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과 구원자가 되고 싶다
“나라를 구한 신념의 소녀”
잔다르크는 신의 계시를 받고 백년전쟁의 프랑스를 패배에서 구해낸 10대 프랑스 소녀이다.
그녀는 나의 모든 정체성이 담겨있다.
10대는 아니지만 30대인 나는 여전히 내가 어떤 일을 할 때 신의 계시를 받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문제를 나만 온전히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내가 누군가의 인생을 바꾸고 도와줄 수 있다고 말이다.
사리분별을 할 줄 알아야지, none of your business(네가 상관할 일이 아니다), 이 더러운 진흙탕에 왜 발을 담그려 하냐 등등 내가 들어본 수많은 이야기들이다.
나는 왜 굳이 나에게 하등 도움도 안 되고 쓸모도 없고 오히려 내 에너지를 쓰면서 남을 구원하려고 하는 걸까.
그것은 바로 조울증에 걸렸기 때문 일 것이다.
내가 여전히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고 믿고 있고 이 모든 것은 그 사람을 도와주라는 신의 계시이고 이불평등하고 불합리한 세상에서 고통받는 존재를 내가 구원해줘야 할 거 같은 느낌이 든다. 무엇보다도 내 상처보다 그들의 상처가 더 깊게 느껴져서 고통스럽다.
나의 상상 속 나는 인권변호사였다가, 공군기자였다가, 국경 없는 의사회의 회원이었다가 아프리카의 UN직원이었다.
물론 이런 것들 중에 이 꿈을 이루어낸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되지 못했다. 왜냐면 진지하게 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기 때문이다. 할 마음도 없었을지도 노력할 마음도 없었다. 왜냐면 나는 겁쟁이니까.
그러나 나는 봉사활동에는 관심이 많아서 아프리카 아이들을 고등학교 때 후원하거나 대학교 때 봉사동아리에 들곤 했다.
문제는 그 일들은 내가 남을 도와주고 구원해주고 있다는 느낌이 안 들었다. 이건 내가 원하는 남을 도와주는 게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람찬 느낌도 없고 뭘 한다는 느낌도 안 들었다. 내가 원한 건 이런 게 아니야. 위험하게 아프리카 같은 데 가서 총탄이 날아오는 그곳에서 아이들을 도와주는 거지. 그게 내가 원하는 거야.
그니까 나는 도파민이 돋는 일을 좋아했던 거다. 물론 누구나 있어 보이게 해외에 가서 봉사해야지~하는 마음을 갖고 있을 수 있다. 그게 스펙이 되니까. 봉사시간을 많이 주니까. 좋은 사람 착한 사람처럼 보이니까. 그게 실질적인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게 아니었다. 나는 진지하게 그곳에서 도파민을 느끼고 싶었던 거 같다. 겁쟁이이긴 해도 거기서 죽어도 좋다고. 어차피 나는 항상 죽고 싶었으니까. 그런 숭고한 일을 하고 죽어도 될 거 같다고. 난 가진 것도 별로 없으니까 잃을 것도 미련도 없다고 말이다.
지금도 현재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여기다 다 말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내가 지금 경험하고 있는 이 엄청난 소용돌이에서 나는 한 명의 여성을 구원해주고 싶다. 그녀의 삶이 너무 불쌍해서 그녀가 웃는 모습이, 그녀의 인스타그램의 화려한 모습과 대조되는 그녀의 진실이 너무 안타까워서 그녀를 도와주고 싶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아무도 그녀를 도와주지 말라고 한다. 그리고 내 갈길을 가라고 한다. 그녀가 감당하고 해결할 일이라고. 내일이 아니라고 한다. 그 진흙탕에서 나는 나가야 하고 그들의 연극 속에서 연기자가 아닌 관객이 되어야 한다고.
나는 그녀의 아픔이 내 아픔 같다. 객관적으로 그녀는 고통을 받고 있고 나의 에너지를 쓰고 나를 파괴하면 그녀가 살아나서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 같다.
아니. 무엇보다도 그냥 내가 그녀의 삶에 관여하면 어떻게 될지 그게 궁금할지도.
드디어 난 조울증이 어느 정도 치료가 되어가고 있다는 걸 느낀다. 사실 전문가들이 아무리 말한들 나는 그동안 듣지 않았다. 전문가를 찾아다녔으면서, 오히려 그들의 실력을 의심하고 그들이 게으르며 일을 하기 싫어하고 그런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왜 나처럼 그들은 열심히 타인을 돕지 않지? 그게 그들의 일이잖아?
하지만 이젠 전문가들 말을 듣기로 했다. 이건 내일이 아니다. 그녀의 일이다. 가슴은 여전히 아프고, 내가 여전히 그녀를 구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전문가들은 그러면 내가 다칠 거란 걸 아니까 그런 거겠지. 그렇지만 속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나는 좀 다쳐도 되지 않을까? 그녀는 어차피 행복하게 살았던 사람이고 나는 매일 죽고 싶었던 사람이니까.
죽고 싶은 사람은 삶의 욕망이 강한 사람을 절대 이기지 못한다는 걸 조울증 진단 후 깨달았다.
나는 매번 죽음을 꿈꾸는데 그런 걸 평생 생각해보지 않고 살아온 사람을 내가 절대 이길 수 없을 것이다.
나에겐 떠나고 싶은 세계가 즐겁고 쥐락펴락하고 싶은 사람을 내가 이길 수 있을까?
그 세계에서 지켜야 할 것도 요구하는 것도 많은 사람을 내가 이길 수 있을까?
나는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왜냐면 나는 매일 죽을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사실 그런 거 따위는 다 필요 없다고 아주 오래전부터 생각했으니까.
나는 너무 고통받았고 죽음으로 쉬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포기가 더 쉽고 내 권리를 지키는 것이 너무 힘이 들었다.
그런 내가 싫어서 또 죽고 싶고 그것은 그냥 무한반복의 악순환인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남들에게 그만큼 쉽게 휘둘리고 이용당하는 거 같다.
나는 속여지고 기만당하는 일이 많았던 거 같다.
남들도 다 나 같을 줄 알고말이다.
지금은 이런 상황에서 그렇게 까지 죽고 싶지는 않지만 이 상황이 너무 스트레스받고 불안하다. 그리고 무기력해진다. 매우 고통스럽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나를 보고 나는 조울증이 치료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번엔 죽고 싶지도 않고 내 감정을 정확히 인지하고 받아들이고 있으며 전문가의 조언을 수용하고 잠을 일찍 자고 잘 자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그녀에 대해서 애써 생각하는 걸 멈추고 있다. 그녀가 여전히 불쌍하고 내가 구할 수 있을 거란 믿음이 있지만 그녀에 대한 생각을 멈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인에게도 굳이 그녀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 않고 두루뭉술하게 그냥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도 마음이 좀 나아졌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브런치에 글을 남기면서 그녀에 대한 내 죄책감을 날리고 싶다. 나는 내 갈길을 가야 하고 내 삶을 살아야 하고 평온을 찾아야 하니까. 그게 조울증인 나에게 필요한 것이다.
이기적인 거 같고 죄책감이 느껴지고 그녀의 웃음을 생각하면 슬프지만. 다들 이렇게 살아서 나처럼 조울증에 걸리지 않았을 수도. 남들은 다 아는 것들이 왜 나에게는 여전히 어려울까. 왜 나는 아직도 잔다르크를 꿈꾸는 걸까. 글을 쓰는 와중에도 그녀의 미소가 떠올라 미치겠다. 하지만 그녀의 인생에 관여하지 않으려는 내 인내심과 절제 역시 괄목할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