽고 나서 식물을 생각하게 되었다. 창 밖으로 보이는 푸른 나무들과 잡초들까지도 허투루 보이지 않았다. 


 더스트 폴이라는 재앙이 휩쓸고 간 지구에서 사람들은 돔을 지어서 살았다. 돔 안에 사람들은 밖의 사람들을 배척했고, 내부는 분열했다. 대재앙의 시대가 지나간 지구는 다시금 일상을 회복하고 있었지만 사람들은 어떻게 더스폴의 재앙이 끝나게 되었는지 알지 못했다. 더스트 생태 연구소의 아영은 한국의 해월 지역에서 갑자기 번성하는 모스바나라는 식물을 파헤치면서 더스트 시대의 비밀에 접근하게 된다. 


김초엽은 과학적 사실에 문학적 상상력을 절묘하게 버무릴 줄 아는 작가다. 전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있다면'에서 작가는 기술이 인간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과 기술에 의해 상처받고 치유되는 인간의 모습을  잔잔하게 표현했다. 작가의 첫 장편이기에 좀 더 긴 호흡으로 이야기의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묵직한 감동을 이끌어 낼 수 있을지 읽는 내내 신경이 쓰였다. 좋아하는 작가에게 실망하고 싶지 않은 바람이 무의식적으로 감정의 저변을 차지하고 있었다. 


 '지구 끝의 온실'도 역시 작가의 과학적 배경에 의지하고 있다. 독자는 책을 읽으며 왜 지구가 이렇게 되었는지 의문을 품고 앞으로 나가야만 한다. 더스트 폴로 표현되는 지구의 재앙은 무엇인지, 왜 모스바나라는 식물이 등장하는지 서서히 그 의문이 풀려간다. 대재앙의 배경은 나노테크놀러지이다. 자가 증식을 무한 반복하는 나노입자가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면서 지구는 더스트라고 불리는 독성 물질로 뒤덮이고 말았다. 김초엽의 소설은 조금의 과학적 지식을 가지고 있다면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유전자 조작에 관한 단편소설 '왜 순례자들은 돌아오지 않는가'에 등장하는 인물 다우드나가 실제 유전자 가위의 권위자 제니퍼 다우드나에서 이름을 가져왔다는 것을 알면 읽는 재미가 배가된다. '지구 끝의 온실'에 등장하는 나노기술, 에셈블러, 디에셈블러와 같은 용어에 대한 이해가 있다면 조금 더 재미를 느끼며 책을 읽을 수 있다. 


 아영을 통해 밝혀진 지구 재건의 열쇠는 결국 '모스바나'라고 불리는 식물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에서 점점 기계로 변하가는 존재 레이첼이 만들어낸 모스바나가 더스트를 분해하여 인간이 살 수 있는 대기환경을 만들어 내었던 것이다. 작가는 모스바나를 통해 오늘날 간과되고 있는 식물의 존재와 그 중요성을 말한다. 아마존의 거대한 밀림이 불에 타고 경제 논리 앞에 사라져 가는 푸른 숲을 그렇게 놔 둬서는 안된다고. 어쩌면 망가져 가는 지구의 마지막 희망이 그런 식물들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하고 있다. '지구 끝의 온실', 이야기 속 온실은 말레이시아 어느 숲속에 존재한다. 왜 그곳이 '지구의 끝'이 였을까? 더 이상 물러날 수 없는 마지막 희망의 장소였기에 '지구 끝'이라는 표현을 하지 않았을까?


 모스바나 덕분에 회복된 지구에서 사람들은 인간 중심의 삶을 재건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왜, 지구가 회복되었는지 몰랐다. 생태연구원 아영의 노력으로 진실이 밝혀지지만 논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지구를 생각했다. 내가 살고 있는 일상을 생각했고, 아파트 화단에 무심코 자라고 있는 이름 모를 식물이 떠올랐다. 창밖으로 햇살이 내리고, 그 햇살을 받아 산소를 만들어 내고 있는 푸른 식물들이 보인다. '함께'살아가야 하는 지구에서 우리는 그동안 '함께'의 범위를 너무나 편협하게 정의하고 있었다. 내 주변 사람만이 아니고, 인간만이 아니고, 동물만이 아니고, 지구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생명체 모두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살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지구 끝의 온실'을 읽고 나니 모든 푸르른 것들이 사랑스럽다. 그 푸르름에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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