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바람에도 흔들리는 나

자존감, 매력, 취향이 없는 삶

by 고 임리

나를 잘 안다고 믿었는데



뭐가 도대체 문제였을까


사실 나는 나를 잘 안다고 믿었다. 나는 타인들에게 고집이 센 사람으로 비치곤 했다. 하지만 나는 나를 잘 몰랐던 거 같다. 아니 나는 나를 알지만 또 몰랐고 알려고 했지만 알 수 없었다.


조울증이라서? 불안증이라서? mbti intp성향이라서? 도대체 나는 뭐가 문제였을까. 나는 서브웨이에 가서 채소를 고르는 것을 좋아했다. 다른 한국인들은 그런 게 싫다며? 나는 커스텀하고 뭘 더 넣어달라고 하고 빼달라고 하고 그런 걸 좋아했다. 이것만 보면 나는 참 선택을 잘하는 거 같다.


그러나 그것은 그냥 그걸 남들이 못하니까 나는 잘해라고 보여주기 위한 나만의 고집불통이었던 거 같다. 나는 정말 그걸 고르기 좋아했던 걸까. 그게 효율적이라고 생각해서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내돈내산이니까 최대한 내가 원하는 대로 하겠다는 그런 마음. 그건 차가운 돈의 영역의 세계였다. 그리고 나와 직원이라는 알 수 없는 갑을 관계가 명확한 지점이었으니까.






타인앞에서 작아지는 나


문제는 내가 갑을 관계를 명확히 파악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일어나는 것이었다. 타인과 있을 때. 불특정 다수와 있을 때. 나는 그들에게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들이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는 답을 내려고 노력하고 그런 행동을 하게 되었다. 그렇다. 나는 가스라이팅에 너무 취약한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타인의 영향과 기운을 너무 많이 흡수해서 그들에게 심하게 흔들렸다. 아니 그들을 좋아고 잘되고 싶은데 어땋게 해야할지 몰랐다.


연애에서 친구관계에서 인간관계에서 나는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항상 전전긍긍이었다. 나는 사실 통제적인 성향이었던 거 같았다. 그들을 통제하고 싶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던 거 같다. 그래서 그들이 좋아할 만한 것들을 하려고 했다. 그들이 먹고 싶어 할 거 같은 걸 고르게 하고 그들이 낼 수 있는 범위의 가격의 경험을 제안했다. 내가 하고 싶은 건 그런 게 아닌 거 같은데. 합리성 효율성의 이유로 그런 것들을 고르게 되었다. 그게 그들과 갈등이 없을 테니까. 그래야 그들이 날 좋아할 수일을 거니까.


하지만 그런 경험은 나를 자꾸 갉아먹는 거 같았다. 나를 편치 않게 만들었다. 혼자 있는 게 오히려 더 편했다. 물론 자기가 원하는 걸 어떻게든 부드럽고 좋게 잘 의견을 전달하거나 타인을 그렇게 설득 유도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리고 그걸 잘 해내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또한 설사 남들을 위해서 자기의 것을 좀 포기해도 나중에 또 자기의 의지를 표출하면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 게 효율적이고 오히려 합리적인걸 좋아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난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타인과 있을 때 내 의사를 말하는 것이, 내가 원하는 걸 선택하는 것이 너무 어려웠다. 내가 내향적이라서 그런 걸까. 그건 아니었다. 나는 학급회장 선거에서도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하도 회장이 되기도 했던 사람이다. 나는 그런 잠재력이 있던 사람이었다. 문제는 그조차도 결국 1대 1의 1대 소수의 관계가 아니고 평가를 받는 자리도 아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건 그냥 타인들이 좋아할 만한 나의 모습을 잘 연기하면 그만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쇼에는 내가 타인을 조정하거나 설득할 필요도 없었다. 이미 내가 회장이 될 가능성이 충분했고 나는 그저 그걸 확실히 하기 위한 연극만 제대로 마치면 되었다. 남들을 관찰해서 그럭저럭 그렇게.


하지만 완전히 새로운 세상에 발을 들이거나 1대 1이나 1대 소수의 만남에서 나는 그들을 설득하고 통제하는데 변변히 실패했다. 그것은 이미 예정된 일이었다. 나는 너무 낮은 자존감을 가지고 있었고 취향을 발전시키지 못했으며 그로 인해 매력이 상실되었기 때문이다. 타인과 있을 때 나답지 않고 나로 살 수가 없는데 거기서 타인이 나의 매력을 느낄 수가 있을까. 아니 나조차도 타인의 매력을 전혀 알지 못하겠으니까. 그냥 그들이 친절하다, 유하다, 내기운에 영향을 못 미친다 혹은 그들은 기쎄다, 힘들다, 내 기운에 영향을 미친다 그 정도로만 알 수가 있는 것이었다. 물론 나는 타인의 불안과 단점도 잘 느낄 수 있긴 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타인을 볼 때 그들의 외관과 매력 나에게 도움이 되는지 아닌지를 본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아니, 나도 그런 사람이었다. 문제는 그 판단력이 빠르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사람을 처음 보고 예쁘다 잘생겼다 매력 있다 나에게 도움 된다 그런 게 빠르게 파악되지 않았다. 그러니 나 역시도 그렇게 살 수가 없었건 것이다.


나는 오히려 타인의 불안과 불편함, 고통, 부족함이 더 잘 보였다. 그게 나라는 사람이 생각해오고 있었던 것이었기에. 산다는 건 내가 매력적이고 괜찮은 외모고 남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걸 어필하면서 사는 행위였다. 나는 그런 걸 아주 오랫동안 무시하고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과하게 꾸미는 사람들, 이상한 옷을 입고 다는 사람들, 너무 말이 많은 사람들 헤벌쭉하게 웃는 사람들을 무시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그런 행위를 통해서 자기를 어필하고 자기가 원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려고 노력했던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타인의 매력을 잘 파악할 수 있고 자기에게 이득인지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인간관계의 에너지의 중요성


나는 인간의 에너지에 큰 비중을 두지 않았다. 나는 이해할 수 없는 타인에 대해서 끊임없이 생각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있을 때 불안하고 싫어도 그냥 그들이 잘생겼기에, 사회적 지위가 높기에, 다정하기에 함께 있었다. 그러나 그들과 함께 있을 때 결국 내 에너지는 소진되었다. 왜냐면 내가 그들을 더 좋아해서 그들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했으니까. 나는 그들 앞에서 나다울 수가 없었으니까. 나다운 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들의 작은 반응에도 너무 많이 흔들렸으니까.


그럼에도 나는 그들이 객관적으로 좋은 스펙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만나려고 했으니까. 그들을 만나는 것이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거 같아서. 나의 감이나 내 몸과 생각의 에너지를 무시한채. 호기심으로, 혹은 그 사람이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라는 희망으로. 물론 이런 사람들을 잘 이용하고 그들의 약점을 파고들어서 흔드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런 게 일상이고 자연스럽고 쉬울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너무 어려운 일이 돼버린 것이다.


그 이유는 내가 나를 몰라서. 내가 원하는 게 몰라서. 설사 알더라도 어떻게 갖는지 몰라서. 그 모든 혼란 속에서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나의 에너지에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은 과감히 쳐내야 했다. 그들의 객관적인 스펙이 불러오는 호기심으로 그들을 붙잡아두지 말았어야했다. 내 에너지를 갉아먹는 사람은 피하고 멀어져야 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을 통제하고 싶었기에 그들과 멀어질 수가 없었다. 내가 그들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이렇게 불안한 인간관계는 내가 내 선택에 후회하기 싫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나는 변변히 내 선택을 과거로 돌아가서 후회했다. 나는 항상 과거에 머물고 있었다. 내가 이런 선택을 했다면? 내가 그 사람에게 이렇게 했다면? 내가 이랬다면 저랬다면. 그런 생각을 끊임 없이했다. 이런 생각보다 내가 밖을 나가서 다른 사람을 만나서 내 경험을 적용했다면 오히려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나는 내 선택을 후회하고 앞으로 다가오는 일을 선택하는 것도 끊임없이 불안했다.






뿌리없는 나무는 흔들릴수 밖에


나는 이미 뿌리가 문드러져 잎이 썩은 나무였다. 나는 잎이 나서 내가 나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나는 속부터 썩어서 남들은 나무라고 여기지 않은 존재였다. 그렇지만 가끔 나무라는 존재가 필요하거나 약간의 상태가 좋은 이파리라도 필요한 사람들이 찾아오는 그런 존재. 그 초자도 그들과 함께 있고 싶어서 문제가 있는 토양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살기 위해 붙들고 있어야 할 내가 가진 가지와 이파리를 굳이 내어주는 서글픈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아니 이런 걸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게 문제일까. 왜 나는 나의 취향을, 매력을, 원하는 것을 알지도, 주장하지도 못했던 걸까. 이유야 다양하겠지만 결국 이것 역시 내가 해내야 하는 것이겠지. 욕망이 거세될 수밖에 없었던 지점은 많이 있었지만 거기에 잠식되었던 건 결국 내가 나를 버린거겠지. 슬프게도. 내가 나를 버렸는데 누가 나를 소중히 여길수가.






나는 더이상 흔들리지 않으려 한다


나는 이제 남에게 잘 보이지 않으려 노력하겠다. 내가 원하는걸 한 줄로 정확히 말하려고 하겠다. 그리고 그게 무시당하던 거절당하던 남들이 그걸로 나를 싫어하더라도 그렇게 알기로 하겠다. 그들이 정말 그런 나를 원한다면 설득을 하거나 알아서 맞춰줄 거니까. 그들을 변하게 하거나 그들이 나를 좋아해서 알아서 뭔가를 할수있을거라고 생각하지말자. 그들에게 요청하고 보여주고 졸라서라도 얻어내려고하자. 그게 안되면 그냥 포기하자. 굳이 후회하려 하거나 아까워하지 말자.


나는 이제 굳이 나를 바꾸려 하지 않겠다. 내 마음속에 드는 생각을 빠르게 말로 표현하려고 노력하겠다. 무엇보다 내 감정을 무시하지 않고 중요시 여기겠다. 순간의 감정에 집중하겠다. 남을 빨리 파악해서 그들에 대한 과도한 생각을 버리려고 하겠다. 짧은 인생 나를 위해서 살아야 하니까. 내가 원하는걸 비효율적이고 비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들어도 선택하고 그 선택에 후회하지 않고 만족해야겠다. 그래야 이 조울증을, 불안증을 잠재우고 나답게 살 수 있을 테니까.


그게 내가 싫어했던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법이니까. 자연은 순수함을 싫어한다고 하니까.


사람들은 어차피 다 똑같고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니까. 다 이렇게 이용하고 이용해 먹는 세상이니까. 내 정신의 문제가 그걸 보지 못하게 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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