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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뒤셀도르퍼 Jan 22. 2021

Happy new year, strangers

1.

간헐적인 폭발은 자정이 다가올수록 촘촘해진다. 00시 00분이 되면 각자 다른 손에서 빠져나온 소음이 하나의 거대한 울림이 된다. 한 겹짜리 나무 창문은 그 울림을 그대로 받아들여 고요한 호텔 방을 메웠다. 그 방에는 두 사람이 있었다. 낯선 땅에서 한 해의 끝과 시작을 우연히 같이 맞이하게 되었다. 여자는 서너 살 많은 남자에게 거대한 울림에 대해 물었지만, 그 역시 짐작할 수 없었다. 그들의 단어 사전에서 Feuerwerk은 불꽃놀이였고, Silvester는 섣달 그믐날일 뿐이었다.


2.

또 다른 자정에는 두 여자가 길을 걷고 있다. 모임 시간이 가까워 올수록 더 자주 구글맵을 들여다보고 있다. 가로등은 대게 제 역할을 하지 못한 채 끔뻑하고 천천히 움직일 뿐이다. 모임 시간이 다가올수록 건너편 공원에선 소음이 증폭한다. 제 각기 다른 곳에서 빨간 불빛이 하늘로 치솟는다. 어쩌면 가로등은 그날 밤은 느리게 꿈뻑이며 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3.

그들은 주변에 가장 높은 건물을 가리켰다. 아마 그 날을 제외하면 오를 일 없는 건물이기 때문에 선택했겠지. 여덟 명 정도가 차례로 오르기 시작했다. 완공되지 않은 건물에는 그것만의 질서가 놓여있다. 앞선 사람 둘은 그 질서를 찾아가고, 뒤에 선 두 사람은 삐걱대는 발판에 겁먹은 무리를 돌본다. 대폭발의 시작을 앞두고 무리의 의견은 둘로 나뉘었다. 선발대는 두세층만 오르면 정상이라 말하고, 후발대는 이쯤이면 충분하다고 손을 놓는다. 유일하게 무리에서 카메라와 삼각대를 챙긴 한 사람은 정상에 올랐다. 하지만 욕심껏 오른 정상에서 그는 단 한 장의 사진도 셀렉할 수 없었다.


4.

한 커플의 서로 다른 지인이 모였다. 한 무리는 독일어를, 한 무리는 한국어를 사용한다. 대폭발을 앞두고 한 자리에 모인 이들은 한 손에 술을 들고 마주하고 스치기를 반복한다. 가볍고 흩어지기 쉬운 질문과 답변이 오간다. 뭉근하게 취해 각자의 자리에서 뿌리를 내리기 시작할 때, 라이터를 찾는 소리가 들린다. 길을 점령한 무리는 라이터를 가운데 두고 웃음을 나눈다. '너 그리고 다음엔 너' 가볍게 스치던 얼굴에 하나씩 불씨들 들려 보낸다. 집에서 우르르 쏟아져 나온 또 다른 무리들과 엉키고 섞이며 연기 속으로 들어간다. 지나는 택시를 막고, 정면으로 쏘아대며, 불씨를 찾고, 터지지 않은 폭죽이 남았는지를 물으며.



5.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긴 사연으로 12월 31일을 침대에서 보내는 이가 있다. 케이크도 없고, 카운트다운을 대신하는 텔레비전도 없다. 누군가의 가족 모임에 얼기설기 꼬아볼 끈도 하나 없는 이가 여기에 있다. 그동안은 반듯하게 그어놓았을 올해와 내년의 선을 지워버리고, 그 자리에 넷플릭스 다음회 버튼을 놓았다. 어차피 불꽃놀이 세트는 공식적으로 판매를 하지 않았으니 모두에게 적당히 조용한 연말이 될 것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번쩍이는 횟수가 늘었다. 담배에 불이나 붙일 요량으로 나가는 참에 카메라를 들었다. 그렇게 걷던 중에 그를 부르는 소리에 이끌린다. 'hey, hey come, join us'. 그리고 산 적 없는 불꽃이 그의 손에 들린다. 어제 만난 사이처럼 한 손엔 불꽃, 한 손엔 음악을 들고 춤을 춘다. 약속한 듯 차례로 폭죽과 불을 나눈다. 강한 인도식 억양의 영어와 실수로 나온 독일어, 갑자기 터져 나온 한국어가 연기 속에서 뒤섞인다. 튀고 터지고 사그라들기를 반복한다.

커다란 봉지를 털다가 마지막으로 나온 폭죽에 불을 붙이고, 완전히 사그라들고 보슬비에 젖어들 무렵 이방인들은 흩어졌다. 'happy new year, strang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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