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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뒤셀도르퍼 Nov 16. 2021

문은 잠기지 않았지만

나는 포기하기로 했다 2

스마트폰을 꺼야 한다. 진동이 울리면 궁금해지니까. 그렇게 다리 위에서 진동을 느끼면서 울던 날이 있었다. 그러니까 경험담인 것이다. 지나치게 성실했다. 문자가 오면 어쨌든 답장을 해야 했고, 전화가 오면 두 번 이상 외면하는 게 미안했다. 오래 봐왔으니까. 그걸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날도 오늘도 그렇게 전화를 한다는 것도.


중학교 때까지 엄마는 내 운동화 끈을 묶어줬다. 엄마 말대로라면 마이너스 손을 가진 나는 항상 무언갈 잘 묶지 못해 금세 풀어져버렸기 때문이다. 엄마의 리본은 항상 짱짱한 모습을 유지한다. 힘을 꼭 주는 것도 아니고, 대단한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닌데. 엄마와 나의 리본은 기세부터 늘 달랐다. 그래서 매듭을 지어야 하는 곳에서 나는 자주 엉성해 보였고, 자주 도움을 받았다. 요청한 적도 없는 도움을 받았던 것을 보면, 누가 보기에도 나의 매듭은 제대로 묶이지 않았던 것이다.


목을 매기로 하고 제일 난감했던 것은 끈을 묶는 일이다. 그러니까 풀어지면 안 될 텐데. 한참을 울다가 태블릿을 켰다. 죽기 위해서도 검색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니. 로프형 매듭, 교수형 매듭. 그림만 보고 따라 하는 게 어려워 유튜브를 켠다. 매듭을 짓는 것이 어렵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짱짱하게 묶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이라니. 헛웃음이 나온다.


손으로 쓰는 편지는 너무 감상적이고, 자꾸만 다른 길로 새는 게 별로라서 이메일을 썼다. 예약을 해놨고, 시간도 넉넉했다. 적당한 시간이길 바랐다. 너무 일찍도 아니고, 너무 늦게도 아닌. 딱 하루 뒤에 발견되길 바라면서. 이메일은 눈물도 남지 않고,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는 글씨체도 볼 수 없다. 오로지 이 매듭을 짓기로 한 원인과 과정쯤이 담겨있다. 대단한 것은 아니라도 으레 궁금할 이야기니까. 아직은 받지 않은 질문에 답을 쓴다. 그게 그들에겐 정답으로 느껴지지 않겠지만.


밖에서 기척이 났다. 내 방 바로 옆 화장실에 가는 누군가다. 문득 이 층에 있는 9명의 사람과 아래층의 10명을 생각했다. 아직 그들 중 한 명도 내 방문을 두드린 사람이 없다. 아니 한 명 있으려나, 언젠가 화장지를 빌리러 왔던 것 같다. 1시간 이상 외출할 때를 제외하곤 문을 잠근 적이 없다. 훔쳐갈 것 없는 가난한 방이라 그랬고, 문 하나를 단속하는 힘도 아끼고 싶어서 그랬다. 늘 열려 있지만, 누구도 연 적 없는 문.


독일의 길거리에서 그토록 많은 놀림을 당하고, 괴롭힘을 경험했지만 도와준 이는 없었다. 악을 써도, 울어도 그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였다. 문을 열어뒀는데,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 그래서 시내에 나가도 열려있지만 닫힌 방 같은 기분이었다. 라인강 다리 위에 선 그날도 그랬다.


라인강이 펼쳐진 다리 위에서 불꽃놀이를 봤었다. 굉음이 터질 때마다 온몸을 울리는 힘. 수많은 사람을 동시에 침묵하게 만드는 광경. 그곳엔 너와 내가 있었다. 그 기억에서 나를 지우기 위해 올라선 다리다. 다리 구석에서 한참을 울었다. 근처에는 자전거를 타고 와서 다리를 바라보는 한 사람이 있었다. 아니 사실 정확하게 그 사람의 얼굴도 행동도 기억할 수는 없다. 눈물 때문에 안경을 벗어둔 지 한참이었으니까. 메시지를 뒤로하고 다리 앞으로 섰을 때, 경찰이 찾아왔다.


그러니까. 문을 계속 열어둬도 되는 걸까.

고리에 끈을 걸다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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