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후엔 상합니다
아무리 죽이 잘 맞는 짝이라도 유효기간은 있다. 그것이 하루 24시간을 같이 보내는 여행이면 더 짧다. 설렘과 긴장이 익숙한 안정으로 바뀌는 순간 비로소 바로 옆 사람이 거슬린다. 그 사람 탓이 아니다. 그는 그전에도 같았고 지금도 같지만 내가 그제야 본다.
쉼 없이 말이 쏟아진다. 그 사이 내 말은 잘려 흩어진다. 내가 말하는 동안 다음 할 말을 준비하는 것이 보인다. 역시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뜬금없는 내용이 튀어나온다. 건성으로 들으니 앞뒤 맥락이 있을 리 없다. 대화? 누가 이걸 대화라고 하나. 드디어 혼자 있을 때가 온 거다. 자주 이어폰을 낀다. 이어폰은 나만의 공간을 들어가겠단 의미 아니던가.
안타깝지만 줄어진 말, 펼쳐진 책, 이어폰 등이 별 효과 없다. 대놓고 말하지 않는 이상 상대는 알 리 없다. 남에겐 무심하니까. 이어폰을 끼고 책을 펼쳐도 독백에 가까운 질문들이 던져진다. 되짚어보면 이건 나도 마찬가지다. 불쑥불쑥 하나마나한 질문 던지잖나. '어머 이런 사건이 있었네' '누가 누구랑 사귄데' '아까 점심값 얼마였지?'
이건 절대 시간이 해결해 줄 수 없다. 오히려 증세가 악화된다. 평소라면 대수롭지 않던 것이 덜커덩 덜커덩 걸린다. '너에게 대화란 혼자서 쏟는 거니?' '니 메뉴만 니 맘대로...' '직접 하시라. 기다렸다 시키지 말고' '길은 나만 찾니? 지도 볼 줄 몰라?' '그래 욕하는 그 항공사로 내가 변경했다 왜?' 자... 이즘 되면 옆 인간이 미워진다. 가장 무능하고 무례한 인간과 무인도에 갇힌 기분이다. 이러니 3일즘 되면 제발 떨어지라고, 나 좀 혼자 두라고 주문을 외운다.
이리 적어놓으니 어떤 망나니와 여행한다 여길지 모르겠다. 하지만 대상이 누구든 그 시간이 온 거다.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여행이 잦으면 짐이 준다. 막상 가져가야 쓰지 않고 그대로 가져오니까. 살며 꼭 필요한 건 생각보다 적다. 더불어 기대도 줄어든다. 숙소나 식사를 포함해 돈 값에 대한 기대를 접는다. 계획대로 되는 삶이 없듯 여행도 그렇다. 최악은 잔뜩 기대하고 가서는 폭풍 불평 쏟는 거겠다.
이러니 죽기 전에 가야 될 곳 혹은 거기서 꼭 먹어야 될 것 따위 없다. 추천 맛집? 미식 집착? 이해 못할 것도 없다. 세상에 오롯이 내 맘대로 되는 건 내 입에 밀어 넣는 거다. 더군다나 쉽다. 배우거나 공들일 필요 없다. 모두가 다 할 수 있으니 공감 또한 쉽다. 쾌락은 즉각적이니 효과까지 만점이다. 이러니 가장 쉽고도 끊기 어려울 거다. 마치 중독 같지 않나? 어쩌면 담배보다 더할 거다.
호의? 친절? 받으면 고마운 거다. 아니면? 평생 볼 것도 아닌데 운 나빴다며 돌아서면 된다. 여기에 레이저 쏘며 무시당했다 부르르 떨어봐야 바뀌는 거 없다. 그거 받아내는 옆 사람만 피곤하다. 동행자가 저러면 마치 시한폭탄 안고 다니는 기분이다. 덩달아 내 여행이, 내 시간이 왜 저 사람 불평으로 채워지나 슬슬 짜증이 난다. 저렴한 자존감은 사소한 걸 넘기질 못하니 그게 그 사람의 여유와 격 되겠다.
스치는 순간은 그나마 뒤돌아서기 쉽다. 그런데 돈이 오가면 이건 좀 다르다. 맞다. 돈 값 앞에선 쉽지 않다. 값어치 할 거라는, 아니 꼭 값어치 해야만 된다며. 받아내고야 말겠다는 굳은 의지로 응분의 조치를 준비한다. 옆에 이러면? 안 말린다. 그 시간은 내 거 아니거든. 이거 사실 자신을 괴롭히는 가장 좋은 방법 되겠다. 항의해서 얻어내면 뿌듯하고 끝날 거 같지? 그럴 리 없다. 감정이란 되씹을수록 강해지는 거다. 그러니 분노의 그 시간은 꽤 연장된다.
분노는 남에게 던지기 위해 뜨거운 석탄을 손에 쥐는 것과 같다. 결국 상처를 입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다.
- 고타마 싯다르타 -
돈 값? 인생에 계산기를 두드리는 건 야무진 게 아니다. 쉽고 단순해서다. 난해한 복잡성이 '돈'으로 환산되면 쉽거든. 숫자로 바로 환산되기에 생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그러니 적당히 손해보고 사는 것이 더 낫다. 그래야 적당히 운도 들지 않겠나. 계산된 삶에는 운이 들어설 공간도 없다.
그리고 돈 값에 방점을 찍으면 이런 생각까지 들더라. 모든 것에 꼼꼼히 계산하는데 그럼 나는 과연 돈 값하는 인간일까. 누군가 내게 이리 계산서를 들이밀면 꽤 씁쓸할 거 같다.
이즘 되면 도 닦은 거 같지? 절대 그럴 리 없다. 매 여행마다 나를 극한으로 밀어 넣는 건 바로 여행 짝꿍이다. 정도의 차이만 있지 그게 누구든 마찬가지다. 과연 내려놓는 순간이 오긴 할까? 타인을 오롯이 감내할 수 있는 딱 3일. 그 시간이 '인간'에 대한 내 한계다.
그 한계에 이르면 어찌 되냐고? 부여잡던 이성줄이 끊어진다. 뭐 거창한 걸로? 아니다. 관계는 사소한 걸로 틀어진다. 마사지사에 대한 짝꿍의 충고가 이어진다. '제대로 못하면 컴플레인을 해. 그게 그 아이한테도 도움이 되는 거야. 왜 팁까지 줘?'
맞다. 짝꿍은 돈 값에 대해 훈계 중이다. '그 아이'를 위한다는 명분까지 얹어서. 정말 따뜻하지 않나? 인류애가 넘친다. 돈 값이 아닌 그 아이를 위해서라니. 모든 이에게 세상살이의 가르침을 주고야 말겠다는 결연한 의지도 보인다. 교사라는 직업이 버릇 하나 제대로 들였다. 지금 이 순간 나도 그 마사지사 아이도 훈계로 개조할 학생이 된 거다.
이 버릇 익히 알고 있다. 그러니 쉼 없고 높은 톤, 타이르는 말투, 길고 긴 훈계까지 잘 넘긴다. 잘했어!!! 자 이제 이리 마무리하면 된다. '넌 그렇게 해. 난 그리 안 할 거야' 여기까지만 했다면... 정말 우아했을 텐데. 딱 한 입에 폭풍 식탐이 밀려오듯 그 한마디가 장황한 설명의 마중물이 된다. 추. 하. 다.
그래... 누구나 알지만 너도 나도 안 되는 거 있잖나. 바로 '적당히'라는 거. 한계라는 건 '적당히'라는 이성줄을 끊는다. 그리 자제력이 흩어진 자리에 폭발성 감정만 들어선다. 이젠 내가 상대에게 쏟아낸다. 한마디로 난 미친 거다. 내 감정에 내가 미친 거다.
물론 이건 내 문제다. 내가 근본적인 원인 되겠다. 그리고 인간의 습관도 한 몫한다. 사람은 친밀해지면 쉽게 무례해진다. 이 친분은 생면부지 남에게는 절대 안 할 망나니 짓을 눈 감으라 강요한다. 너는 나를 이해한다며 아니, 이해해야 한다며 들이밀고 넘어선다.
여기에 내 문제가 있다. 아무리 친해도 그게 가족이라도 이러면 고개 돌린다. 친분은 민폐 방지 찬스가 아니다. 실수에 뭘 그리 까탈스럽게? 실수와 무례는 엄연히 다르다. 무례는 굳이 배려하지 않는 거다. 그게 만만해졌건 호의가 당연해졌건. 굳이 이런 이들에게 끝까지 호의를 베풀 이유를 난 찾지 못했다. 내 기준에선 그들은 자격이 없다.
여행 중 3일을, 24시간 꼬박 같이 있으면 이런 무례에 근접한 행동이 슬슬 나온다. 무례까진 아니더라도 상대가 편해져 배려 따위 접고 만만해지니 민낯 그대로 쏟는다. 그러니 내겐 3일 후 거리두기가 필요하다. 그래야 상대가 선을 넘지 않는다. 낯설어지면 또 예의 바르게 변하잖아? 반복되면 무뎌지는 인간의 본성이 이 주기를 만든다.
그럼 혼자 여행하라고? 뭐 그것도 좋겠다. 그런데 그거 아나? 누군가와 경험을 공유해서 추억으로 남기는 건 꽤 멋진 일이다. 나도 인간이잖나. 외로움과 거슬림의 적정한 경계선을 찾는 것이 군집 동물의 숙명 아닐까 싶다.
매일 아침, 거울 속 자신을 보며 말하라. "너도 재수 없긴 마찬가지야"
- 사랑과 여행의 여덟 단계 | 비비안 스위프트 -
함께 여행하는 사람 대처법이란다. 다음부터 한 번 해볼까 싶다. 진심으로 통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3일이 지나도 잘 참아낸다면 좋겠다. 날이 길어지면 공유할 경험도 늘어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