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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인 Oct 11. 2022

고음불가, 노래를 배우다

자유로워지기 위해

"고음을 잘 내는 사람들의 비결이 뭔지 알아요? 바로 자신이 고음을 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 거예요."


집 근처의 한 연습실, 내게 노래와 연기를 가르쳐주신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었다. 오디션을 그냥 볼 자신이 없었기에 나는 한 현직 뮤지컬 배우분께 레슨을 받고 있었다. 고음이 잘 올라가지 않아서 주저주저하는 내게 선생님은 고음을 내는 기술을 가르치시기보다는 '생각'에 관해 이야기하셨다. 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기에 할 수 있다 -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쿵! 하는 것 같았다. 한 번도 이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동안 내 목구멍을 막고 있던 게 두려움이었을까?


할 수 있다는 건 자신감, 할 수 없다는 건 두려움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할 수 있다는 생각보다는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던 날들이 더 많았다. 노래를 할 수 있을까? 무대에 설 수 있을까? 혹은 내가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글을 쓸 수 있을까? 할 수 없을 거란 두려움은 수많은 물음표를 동반했다. 자신 있게 느낌표를 딱! 찍고 앞으로 나아가야 했건만, 물음표가 던지는 질문들을 해결하기 위해 나는 제 자리에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고음불가다. 사실 아무도 그렇게 부르지 않는데 스스로 그렇게 칭하고 다녔다. 남들 앞에서 노래를 잘 부르지는 않았지만 어쩌다 부르게 되면 "저는 고음을 잘 내지 못해요."라며 미리 연막작전을 펼치곤 했다. 그렇게 해야 만에 하나 노래를 부르다가 거슬리는 소리가 나도 면책이 되는 것 같았다. 자연스레 노래는 주로 혼자 있을 때 불렀다. 사실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집에 있으면 항상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고 흥얼거렸다. 더 흥이 오르면 춤까지 췄다. 밖에서는 노래 같은 건 부르지 않는 사람처럼 굴다가도 나만의 공간에 있으면 자유로워졌다.


하지만 혼자 있을 때조차도 고음을 질러보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에게 좋은 소리를 들려주지 못하는 게 겁나기도 했지만, 스스로 나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고 싶지 않은 마음도 컸다. 수치심과 완벽주의, 두려움은 하나의 세트 같은 것인지 나는 부끄러운 내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에 완벽하고 싶었지만 완벽할 수 없을 거란 두려움에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방안에서만 자유로워지는 게 정말 자유로운 걸까? 어쩌면 더 나아갈 수 있을지도 모를 가능성을 스스로 부정하는 게 진정한 자유인 걸까?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게 내게 주어진 자유를 정말 자유롭게 쓰는 건지. 노래를 진정으로 자유롭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만 머물던 게 밖으로 나아갈 수 있다면 그땐 정말 가벼워질지도 몰라! 항상 가수들이 시원하게 고음을 내지를 때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는데 그게 궁극의 자유로움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은 한 마디 덧붙이셨다.


"뮤지컬에서 노래는 대사로 전달하지 못한 이야기가 터져 나오는 거예요. 대사로 하다 하다 안되어서 노래로 분출되는 거죠. 서연 씨는 너무 노래를 하려고 해요. 노래가 아닌 말을 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마음속에 맺혀있는 말이 터져 나오는 게 노래라니! 내 안에서만 맴도는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지 못해 항상 답답했던 내게 노래가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뮤지컬 속 노래는 나의 실력을 보여주는 것이라기보다는 내 안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놓였다. 물론 공연하는 사람으로서 실력도 갖춰야겠지만 나는 그보다는 두려움을 깨고 마음속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하는 자세를 가지는 게 우선이었다.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데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길을 걸으며 집에서도 내내 연습하고 선생님 피드백도 받으며 연습했던 노래를 조그맣게 불렀다.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내 노래는 방안을 벗어나서 봄날의 길에 흩뿌려지고 있었다. 두려움과 설렘에 서성대던 마음이 조금 더 가벼워진 설렘과 기쁨으로 바뀌어서 공중으로 흩날렸다. 그렇게 길을 걸으며 노래를 풀어놓아줄 시간, 나를 풀어줄 오디션 날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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