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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븟 Sep 19. 2021

라구라구

세상엔 다양한 조리법이 존재한다. 끓이고, 볶고, 조리고, 튀기고... (아주 당연한 이야기지만) 같은 재료를 사용해도 조리하는 방법에 따라 맛과 식감이 다르다.


그중에 내가 유독 애용하는 조리법이 있다면, 바로 '뭉근히' 끓여내는 일이다. 글자가 품은 어감조차 느슨하여 은근슬쩍 기대어 잠들고 싶은 기분이다. 반면 '들들 볶는다'는 표현은 글쎄...







'뭉근히 끓인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요리의 가장 쉬운 예는 무수분 카레이다. 재료를 볶다가 물을 넣고 끓일 수도 있지만, 나는 두터운 냄비에 큼지막하게 썬 재료를 차곡차곡 쌓아서 약한 불로 장 시간 끓여내는 방법을 더 좋아한다.


냉장고에 묵혀둔 식재료를 마음껏 투하할 수 있다는 점도 이 조리법의 장점이다. 한 번은 냉장고를 차지하고 있는 사과를 단번에 해치우려는 속셈으로 잔뜩 넣었다 꿀 한 스푼을 크게 넣은 카레처럼 몹시 달아서 그 후로는 적정한 비율을 유지하려 꽤나 애쓴다.  


주의할 점도 있다. 산만한 성향이라면 반드시 알람을 맞춰두어야 한다. 팔팔 끓는 소리가 나지 않는 탓에 불 위에 올려두고 깜박하기 쉽다(무수분 수육을 만들다 냄비 밑바닥을 홀라당 태워먹을 뻔한 적이 있는 나에게 하는 조언이기도 하다 - 그러고 보니 그날도 냄비 바닥에 사과를 깔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장시간 조리하여 식재료의 본연의 맛이 은은하게 퍼지는 요리법을 고수한다. 소고기 뭇국도, 큰 냄비에 넉넉한 양의 물을 붓고 뚜껑을 열어 소고기를 먼저 넣고 끓인 다음에 뚜껑을 닫고 얇게 썬 무를 끓여내는 방법으로 조리한. 그러면 깊고 맑은 소고기 육수에 가을 무의 시원한 단맛이 자연스레 스며든다.


어쩌면 나는 시간을  들여 뭉근히 완성되는 맛에 어떤 믿음이 있는지도 모른다.







라구 파스타도 그런 요리이다. 하지만 것을 만들게 된 일에는 사연이 있다.


오픈을 하고 몇 달 정도 가게 운영을 하는데 메뉴에서 스테이크를 찾는 분들이 종종 있었다. 해산물과 육류를 공평하게 좋아하는 탓에 스테이크에 대한 반감은 지만, 늘 고깃집이 굉장히 많다고 느껴왔다. 하지만 그런 질문이 얼마간 반복되고 나니, 고깃집 옆에 또 고깃집이 생기는 유를 얼핏 알듯도 했다.


그렇지만, 단순히 스테이크를 파는 것보단 성의 있는 답을 고민하게 되기는 했다. 그러다 라구 소스.


고기를 볶다 그 유명한 마이야르 반응으로 고기의 풍미가 폭발할 즈음에 볶은 채소를 넣고 약한 불로 끓여내는 소스라면 근접한 답안이 아닐까 했다.


게다 그것은 뭉근함의 여정을 거쳤다.


파스타에 어울리는 식감을 필요한 탓에 잘게 다진 각종 재료를 팬에 볶은 후 약한 불로 끓여낸다. 입자가 작을수록 냄비 바닥에 눌어붙어 탄 맛이 낼 위험이 높아지는 까닭에 다섯 시간 동안 커다란 주걱으로 쉴 새 없이 밑바닥을 저어가며 끓여주어야 하지만, 단호박을 듬뿍 넣은 라구 소스는 영양소를 가득 함유한 채 은은한 단맛으로 호응했다.







다행스럽게도, 스테이크를 찾는 사람들은 줄어들었지만, '라구'가 무엇이냐는 질문이 쏟아지기는 하였다. 그럴 적마다 고기와 각종 야채를 장시간 끓여낸 소스를 면에 비벼 먹는 파스타란 설명을 덧붙였다.


그렇지만 나는 무엇보다 그 얘기가 하고 싶었다. 뭉근히 끓인 라구 라구.






저녁 무렵 한라산은 뭉근하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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