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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뒤셀도르퍼 Nov 23. 2021

아직 잠기지 않은 문

나는 포기하기로 했다 3

스마트폰을 다시 켰다. 방문은 잠그지 않기로 했다. 모든 것을 그대로 둔 상태에서 더욱 처절하게 울어야 했다. 모든 것을 비워내면 괜찮을 거란 작은 소망도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몇 시간을 바닥에 있었다. 차가운 바닥이 온기로 미지근해질 때쯤 비로소 멈출 수 있었다. 멍한 마음도, 갈피를 잡지 못한 결정도 바닥에 스며 들어간 것만 같았다.


"이야기하자"

"전화 좀 받아줘"


그런 류의 반복적인 메시지. 어쩌면 너는 무엇을 말하기보단, 주기적인 진동을 보내고 싶었던 것 같다. 네가 거기 있다는 일종의 신호. 나를 붙잡고 있다는 외침 같은 것들. 내가 너를 그렇게 안아준 것처럼, 너는 진동으로 책상을 그렇게 울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너를 만났던 것은 겨울이었고, 2년 만에 만남이었다. 한결같은 지각에도 난 마음이 넉넉해있었다. 좋아하지 않던 평양냉면 음식점을 간 것도, 넉넉한 마음 덕분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난 그날 너의 얼굴에서 그늘진 차가움을 보았다. 과도한 어색함과 너답지 않은 회의감 같은 것들. '그냥 적당한 사람을 만나, 적당히 살면 되지 않겠냐'는 그런 류의 자포자기까지.


너의 차가운 방에 들어가기로 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너의 손을 잡고 온기를 전해줘야만 할 것 같았다. 자주 그렇게 전화를 했고, 자주 문자를 했다. 자주 들러 같이 밥을 먹고, 가끔 가볍게 술을 마셨다. 시답지 않은 농담을 하고, 별거 아닌 선물을 건넸다. 조금만 맛있는 집을 발견해도 호들갑을 떨었고, 다시 몇 년 후가 될지 모르는 약속을 잡아뒀다.


그렇게 다시 2년 후, 너는 너의 삶에 왔던 작은 파동을 잊지 않고 있었다. 페이스타임이다가 국제전화이다가 카톡이다가 문자이다가 다시 페이스타임이다가. 꾸준히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꾸준히 신호를 보낼 기세로. 꾸준히 내 옆에 있다는 증거로.


"여보세요"

나는 비로소 전화를 받았고, 열린 문 사이로 이야기를 해야 했다. 나는 문을 잠그지 않았고, 내 손으로 열고 다시 누군가를 마주하기로 했으니까. 입을 떼야했다. 그 무엇이든 단어를 글어모아 감정을 전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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