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들 저마다의 길을 걷고 있네, 나의 방황은 언제 끝날까
— 20년의 방황 끝에 깨달은 '꾸준함'의 가치
조울증에 20여 년을 갇혀 살다 보니, 문득 세상에서 나만 멈춘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조증과 우울증을 극단적으로 넘나드는 삶에서 과연 한 개인의 발전이라는 것이 가능할까. 발전과 성장을 위해서는 꾸준함이 필요하고, 단단한 루틴이 필요한데 말이다.
나는 조증일 때면 그것들을 우습게 여겼다. '뭘 그렇게 다들 꾸준히, 멍청하게 그런 짓을 해? 그 긴 세월을 어떻게 묵묵하게 불안함 없이 그 길을 걸을 수 있어?' 매일매일 출근하고 운동하고 연애하며 열심히 사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다들 왜 저렇게 성실하게 열심히 무언가를 위해 살까? 어차피 죽으면 끝인 거 아닌가?'
엄마가 대학교 아침 수업 때 나를 엄마 차로 데려다줄 때 나는 도로를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고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저런 삶을 살까. 나는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 나는 일을 안 하고도 자유롭게 살 거야. 도대체 어떻게? 하지만 그런 생각을 했었다.
그러면서도 무기력하게 누워있을 땐 내 스스로가 한심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행복해 보이고 갈 곳이 있어 보였다. 나만 없는 거 같았다. 나만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그래 죽어버리자. 이렇게 살바에야. 그게 차라리 낫겠어.
이런 양가적 감정이 내 삶을 지배했다. 조증일 때는 타인의 성실성을 무시했고, 우울증일 때는 죽음을 생각했기에 그들의 에너지를 여전히 무시했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죄다 바보이고, 인생은 한방이라고 믿었다.
그 긴 시간 동안 나는 나의 세계에 갇혀 북 치고 장구 치는 동안, 세상은 빠르게 돌아가고 모든 사람들은 자기들의 삶을 챙기고 있었다. 나는 어떤 커리어도 내세울 것 없이 방황만 했다.
나의 삶은 뿌리가 없는 나무와도 같았다. 흙이 마음에 안 든다고 계속 돌아다니다 결국 뿌리가 다 빠져버린 것이었다. 늙어 에너지는 바닥나고 열정도 사라졌지만, 그 흔한 커리어 하나 없었다. 내 삶에 꾸준함이 없었기에 내세울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항상 도피만을 생각했기에 '굳이 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만 가득했다.
심지어 20대에 갑상선암까지 겪고 나자, 그 생각은 더욱 고착화되었다. '나는 죽을 고비까지 겪었는데, 그렇다면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야 하는 거 아닐까.' 나는 완벽한 일탈도 아니고 그렇다고 제대로 산 것도 아닌 채 갑상선암을 무기로 세월을 날리기 시작했다. 분명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내 주변 지인들의 삶은 우습게 느껴졌다. '왜 다들 그렇게 열심히 살까. 어차피 나처럼 죽음의 문턱을 갈 텐데.' '너넨 죽음을 몰라서 그래. 한심해." 그들의 삶이 설사 객관적이고 성실하게 이루어낸 견고한 성벽일지라도 말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들이 이루어낸 모든 것들을 이제 따라잡기 늦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내 나이는 더 이상 젊지 않구나. 너무 무서웠다. 내가 조증과 우울증을 오가며 나의 세계에 사는 동안, 모든 사람들은 다 자신의 길을 찾고 가정을 꾸리고 있었다. 나만 여전히 '내가 가능성이 있고, 세상이 이상하다'라고 생각했다.
물론 남과 비교한들 바뀌는 것도 없고 비교하면 끝도 없다고들 한다. 그리고 내 나이가 여전히 젊다면 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남과 비교했어야 했다. 아니, 적어도 성공에 대해서, 아니 인생에 목표는 절실히 있어야 했다. 남이 하는 모든 것을 깔보고 비웃다가, 결국 그들의 발꿈치도 따라잡지 못했다. 그런 상대적 박탈감은 나를 끝없는 우울 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전같이 압도적으로 침대를 벗어나지 못하는 우울은 아니었다. 그저 견딜 수 있는 정도. 나조차도 놀랄 정도였다. 내가 나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했기 때문일까. 갑옷처럼 단단히 방패막이되었던 나의 이야기를 세상에 내보이겠다는 용기가 나를 일으켜 세운 것이 아닐까.
결국은 조울증이 끝나가고 있는 걸까.
내 삶은 내가 결정하고 나만이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무섭고 두렵지만 그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을 인정한다. 남들도 다 해냈으니까,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작은 희망의 불씨가 마음속에서 타오르고 있다. 긴 방황이 끝나고 나도 뿌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다른 나무들처럼 사계절 알록달록하게 변하고, 마침내 열매도 맺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이라도, 방황을 끝내고 멈춰버린 나를 다시 세상의 시간 속으로 끌어내야 할 때다. 물론 그렇다고 뿌리가 하루아침에 튼튼할 거라고 믿기는 어렵다. 그저 도피하지 않기로 결심했을 뿐이다.
죽음을 선택하지 않기로. 설사 실패하더라도 이 삶을 지켜주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