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나만 멈춰 있는 것 같은 하루가 있다.
전부 자기 속도로 어딘가로 가고 있는데 오로지 나만 세상과 동떨어져 제자리에서 시간만 흘려보내고 있는 기분이 든다.
뒤처졌다는 확신은 없는데, 앞서고 있다는 감각도 없어서 계속 나 자신만 의심하게 되는 날이 있다.
대체적으로 그래도 잘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이따금씩 튀어나오는 그 불안감이 평온했던 하루를 뒤흔든다. 그리고 마음속에 있는 동굴 입구 앞에 서서 들어갈지 말지를 서성인다. 그러다 익숙한 듯 또 나만의 공간으로 들어가 온갖 상상을 하며 머리를 헤집어 놓는다.
함께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이 어느 날 말한다.
벌써 일한 지 n 년이야.
그 말을 들으면 순간적으로 나는 그동안 무얼 했나 생각한다. 한 직장에서 오랫동안 다니며 힘들어도 어떻게든 버티며 시간을 채워가는 친구들을 보면서 스스로 불안감이 밀려온다.
꾸준히 무언가를 하고 있지만 돈도 못 벌고, 다시 회사로 들어갈까 흔들리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그러다 그런 생각을 할 시간에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어떻게든 키워보자는 생각으로 글을 계속 쓴다.
그렇게 다시 마음을 다잡아 보지만, 글을 쓰는 손보다 먼저 드는 건 '이게 맞나'라는 질문이다.
지금 이 방향이 맞는지, 아니면 나만 현실을 외면한 채 혼자 다른 길을 걷고 있는 건 아닌지 불안한 마음이 고개를 내민다.
그래서 나만 뒤처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날에는 그저 해야 할 일을 충실히 이행한다. 당장 해야 하는 생업, 치워야 하는 집, 널어야 하는 빨래 같은 것들을 하면 아무 일 없이 또 밤이 되어있다.
잘 살고 있는지, 제대로 가고 있는지, 남들보다 늦은 건 아닌지 잠시 묻지 않아도 되는 시간.
글을 쓰고 있을 때의 나는 앞서 있지도, 뒤처져 있지도 않다.
그저 지금의 생각을 지금의 언어로 옮기고 있을 뿐이다.
아마도 이 생각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잘 살고 있어도, 나름의 속도로 가고 있다고 믿는 순간에도 문득 고개를 들고 나를 붙잡을 것이다.
지금 이렇게 있는 것도 하나의 선택일 수 있다는 말을 스스로에게 하고 싶다.
앞서 있지 않아도 괜찮고, 확신이 없어도 괜찮고, 잘 살고 있다는 증거가 없어도 여기까지 살아낸 것만으로 충분한 날이 있다고 믿어보려고 한다.
나만 멈춰 있는 것 같아도 괜찮다. 포기하지 않고 쓰러지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이 감각이 또다시 찾아와도 더 이상 불안해하지 않고 조용히 나에게 한마디 건네고 싶다.
괜찮아. 지금도 너는 네 속도로 가고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