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elen Jan 22. 2017

노랑의 변주곡

호이안, 그 도시의 색

도시마다 색이 있다. 산토리니가 하양이고 프라하가 오렌지 지붕이라면 호이안의 색은 노랑이다. 고흐처럼 내게도 노랑은 가슴 뛰는 색이다.


노랑이란 얼마나 멋진가. 태양을 의미하니까
- 빈센트 반 고흐 -


온 동네가 노랑의 변주곡이다. 굽이진 작은 골목길에 나지막한 집들이 노랑의 벽으로 이어진다. 한 낯에 풀과 나무의 초록이 더해지면 연둣빛의 변주가 시작된다. 자연이 인간과 함께하는 평온한 색이다.

어둑해지면 거리마다 걸린 붉은 등에 빛이 든다. 이번엔 온 동네가 주홍빛으로 변주된다. 인간의 전기가 만든 빛은 그렇게 노랑에 화려함을 더한다. 낮에도 밤에도 이 곳은 노랑의 변주된 색들로 채워진다.


사실 할슈타트에도 포지타노에도 노랑은 있었다. 그 동네의 노랑은 정리된 산뜻한 색이다. 반짝이는 어린 색이다. 이쁘지만 독특함이 없다. 어디에나 있는 같은 톤의 같은 색.


호이안의 벽도 한때 산뜻한 노랑이었겠지. 그 어린 색이 시간을 맞아낸다. 바람과 열기에 빛바래고 빗물에 얼룩이 드리워지고 습기에 이끼가 낀다. 그렇게 세월의 겹을 고스란히 남긴다. 마주하면 버텨온 시간의 얘기를 듣는 것 같다. 사람도 잘 늙으면 그 주름진 얼굴이 저렇지 않을까? 삶이 묻은 노랑처럼.


얼룩지고 빛바랜 색이 보기 싫다며 계속 덧칠했다면 어땠을까? 지금처럼 아늑하고 정겨울까? 아닐 거다. 습기에 돋아난 이끼가 건물을 망친다며 걷어냈다면? 어디에나 있는 세트장 같았으리라. 세월이 남아있어 어디에도 없는 색으로 아름답지 않을까?


이 오래된 색들이 '나처럼 늙어보는 건 어때?'라고 묻는다. 벽면의 검은 얼룩이 아름답지 않냐고. 기와에 서린 이끼와 풀이 나와 참 잘 어울리지 않냐고. 우린 같은 노랑으로 출발했어도 이젠 서로 다른 노랑으로 더 아름답다고.


노랑의 변주곡의 정점은 낯의 연둣빛도 밤의 주홍빛도 아닌 세월이 드리워진 얼룩이다. 자기만의 시간을 쌓은 색이다. 이 색들이 채운 호이안은 어디에도 없는 노랑의 도시다.


들어선 첫날 알았다. '난 이 색들이 그리워져 언제가 여길 다시 오겠구나'

매거진의 이전글 여행의 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