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븟 Nov 06. 2021

캠핑의 맛

안타깝게날씨 운이 유독 없는 편이다. 시간을 비워두고 크게 마음을 먹고 당일치기 여행이라도 떠나는 날이면 어김없이 하늘이 뿌옇다. 그래서일까.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캠핑은 정말로 근사해 보인다.








그런데 텐트나 코펠 같은 기본적인 장비조차 없는 초심자에겐 살 것이 산더미. 거의 살림살이를 새로 장만하는 수준이었다 - 쇼핑이란 이것저것 구경할 때는 나름의 재미가 있지만, 비교할 대상이 눈더미처럼 불어나면  골칫거리가 되어버린다.


인터넷 서핑 한 시간 만에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빈티지한 캠핑카를 재까닥 목록에서 지워버렸다(집채만 한 주차해둘 곳이 마땅히 없었다). 현실적 난제들이 하나둘 머릿속을 헤집으니 낭만이란 게 한없이 작아지는 기분이었지만, 떠나고 싶은 욕망이 완전히 사그라든 건 아니었다. 








초여름의 무더위가 스멀스멀 올라오던 어느 날, 나는 대강의 준비가 되어있는 - 그다지 멀지 않은 곳으로 캠핑 비슷한 여행을  떠났다.


야트막한 산자락에 위치한 '원데이-아지트'는 푸르른 색.


나는 자리를 잡고서 맨 먼저 모기향을 피우고, 그다음으로 맥주 한 모금을 마셨다. 별다른 계획은 없었다. 그냥 무엇이든 적당히 할 작정이었다.


느긋이 맛을 보며 적당히 배를 채우니, 모든 게 늘어져 버린다. 유유자적 흐르는 구름의 속도에 맞추어 재생되는 비디오테이프처럼. 


그러자 축소된 세계가 펼쳐진다. 손에 잡은 맥주캔도, 유난히 작아 보이던 야외의 테이블도, 매캐한 모기향도 실체를 감춘. 명상을 한 일도 완전히 지칠 만큼 걸은 일도 아닌데, 집 천장에 들러붙은 듯 짓누르던 무거운 생각도 웬일로 드러나지 않는다.


'두둥실' 모습을 보인 건 건 도무지 끝을 가늠할 수 없는 높다란 하늘뿐.


해가 산등성이를 너머 서자, 유난한 풀벌레 소리가 공간을 채우고 장작 타는 냄새가 나를 붙잡는다. 자연에 사는 일을 찬양하며 자연에 살 뻔한 나를 툭 건드린 건 게걸스럽게 짓는 어느 집의 이름 모를 개  한 마리 - 그것은 인적을 일깨우며 균형감을 부여했다.


캠핑의 맛을 곱씹으며 집으로 돌아오던 나는 다시금 장비를 살까 말까 하는 고민에 빠져들었지만...









epilogue




feat. 피스타치오 토마토 라구 파스타



캠핑 초보다운 발상인진 모르겠지만,  일엔 토마토 파스타가 어울리는 기분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파스타 먹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