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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븟 Oct 22. 2021

파스타 먹보

무엇이 좋아지는데 또렷한 이유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파스타 하면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다. 물론 그것이 실재하는 것이라기보다 브라운관이 투영되는 종류였지만.


배경은 늘 이탈리아의 어느 가정집이었다. 그곳은 사람으로 가득했고, 커다란 접시에는 투박하지만 푸짐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양의 파스타가 담겨있었고, 테이블, 소파, 테라스에 자리를 잡은 이들이 부엌을 오가며 파스타를 접시에 덜어 먹는다. 마치 세상의 중심에 파스타가 있는 양.








불과 일 년 전이지만 매장을 운영할 때는 집게 하나를 두고 두 사람 정도가 나누어 먹을 수 있는 이인분 파스타를 팔았다. 가족끼리 파스타를 즐기는 경우에 주로 유용하게 주문되던 것이었다.


하지만, 손님 중에 예비 커플도 꽤 있었다.


각자 파스타 접시를 앞에 두고, 국물을 홀짝일 필요 없이 포크에 둘둘 말아 한 입에 쏙 먹기 좋은 음식 소개팅에 적합한 메뉴일 테다. 게다 저녁 무렵의 파스타집은 조명이 은은하다. 


처음 만난 두 사람이 수줍은 듯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노라면, 은근히 응원을 하게 된다. 나 역시 이왕이면 잘되었으면 좋겠단 심정으로 지켜보았고, 늦은 시각에도 헤어짐이 아쉬운 듯 카페를 찾아 떠나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볼 때면 무언가 일조한 기분이었다(데면데면 시선을 피하다, 국밥 한 그릇을 해치우듯 식사를 마치고 나가버리는 경우도 없지는 않았지만).


그중 한 커플이라도 오랜 만남을 지속하다 문득 처음 만난 순간에 먹었던 로맨틱한 파스타를 회상하지 않을까 종종 궁금하다.








하여튼 간에 나는 소개팅을 하지 않아도 파스타를 먹고 또 먹었다. 가게를 오픈하기 훨씬 전부터.


그때의 파스타는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 같은 것이었다. 다소 파격적인 스타일의 파스타를 만들고 맛보는 일을 반복했다.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히면 파스타를 맛보는 일의 빈도가 잦아들 거라고 예상했지만, 맛이라는 건 작은 변수에도 크게 달라진다. 예컨대 손님이 늘어날수록 많은 양을 조리해야 했는데 그게 단순한 덧셈이 아니었다. 조금씩 수정하여 최적의 레시피를 찾아야 한다.


또, 고민이 생기면 몸소 해결하는 게 익숙한 타입이라서 파스타를 먹어야 할 이유는 무궁무진했다. 배부름을 가늠하는 파스타(적당한 일 인분에 대한 고찰), 플레이팅 연습용 파스타, 사진 촬영 용 파스타, 기존의 메뉴와 나란히 두고 차이를 느껴보는  파스타 등등...


게다 그 일 외에도, 주방을 운영하다 보면 맛에는 이상이 없지만 모양이 조금 부족한 새우나 끄트머리가 애매하게 남은 소스나 야채가 발생한다. 그런 건 프라이팬 하나에 쓸어 넣고 요령껏 스태프 밀 '아무렇게 파스타'를 만들게 된다.


일주일 내내 파스타를 먹던 날, 정체성의 혼란이 발생했다. 간헐적으로 한식을 체험하는 - 어디까지나 파스타가 주식인 이방인이 되어버린 기분이었다.








그런데, 파스타 먹보가 되어버린 일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다.


지극히 주관적인 기준일지는 몰라도, 내게 맛있는 음식은 집밥이다. 설탕이나 조미료가 아니라, 식재료 그 자체로 단맛과 감칠맛(그리하여 더불어 영양소를) 품었던 - 덤덤히 속 깊은 그 . 


그런 음식은 아무리 먹어도 물리지 않았고, 그런 일에는  끊임없이 먹어보는 일이 필요했다.


코로나로 이탈리아로 떠나려던 계획은 무한대로 미루어져 아쉽지만, 내게 각인된 파스타의 온기는 그런 종류가 아니었을까 한다.








드물지만, 집밥이란 두 글자가 떠오르는 곳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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