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주인공이 되는 법
나는 또 주인공이 아니구나.
약간의 서운함과 이상한 패배감이 몰려왔다. 뮤지컬을 시작하고 나서 세 번째 연습 시간, 오디션을 본 후 <그리스>를 올릴 직장인 극단 1기의 모든 배역이 정해지는 순간이었다. 내게 주어진 배역은 '마티(Marty).' 주인공인 샌디(Sandy)와 대립각을 세우는 여학생 무리 속 한 명이었다. 사전 배역 희망 조사에 2순위로 마티를 쓰기는 했지만 그건 선호도를 제출하기 위해 적어낸 것뿐이었다. 사실 마티라는 이름조차 처음 듣는 것 같이 생소했다. 내 기억 속에 이 배역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마티를 2지망으로 적어낸 건 일종의 보호막 같은 것이었다. 샌디를 하고 싶지만 이 역을 맡을 수 있을지 당연히 알 수 없었다. 샌디 다음으로 끌렸던 리조(Rizzo)라는 역은 성격이 너무 강한 인물인 탓에 잘 표현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알 수 없는 불확실성과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자신감 결여를 제치고 남은 역은 이름조차 낯선 마티였다.
1순위로 원하던 배역을 맡지 못한 것이니 서운할 수는 있었다. 돈 받고 무대에 서는 프로 배우라면 어떤 역이 주어져도 당연히 해야겠지만, 나는 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내 돈 내고 뮤지컬을 하는 취미 배우였다. 세상살이 뜻대로 되는 거 하나 없는데 취미에서만큼은 원하는 걸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패배감과 좌절감까지 밀려올 건 또 뭐람? 연기는 처음 하는 것이었고 노래는 애매하게 하는 걸 누구보다도 자신이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나보다 샌디 역이 더 잘 어울리는 사람이 그 역을 맡게 된 걸 텐데 왜 이런 깊고도 진한 부정적인 감정이 떠오르는 걸까. 허구 속 세계의 주인공이 되는 게 내게 그렇게 크고 중요한 일이었던 걸까.
나는 현실의 내 삶 속에서 주인공이 아니었다. 적어도 스스로 그렇게 생각했다. 겉으로 봤을 때는 주인공이 아닐 것도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드라마틱 하게 성공한 사람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패배한 사람도 아니었다. 적어도 사회적 기준에 비추어보면 그랬다. 가끔 성공과 실패의 이분법적 구성이 웃기다는 생각도 든다. 누가 그렇게 자로 똑 재듯 기준을 만들었을까. 그리고 그 기준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려대는 우리는 또 뭐지. 시니컬한 생각이 나를 타고 들 때쯤 문득 깨달았다. 외부의 잣대와 상관없이 나는 내 기준에도 여지없이 인생 속 무대의 주인공이 아니구나.
이런 생각은 한 6년 전쯤부터 어렴풋이 하고 있었다. 사회생활 5년 차 쯤 접어드니까 사회가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또 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 6시쯤 겨우 몸을 일으켜 사회 속 가면을 쓰기 위해 나를 단장한다. 낯선 사람들과 함께 지하철을 타고 정해진 역에 내려 정해진 회사로 들어간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나라는 사람은 잠시 내려놓은 채 주어진 일을 하고 주어진 잡담을 한다. 간혹 혹은 자주 야근을 하고 일하는 시간 내내 내려놓은 나를 다시 채 꺼내 입지도 못한 채 집에 와 잠에 든다. 너무 뻔한 일상은 3개월이면 적응했고 정말 별게 아니었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또 별거였다. 이 모든 삶이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이게 정말 내가 원한 것이었을까? 이 모든 생각이 싹을 피우는 것을 볼 때쯤 인생은 너무 무거워져 버렸다.
내 삶은 정도에 부합한 삶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명문대를 나와 취업난이 그렇게 심한 건가?라는 오만한 생각을 할 정도로 바로 대기업에 들어갔다.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10개월 만에 회사를 그만두고 이번에는 내로라하는 로펌에 들어갔다. 이곳에서는 비교적 길게 다녔지만 그래봤자 5년도 채우지 못하고 또 회사를 나왔다. 그 후로도 입사와 퇴사는 반복되었다. 하고 싶은 일을 찾겠다고 이러저러한 일을 하다가 결국 미술계에 들어갔고 지금은 또 작가가 되겠다고 글을 쓰고 있다. 그러니까 나는 남들이 보기에는 나름 엘리트 코스를 밟은 사람이다. 스스로 그 코스를 이탈하여 멋대로 살기 힘든 세상에서 멋대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도 나는 내 인생의 주인공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등 떠밀려 서게 된 타인의 무대. 내 선택인 줄 알았지만 알고 보면 부모님, 학교 선생님, 먼저 사회에 진출한 선배님, 같은 동기들 등 수많은 타인의 입김이 가해진 선택은 나를 다짜고짜 낯선 무대 위 조연으로 올려놓았다. 내가 선택하지 않았다는 것은 내가 원하는 자리에 설 수가 없다는 것이다. 내 자리가 아닌 곳에서 연기를 하며 그제야 내가 무엇을 바라고 원해왔는지를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좋은 성적을 받고 좋은 학교에 나와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것은 내가 원한 무대가 아니었다. 내가 진심으로 원했던 건 나답게 사는 것 즉, 창작을 하는 것, 그 창작물로 다른 사람들의 공감을 얻고 인정을 받는 것, 무대 위에서 '나'라는 사람을 마음껏 표현하며 사는 것, 다른 사람이 만들어 놓은 집단 속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내가 꾸린 집단 속에서 마음 맞는 사람들과 서로 도와가며 일하는 것이었다. 어쩌면 너무도 이상적으로 보이는 이런 일들이 펼쳐지는 세상이 바로 내가 바라는 무대였다.
그리고 이제 막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는 시점에서 이 삶도 그리 녹록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이미 자신의 마음을 따라 살고 있는 사람들을 따라잡는 건 힘에 부치는 일이었다. 비전공자로 미술계에서 살아남는 건 나 스스로 미술인이라 불릴 자격이 있나? 하는 생각과 끊임없이 싸워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미술관에서 부리는 텃세를 견뎌야 한다는 것을 뜻했다. 결국 그 모든 것을 이기지 못하고 자의인 듯 타의인 듯 또 무대 아래로 내려와야 한다는 것을 말했다.
타인이 만든 무대 속에서도, 내가 만들어 가고자 노력했던 무대 위에서도 나는 항상 주연이 아니었다. 빛나는 스포트라이트는 남의 차지였고 나는 어둠 속에서 그 빛을 바라보며 때로는 노력했고 때로는 무기력했다. 그래서 뮤지컬에서만큼은 주인공이고 싶었는데, 실제가 아닌 가상의 무대 위에서만큼은 주연이 되고 싶었는데! 투정 같은 마음이 스쳐 지나갔다.
애써 서운한 표정과 마음을 감추고 있던 찰나늘 놓치지 않은 건지, 오디션을 진행한 선생님들이 덧붙이셨다.
"그리스는 각각의 배역이 모두 개성이 뚜렷해요. 대부분의 캐릭터가 솔로곡도 있는 만큼 모두가 주인공인 뮤지컬이고요. 그래서 이 극을 올리기로 한 거랍니다!"
아! 그런 뜻이 있었구나. 보통 뮤지컬은 주연과 조연, *앙상블의 역할과 비중이 너무나 뚜렷하게 달리 나타난다. 그렇기에 정말 매력적인 조연이나 앙상블이 아니고서는 공연이 끝나고 나면 대부분 주인공을 기억한다. 자주 만나는 사람에게 마음 주기 쉬운 것처럼 공연하는 3시간가량 무대에 자주 모습을 보이는 캐릭터와 사랑에 빠지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나 또한 그런 주인공들에게 마음을 빼앗기곤 했다. 뮤지컬은 으레 그렇게 굴러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모두가 주인공인 뮤지컬이라니, 그래서 이 작품을 올리기로 한 거라니. 고개는 끄덕였지만 마음까지 온전히 끄덕여진 건 아니었다.
배역 발표를 마치고 대본 리딩에 들어갔다. 원하지는 않았지만 내게 찾아온 마티라는 이 아이를 알아야 하는 임무가 주어졌다. 사전 지식이 없는 상태로 글 속에서 마티를 읽어내려갔다. 많지 않은 대사 속에서 마티를 파악하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학창 시절에 흔히 볼 수 있을 법한, 얼굴은 예쁘장한데 공부에는 영 관심 없는 학생. 책 한번 펼쳐볼 시간에 사귀었던 오빠들 사진을 보며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는 소녀.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동급생 소니는 애 취급하며 자신은 성숙한 여인이라 믿는 여자아이. 정말 나와 다른, 그래서 내가 과연 마티라는 배역을 소화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선 그런 사람이 바로 마티였다.
그런데 어쩐지 리딩을 마치고 나자 이 아이가 사랑스러워졌다. 나와 너무나 다른 캐릭터이지만, 평소에 이런 성격을 가진 사람을 사랑스럽게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이상하게 사랑스러웠다. 이유는 바로 내 배역이기 때문이었다. 이제 나는 마티다. 그리고 마티는 나다.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는 캐릭터라면, 나조차도 기억하지 못하는 캐릭터라면 나의 무대에서만큼은 내가 이 아이를 빛나게 해줘야지, 많은 사람들이 사랑할 수 있도록 해야지 하는 마음이 올라왔다. 이제 마티를 무대 위에 올릴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이런 책임감이 묘하게 설레고 산뜻하게 다가왔다. 더 이상 내가 주인공이 아니라는 사실이 서운하지도, 패배스럽지도, 좌절스럽지도 않았다. 내가 되고 싶었던 건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돋보이는 주인공이 아니었다. 그저 나라는 사람을 무대 위에 올리고 싶었던 것이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의 모습 그대로 무대 위에 오르는 것, 그게 바로 내가 생각한 주인공의 정의였다. 그리고 마티는 그런 깨달음을 주기 위해 어느 날 갑자기 내게 다가왔다. 세상이 정한 기준에서 벗어나 살아가도, 원하는 곳에서 날 받아주지 않아도 그런 나를 자책하지 말라는 것. 그 누구도 아닌 너 자신이 되는 것이 바로 인생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준 마티와 사랑에 빠져버렸다.
* 마티 마이 러브
: 마티는 극 중에서 '프레디 마이 러브(Freddie, My Love)'라는 노래를 부른다. 단 두 번 만에 소녀의 마음을 빼앗고 날름 해군에 입대해 버린 프레디를 진정한 사랑이라 믿고 기다리는 내용의 노래이다. 나는 마티가 프레디를 기다리는 것도 좋지만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하기를 바랐다. 자신이 오매불망 바라던 환상을 충족시킨 상대에게서 환상을 걷어내도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 그것보다는 부족한 자신을 먼저 더 사랑해 주길 바랐다. 이미 스스로에게 환상 같은 건 없는 우리이기에 그 남루한 모습을 더 사랑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마티의 어떤 면도 사랑해 주겠다고 스스로 한 다짐이기도 했다. 그게 내 무대에서 마티로 서는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하고도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앙상블(ensemble)
주연배우의 상황을 드러내거나 사건을 고존시키는 2명 이상의 배우를 말한다. 이들은 코러스를 넣어주거나 움직임, 동작 등으로 생동감을 더하는 역할을 맡는다. -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