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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 정원사 Dec 03. 2024

병실 이야기

*나와의 작은 결심이 실천되던 날


서울의 대형 병원은 언제나 혼잡하고 소란스럽다. 복도를 오가는 사람들의 발소리와 병실 안에서 들리는 낮고 지친 목소리들, 이곳은 매 순간 고통과 희망이 뒤섞여 있는 공간이다. 각자의 사연을 품은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 곁에 서서 아슬아슬하게 버티는 보호자들이 있다.


오늘 찾아간 병실에는 시골에 계신 어머님의 동네 분이 입원해 계신다. 어머니께서는 지방에 계셔 거리가 멀어 서울까지 올라오지 못하시고, 대신 내가 병문안을 가기로 한 것이었다. 병원으로 출발하기 전 어머니께 그분이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여쭤보니 김밥과 잡채를 좋아한다고 말씀 해주셨다. 그 말을 듣고, 새벽부터 부엌에 서서 정성껏 김밥과 잡채를 준비했다. 그리고 병원에서 입맛 없을 때 먹을 수 있는 김치 한 통까지 챙겨 들고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병원으로 향했다. 




좁고 답답한 병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한동안 말을 잃었다. 침대에 무기력하게 누워 계신 어르신의 초췌한 얼굴이, 몇 년 전 병실에 계셨던 우리 엄마를 떠오르게 했다. 할머니의 지친 그 모습이 너무도 짠하고 가여워 보였다. 병실에는 오랫동안 씻지 못한 몸에서 풍기는 특유의 냄새가 가득했고, 옆에 앉아 있는 아드님 또한 병간호로 이미 녹초가 된 얼굴이었다. 환자도 간병인도 지쳐버린 그 자리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르신께 지금 여자인 내 손길이 필요한 것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잠시 망설이다가 조심스레 물었다.


“어머니, 제가 머리와 몸을 씻겨드려도 될까요?”


어르신은 잠시 나를 바라보시더니,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 모습은 누군가가 자신을 씻겨주길 애타게 기다리고 계셨던 것 같아 보였다.


곧바로 병원 매점으로 내려가 세면도구를 사왔다. 그리고 어르신을 천천히 샤워실로 모시고 갔다. 떡이 진 머리칼을 부드럽게 하나하나 감겨드리고, 손수 몸을 닦아드리면서 할머니의 표정이 서서히 밝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순간의 벅찬 감정은 글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누군가를 위해 작은 정성을 쏟아부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내 안에 말할 수 없는 뿌듯함이 올라왔다.


오랜만에 깨끗하게 씻으신 어르신의 얼굴에는 개운함과 잔잔한 안도감이 흐르는 듯했다. 간호사에게 부탁해 새 옷을 받아와 갈아입히고, 침대보도 새로 깔아드렸다. 대충 정리를 하고 나니 병실에 가득했던 눅눅했던 공기가 한결 맑아진 기분이었다. 어르신은 조금 전보다 훨씬 밝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셨고, 그 눈빛 속에서 오랜만에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품고 있던 작은 결심이 이제야 누군가에게 따뜻한 손길로 닿았구나. 그동안 꿈꿔왔던 삶을 지금 이 자리에서 조금씩 실천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오랫동안 낮아져 있던 자존감이 서서히 올라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이 경험은 나에게도 큰 위로가 되어 주었는지 모른다. 누군가에게 주는 따뜻한 손길이 내 마음을 더 단단히 채워 주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르신을 찾아뵙고, 병실을 나오는 길이 다른 날과 달라 보였다. 서울의 저녁 하늘이 그렇게 밝고 환하게 느껴질 줄은 몰랐다. 잠시나마 누군가를 위해 뭔가를 했다는 생각에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볍기만 했다.



*그들이 나를 살게 해주니까요


그로부터 시간이 흘러, 어르신의 병세가 호전되어 시골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내 작은 행동들이 어머님이 계신 시골 동네 곳곳으로 퍼져나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 분이 경로당에서 내가 한 일에 대한 고마움을 이야기하셨다고 한다. 우리 어머니도 그 이야기를 전해 들으시곤 전화를 했다. 며느리 덕분에 동네 사람들 앞에서 기 좀 세웠다고 하시면서 대견해하며 너무 고마워하셨다. 그 이야길 듣는 순간 가슴 한쪽이 찌르르했다. 나의 작은 행동이 어머니께 자랑거리가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사실 특별한 일을 한 게 아니었다. 그저 누군가의 고통 앞에서, 마음을 다하고 싶은 일에 조금의 정성을 쏟았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 일이 어머니를 기쁘게 하고, 큰 도움이 되어 드렸다는 사실에 마음도 흐뭇해졌다. 지금도 시골에 갈 때면, 어르신은 늘 눈가에 눈물을 머금고 내 손을 꼭 잡으신다.

“이 은혜를 죽을 때까지 잊지 않을게. 애기야, 그땐 정말 고마웠다.”

그 말씀은 가슴 깊이 새겨졌고, 지금까지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살고 있다. 




그 이후로 어머니를 대신해 서울로 오신 환자들을 찾아뵙는 일이 내 일이 되고 말았다.그때마다 어르신들이 좋아하실 음식을 정성껏 준비해 병원으로 향하고, 조용히 그들의 손을 잡고 이야기 나누는 일이 내가 해야 할 일이 되었다. 병원 복도에서, 혹은 병실 안에서 환자들의 눈빛을 마주할 때마다 무엇을 원하는지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그들의 눈빛에는 외로움과 두려움이 가득 담겨 있음을 문병을 가면 느낄 수 있게 된다. 가끔 어떤 분은 병원에서 퇴원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어머님을 통해 알게 된 경우도 있었다. 그땐 병원에서 손을 잡고 마음을 나눴던 생각이 나서 마음이 많이 아팠다.


솔직히 이 일이 늘 쉬운 것만은 아니었다. 직장에 다니며 쉬고 싶은 휴일을 쪼개 병원에 다니는 일은 고단했다. 때로는 그들 곁에 앉아 손을 잡을 때마다 병과 맞서는 고단한 삶이 내 삶과 겹쳐지는 듯해 우울함에 잠기기도 했다. 어른들만의 대화는 늘 끝이 없었고 모르는 사람 얘길 들어준다는 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병원을 다녀온 후 어머님께 전화를 드리면 칭찬해주시는 그 한마디에 기분이 너무 좋았다.

 

그 말은 작은 꽃송이처럼 내 마음속에 활짝 피어 나게 해주었고. 병원에 가는 불편함도, 그 곳에서 느꼈던 피로도 칭찬에 다 녹아버렸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런 칭찬 하나에 들떠 있던 내가 참 순진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칭찬이 뭐라고' 애 키우며 직장 다니는 사람이 휴일도 반납하면서까지 그런 심부름을 했을까 싶다.

나에게 칭찬은 뭔가 특별한 것처럼 느껴진다. 누군가가 나를 인정해준다는 건 내 존재를 확인받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그 칭찬의 본질이 다르게 느끼게 되었다. 어린 마음엔 순진하게도 무언가 잘해내서 그 말을 들은 것이라고 믿었지만, 이제 보니 사실 칭찬으로 인해 어쩌면 더 열심히 살아가게 되었는지 모른다.


그러던 어느 날, 세상을 덮친 코로나로 인해 병원 방문이 철저히 금지되었다. 어르신들을 찾아뵙는 일이 당분간 불가능해졌다. 오랜 과제가 끝난 듯한 홀가분함이 들어 좋았다. 하지만 이게 내 운명인가?

몸과 마음이 편해지자 이젠 우리집 막내 아픈 강아지를 돌보는 일이 내 발목을 잡고 모든 일상을 바꿔버렸다.주변 사람들은 가끔 물었다.

“대체 왜 그렇게까지 하면서 사니?”

누군가에게는 별것 아닐지 모르지만, 그들과 함께한 순간들은 내게 무엇보다 소중하고 값진 시간들이었다.

어쩌면 그렇게 누군가를 보살피며, 나 자신을 위로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 곁에서 마음을 나누고, 허전함을 채우며 살았다.


그러니, 누군가 다시 내게 묻는다면 주저 없이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그들이 나를 살게 해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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