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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인 Oct 07. 2022

뮤지컬을 시작하다

세상의 주인공이 아니라고 느낄 때

4월의 어느 날, 나는 봄날의 햇살을 받으며 집 근처를 서성거렸다.

'어떡하지? 미쳤지 미쳤어!' 마음은 내가 미쳤다고 이야기했지만 얼굴에는 슬그머니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초조한 발걸음으로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었지만 마음은 벌써 저 멀리 오디션장으로 뻗어나가고 있었다.


나는 뮤지컬 오디션을 앞두고 있었다. 오디션이라니! 이 세 글자를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찔했고 가슴이 떨렸다. 오디션은 가수나 배우 같은 특정 직업을 가진 사람들만 보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게 아닌가. 그런데 사무직 10년 차인 내가 오디션을 보다니! 인생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물론 서른 후반에 뮤지컬 배우로 전향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었다. 만약 나이에 매우 관대한 사회나 업계라고 해도 내 재능은 뮤지컬 배우가 될 만큼 출중하지 않다. 춤은 엉거주춤 따라 하는 정도고 노래는 고음불가다. 게다가 연기는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나는 무슨 배짱으로 덜컥 취미 뮤지컬을 하겠다고 한 걸까. 


이유는 단 하나, 하고 싶었다. 무대에 오르고 싶다는 단순하고도 강렬한 열망을 8년여나 참아낸 게 용했을 뿐이었다. 마음을 참았던 이유는 취미생활의 유용함을 몰랐기 때문이다. 일이건 취미이건 내 삶을 무대에 올려도 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마음속에 품은 열망은 시간이 아무리 오래 지나도 결국 터지기 마련이다. 삶에서 유용한 것만 해야 한다고 애써 나를 속이며 살아갈수록 마음은 공허해져 갔다. 잠 못 드는 밤, 무용함의 유용함을 실험해 보겠다며 개인 sns에 의미 없는 말들을 늘어놓는 날들이 늘어만 갔다. 


그러다 나는 나오기로 했다. 나를 가두고 있는 것들로부터, 나를 감추고 있는 것들로부터. 이미 유용함의 집합체라고 여겨지는 회사에서도 나오지 않았는가. 퇴사한 후 글을 쓰며 나를 찾겠다고 발버둥 치고 있었는데, 나를 찾는 방법이 꼭 글이 아니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이야말로 하고 싶었던 일을 하기에 적기라는 마음이 생겼다. 


'뮤지컬을 하고 싶어.'

'무대에 오르고 싶어.'


단 두 마디의 마음이었다. 다니던 미술관을 그만두고 이 일을 계속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며 낮이고 밤이고 울어대던 나를 일으켜 세운 건. 슬픔을 재료 삼아 글을 쓰겠다며 노트북을 옆구리에 끼고 이 카페 저 카페를 전전하며 다녔지만 변변한 수확이 없던 내게 힘을 불어넣어 준 건. 하루 일과를 마치고 누워서 뭐 재미있는 거 없나 하며 직장인 모임 플랫폼을 기웃거리던 나는 '직장인 뮤지컬 <그리스> 배우 모집'이라는 글을 보자마자 신청 버튼을 눌렀다. 


선택을 할 때 꽤나 까다로운 편이다. 마음에 쏙 들지 않으면 여간해서는 무언가를 잘 시작하지 않는다. 워낙 변덕이 심하기 때문에 어영부영 마음이 동해서 시작했다가는 끝맺음을 잘하지 못하기에 신중에 신중을 거듭한다. 대신 이거다 싶으면 대상이 일이든 취미이든 상관없이 과하다 싶을 정도로 열정을 쏟아붓는다. 한번 나를 불태우면 내가 소진되어 잿가루가 되어버릴 것을 알기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사그라진 잿더미에서 새로운 내가 태어날지 그냥 스러져버릴지 알 수 없기에 언제나 두려웠다.


'그리스'라는 세 글자는 이미 일로 인해 스러져버린 내 마음에 다시 불을 지폈다. 1950년대 미국의 라이델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하는 전형적인 하이틴 뮤지컬. 학교의 일진 무리 티버드파의 리더 대니 주코와 라이델 고등학교로 전학 온 모범생 샌디 덤브로스키의 사랑 이야기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그 시절 청소년들의 꿈과 사랑 이야기. 전혀 어려울 것 없는 전개와 내용에 소란스럽고도 행복하게 끝나는 이야기. 이 뮤지컬이 날 한 번에 사로잡은 이유가 궁금했다. 


정말 단순한 이유로는 남자 친구와 본 첫 뮤지컬이기 때문이었다.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첫 연애, 지금 생각하면 참 어리디 어렸던 스물셋에 나는 남자 친구와 손을 잡고 <그리스>를 보러 갔다. 사실 내용이나 장면이 딱히 기억에 남지는 않는다. 그 유명한 그리스의 넘버 'Summer Nights'도 'We Go Together'도 마음에 담기지 않았다. 분명 그랬다면 내가 혼자 흥얼거렸을테니까. 이십 대 초반이었지만 아직 십 대의 마음을 간직하고 있었던 나는 무대 위 청춘들의 모습보다는 내 청춘이 더 설렜다.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내 모습이 예뻤다. 무대도, 무대를 둘러싼 그 시간과 공간도 날 위한 것만 같았다.


날 위한 세계는 안타깝게도 대학교 졸업 이후 자취를 감추었다. 정확히는 내가 이 세상의 주인공이 아니라는 사실을 사회생활을 하면서 깨달았다고 보는 게 맞겠다. 회사에 들어간다는 것은 이미 누군가를 위해 마련된 무대 속에 내가 뒤늦게 투입되는 것을 뜻했다. 더 이상한 사실은 그 무대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것에 있었다. 고용주를 위한 것인지 모두가 찬양하는 돈을 위한 것인지 노동자들의 피와 땀으로 겨우 돌아가는 사회를 위한 것인지 도대체 알 수 없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깜깜한 무대 위에 내던져진 느낌, 이미 펼쳐진 이야기 속에 억지로 스며들기 위해 눈치껏 연기하는 삶. 어쩌면 본질적으로 인생은 무대이고, 삶은 연기라는 것을 비로소 깨닫기 시작한 시점부터 나는 내가 무대 위 주인공이 아니라는 사실에 절망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다시 한번 주인공이 되고 싶었던 걸까. 멋모르던 청춘의 열기에 마음이 붕붕 떠올라 모든 걸 할 수 있었다고 믿었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었던 걸까. 가장 소중한 건 옆에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모른 채 더 멋진 사랑을 꿈꾸던 철없던 시절로 돌아가 예전 사랑에게 속죄라도 하고 싶었던 걸까. 인생에 지쳐버릴 대로 지쳐버린 사회생활 10년 차인 사람, 꿈과 사랑에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고 믿게 되어버린 서른 후반의 나는 그렇게 덜컥 뮤지컬을 하게 되었다. 햇살이 유난히도 밝고 예쁘던 4월의 어느 날, 같은 자리에서 머뭇거리는 게 지겨워진 나는 내 무대가 있을지도 모를 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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