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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롱 Aug 13. 2023

무인가게 범죄

아이의 카드를 누군가 쓰고 있다는 걸 알았다

 

2023년 7월 21일 오전 8시

아이들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방학식을 하는 날이다.

어제까지 하릴없이 내리던 빗소리는 뚝 그치고, 뜨거운 여름날을 예고하듯 햇빛이 눈이 부시게 거실 안쪽까지 성큼성큼 들이닥치는 아침,  

그러나 세월아 네월아 느릿느릿 거드름을 피우며 등교준비를 하는 둥 마는 둥 하는 아이들을 향한 내 눈빛이 가늘어지며 이글거린다.

그때, 아이의 용돈카드 결제실패 알림 메시지가 연속적으로 울린다.


[Web발신]

[카카오뱅크] 카드결제실패

@*@(7359)

07/21 08:17

3,900원

아@삭 해@마을점

잔액부족


[Web발신]

[카카오뱅크] 카드결제실패

@*@(7359)

07/21 08:17

1,300원

아@삭 해@마을점

잔액부족


지금 바로 내가 보고 있는 눈앞에 아이가 있는데도 옆 동네 어디에선가 아이의 체크카드는 연신 카드결제실패 알람을 내고 있는 사실이 도대체 무슨 일인가 어안이 벙벙하면서도 그제야 카드가 분실되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일단 카드분실신고를 하기로 한다.


[Web발신]

[카카오뱅크]

07/21 08:25 @@@님 카드

(7359) 분실신고가 접수되었습니다.

접수번호 [4900]




 아이의 용돈카드는 애아빠 명의의 체크카드를 만들어 준 것이라 사용할 때마다 알람이 아빠의 핸드폰으로 전송이 되는 시스템인데 며칠 전부터 옆동네 무인점포에서 결제를 하길래 자전거 타고 거기까지 가서 뭔가를 산 것이려니 그런가 보다 했다고 한다. 그러나 전날 오후부터 잔액이 부족한 상태에서도 계속해서 금액을 낮춰가며 결제를 하길래 속으로 이 녀석~~ 그러고 말았다는데...

 결국 내 아이는 카드를 잃어버리고도 잃어버린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고, 그 카드를 주운 누군가는 무인점포만을 골라가며 사용하다가 결국 잔액부족으로 결제가 실패하는 데도 불구하고 금액을 바꿔가며 끝끝내 결제를 시도한 정황이 포착된 것이다.

 

[Web발신]

[카카오뱅크] 카드결제실패

@*@(7359)

07/20 16:24

8,000원

아@삭 해@마을점

잔액부족


[Web발신]

[카카오뱅크] 카드결제실패

@*@(7359)

07/20 16:24

4,000원

아@삭 해@마을점

잔액부족


[Web발신]

[카카오뱅크] 카드결제실패

@*@(7359)

07/20 16:25

2,000원

아@삭 해@마을점

잔액부족


 분실된 용돈카드는 매주 월요일에 1만 원씩 자동이체되기 때문에 잔액이 2만 원도 채 안된 체크카드를 아침저녁으로 긁다 보니 일주일도 채 안되어 곧 잔액이 부족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소액이더라도 누군가 잃어버린 카드를 취득하여 제 카드인 양 물품을 구매하는 행위는 엄연히 범죄행위인데 설마 이걸 모르고 그랬을까 싶은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만에 하나 자신의 자녀가 스스럼없이 이런 일을 대담하게 하고 다닌다는 걸 그 부모님은 상상이나 할까 싶은 마음에 결코 이것을 좌시해서는 안된다는 정의감이 불타올랐다.

더구나 최근 1년 사이에 아이의 자전거를 두 번이나 도난당했지만 경찰서에 신고하고도 결국 찾지 못한 경험을 통해 드는 생각이 - 물질적 풍요에 익숙하다 보니 자신의 물건을 애써 소중히 여기 지도 않고 잘 간수하지 못하는 내 아이도 그렇고 남의 물건에 몰래 손대는 일이 도둑질(범죄)이라는 자각이 없는 것인가! - 정녕 일부 청소년들은 죄의식도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는 건 아닌 지 자괴감에 휩싸였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지난 3년여간 학부모회 활동을 함께 해오며 가깝게 지내는 이웃사촌이자 현직 초등학교 교사에게 이런 일이 있었음을 하소연하자 최근 초등학생부터 중고등학생까지 무인 문구점 절도사건 사례가 제법 많다며 손해 금액의 많고 적음이나 손해배상 여부를 떠나 이런 일은 귀찮다고 절대 덮어버리지 말고 반드시 경찰서에 절도사건으로 신고접수를 하라고 당부하듯 조언을 들을 수 있었다.

  



 '그래, 이건 어른으로서 해야 할 일이야!'라는 사명감을 가지고 가까운 지구대를 방문해 사건 경위를 설명하고 절도사건으로 접수를 원한다는 의사를 당당히 밝혔다. 그런데 담당 경찰관은 손해 금액을 재차 확인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신고의사가 분명한 지 물으며 미적미적 신청서류를 챙기면서 테이블로 안내하면서도 "도난카드를 사용하고 다닌 게 학생일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거죠?"부터 만약 촉법소년이라면 그 학생으로부터 어떤 손해배상도 청구할 수 없을 것이다느니 굳이 절도 사건으로 접수를 하려는 의도를 묻기도 했다.

6하 원칙에 의거하여 절도사건 경위를 작성하여 서류 접수를 신속하게 마치고 빨리 빠져나오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용기 내어 경찰관을 바라보며 말을 꺼냈다.

  

"경찰관님, 어떤 처벌을 원하는 게 아니에요. 금전적인 손해배상 같은 건 생각도 안 했고요! 다만 정말 미성년자 학생이라면 적어도 그 학생의 부모님께서는 이런 사실을 아셔야 한다고 생각해서요. 그리고 엄연히 이건 범죄라는 사실을 그 학생도 알아야 되니까요! "


그렇게 말해놓고도 무안해져 황급히 돌아서서 지구대를 빠져나온 지 한 시간 만에 문자가 왔다.


[Web발신]

[ ** 남부경찰서] 귀하의 사건 [접수번호 2023-0052**]을  **지구대 아무개 수사관이 접수하였습니다.




  다음날 아침, 또다시  문자가 왔다.


2023년 7월 22일 오전 9시 12분

[Web발신]

[ ** 남부경찰서]

귀하의 사건 [접수번호 2023-0052**]이 형사 3팀 홍길동 수사관에게 배당되었습니다.



2023년 7월 24일 오전 11시 24분

[Web발신]

[ ** 남부경찰서]

귀하의 사건 [접수번호 2023-0052**]이 형사 3팀 모르지 수사관에게 배당되었습니다.


2023년 7월 27일 오후 3시 12분

[Web발신]

[ ** 남부경찰서]

귀하의 사건 [접수번호 2023-0052**]이 여성청소년수사 3팀 잡아라 수사관에게 배당되었습니다.


2023년 7월 28일 오후 5시 27분

[Web발신]

[ ** 남부경찰서]

귀하의 사건 [접수번호 2023-0052**]이 여성청소년수사 1팀 너였냐 수사관에게 배당되었습니다.


형사팀에서 여성청소년수사팀으로 사건이 배당되었다는 것은 용의자가 학생이라는 것이리라!

그러나 수사관이 바뀌어가며 사건이 배당되었다는 안내 문자가 결코 친절하게 느껴지지 않는 건 사건 접수를 하기 위해 지구대를 찾아갔을 때 아무개 수사관의 눈빛과 말투까지 왠지 내가 굳이 일을 크게 키운 트러블메이커가 된 기분 때문이리라!  

'소액사건이라 그런 건가?'

3주가 넘도록 아무런 연락이 오질 않아 해당 수사관에게 전화를 해보았으나 연결이 안 되거나 현재 다른 사건 조사 중이라 통화가 어렵다거나 금일 휴가라서 다음날 전화를 달라는 답변만 돌아올 뿐이다.

정말 괜히 나만 별난 사람이 된 건 아닌 가 슬슬 기분이 나빠져서 이전에도 몇 차례 전화를 했었는데 계속 통화가 안 됐으니 휴가 다녀오시면 꼭 전화를 달라고 메모를 부탁하고 끊었다.




2023년 8월 10일 오후 5시 40분


저장되어 있지 않은 모르는 전화번호가 찍힌 휴대폰의 진동이 벌떼처럼 유난히 귀에 박힌다.

소속과 이름을 밝힌 젊은 수사관은 접수하신 절도사건의 용의자가 학생이고, 그 부모님까지 오셔서 조사를 마친 상태이며 특히 피해자에게 사과할 마음이 있어 연락처를 알고 싶다고 했단다.

지구대에 방문하여 사건 접수할 때에도 똑같이 말씀드렸지만 어떤 처벌이나 손해배상을 원해서 절도로 신고한 게 아니라고 재차 말씀드렸고 그 학생의 부모님께서 그리 생각하시면 된 거다라고 했다.

공교롭게도 그 학생은 이 사건 외 다른 절도에도 연루되어 있는 것이 조사과정에서 추가 확인되어 검찰로 송치할 예정이라고 했다.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건 상관없이 절차에 따라 그렇게 진행될 것이라고 말이다.


과연 내가 잘한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만약 내 아이가 어떤 유혹에 넘어가 범죄를 저지르게 되었다고 생각해 보면 당장 맞는 매가 아프고 무섭더라도 제대로 대가를 치르고 철저하게 반성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 그 진심만큼은 그 학생에게도 전달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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