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하기에 가장 좋은 때가 왔습니다
"OO아, 너무 다행이지 않아? 이런 대화를 할 수 있다는게,
진짜 다행이다 너 같은 친구가 있어서"
대학교때부터 지금까지 알아온 나의 가장 친한 친구 중 한 명과 며 칠 전 카톡을 하다가 마무리를 하며 내가 한 말이었다. 이 친구와 내가 나눈 시간의 타임라인을 눈으로 시각화 해본다면 정말 수많은 이야기들로 빼곡히 채워져있을 것이다.
유난히 이 친구와의 시간이 유채화처럼 짙게 남아있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우린 항상 그 때 그 때 느끼는 서로의 가장 큰 고민을 나누었고 그 고민은 대부분 해결되지 않는 근본적인 것(?)에 가까웠다.
이를테면 '나는 하루에도 생각이 수십번 바뀌는데 요즘은 좀 우울해. 넌 진짜 행복이 뭐라고 생각해?' '내가 이러한 상황에서 이렇게 행동하는 이유는 뭘까?' '넌 성악설을 믿어, 성선설을 믿어?' 등 이 친구와 나눈 얘기는 현실과 동떨어진 것 같지만 어쩌면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들을 나누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절이 바뀌고 봄이 왔다. 어쩐지 이번 겨울은 끝나지 않을 것 같았는데.
내 마음이 이번 겨울을 쉽게 보내주지 못했기 때문일까. 몇 년 간 했던 자영업을 그만두고 전혀 다른 새로운 일을 준비하면서, 사실은 그 변화가 따뜻한 봄이 오는 것도 마다할만큼 큰 두려움으로 다가왔으리라. 이제서야 연약했던 그 마음이 눈에 보였다.
서울은 오늘(4월 9일) 올해 들어 가장 따뜻한 기온을 기록하며 온 동네가 봄에 피는 꽃으로 가득했다. 집에서도 거실의 문을 활짝 젖히면 바람 속 아릿한 비린내를 맡으며 봄이 왔음을 알 수 있었다. 어제 입었던 패딩은 옷장 속에 고이 두고 한결 가벼워진 옷차림으로 차를 타고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분명히 어제와 같은 시간 속 같은 나인데 모든 게 새로워진 느낌이었다.
내가 생각이 가장 많아지는 시기가 바로 이 때다. 계절이 변화하는 때.
내 주변 사람들을 생각해보고 가족들을 생각하고, 내 삶에 대해 생각을 해본다. 무채색의 콘크리트와 까마죽죽한 나뭇가지들이 가득했던 가로수가 흩날리는 벚꽃으로 가득한 모습을 보면서 시간은 저만치 앞서가는 걸 실감한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 하지만, 그 어떤 계절이든 독서하고 사색하기에 좋지 않은 때는 없다.
특히 봄은 사계절 중에 가장 온화하고 반짝반짝 빛나는 계절이어서, 그 경이로움에 감탄하며 영원할 것 같은 봄바람에 몸을 싣고 마음도 일체시켜볼 수 있다. 그러나 어떤 계절이든 '물리적 변화'가 일어나는 시기가 사색하기에 가장 좋은 때인 것 같다. 인간은 고통을 회피하고 편안하게 살려는 본능이 있어서 어쩌면 위기와도 같은 변화가 오지 않으면 현 상황에 안주하려는 마음이 더 크기 때문에, 이럴 때에는 생각하는 것도 귀찮고 필요성도 느끼기 쉽지 않다.
하지만 먹고 사는 것과는 상관 없(어 보이는)는 것들에 대해서 생각하면 아마 하루 대부분의 시간 중 몇 없는 순간(?)이라서 그런지 더 오래, 깊게 남게된다.
그리고 그런 순간들이 모여서 그 때 들었던 노래, 그 때 자주 뿌렸던 향수, 그 때 자주 갔던 곳처럼 어떤 알맞은 순간이 오면 '그 때 생각했던 주제'로 다시 한 번 어렴풋하게 떠오르곤 한다.
사색을 한다는 것은 그 순간을 끈적끈적한 테이프로 붙여서 벽에 붙여놓는 것과 같다.
그러한 순간을 너무나도 사랑하는 나와 내 친구는 우리의 시간도 흐르지 않는 꿀처럼 어딘가에 발라놓고 필요할 때에 가서 한 입 씩 음미해보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