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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rrow and pleasure May 18. 2021

아무도 믿을 수 없다는 너에게

상처 입은 너에게 손 내밀기


어린 시절로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난 다른 친구들 엄마보다 유달리 예쁘고, 늘 부지런한 엄마가 퍽 자랑스러웠다. 어릴 적 우리 집은 단독주택이었는데, 엄마가 어찌나 마당을 매일 집안처럼 쓸고 닦았던지, 한 번은 어떤 아저씨가 대문 밖에다 신을 벗어놓고 우리 집 마당에 맨발로 들어온 적도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그날도 엄마는, 고무장갑을 끼고 아침부터 깔끔하게 집을 청소한 후, 부엌에서 반찬을 만드느라 분주했다. 엄마는 언제나 너무 바빠서 내가 있든 말든 신경 쓸 여력이 없었지만, 나는 그저 엄마 옆에 서 있기만 해도 좋았었다. 그런데, 한참 후 엄마가 윗방에 가서 어떤 그릇을 가져오라고 했다. 장식장처럼 있던 나는 너무 신나서 내 키보다 더 큰 자개장을 열심히 살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엄마가 원하는 걸 찾을 수 없었다.      

        

“엄마 아무리 찾아도 그릇이 없어.”

           

내 말을 들은 엄마는 대답도 없이 윗방으로 날 다람쥐처럼 뛰어 올라왔다. 엄마는 거기서 내게 찾아오라 했던 그 양재기를 단숨에 잡아들었다. 그리곤 바로 벼락같이 소리를 지르며 빗자루를 가져 왔다. 그것은 삽시간에 내게 날아왔고, 어린 나는 구석으로 몰린 채, 본능적으로 머리를 감쌌다. 한참이 지났고, 이렇게 있다가 그냥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정말 뭘 잘못했는지 몰랐지만, 맞아가면서도 일단, 살기 위해 무릎을 꿇고 울며 두 손으로 빌었다.    

       

‘엄마 잘못했어요. 다신 안 그럴게요. 엄마 잘못했어요. 다신 안 그럴게요….’    

              

엄마는 자신의 팔에 힘이 빠지고 아플 때까지 자그마한 날 때리고 또 때렸다. 그 이후로는 내가 언제 왜 맞는지 아무것도 몰랐지만 내내 또 맞을 짓을 할까 봐 늘 초조하고 불안했다. 그래서 난 늘 엄마의 기분을 살피며 엄마가 기분이 나쁜 날은, 될 수 있으면 엄마 눈에 안 띄도록, 들판이나 친구 집을 전전하다 깜깜할 때 집에 들어갔다. 내가 자라날수록 엄마의 기분 나쁜 날이 점점 더 늘어났고, 내가 밖으로 도는 시간도 더 길어졌다. 나는 이렇게 성장하는 내내 나의 기분이나 느낌은 살필 여력도 없이 늘 엄마의 기분에 따라 나를 피신시키기에 바빴다. 이렇게 크면서 내게는 무슨 문제가 생겨도 믿고 의논하고 의지할 수 있는 성인이 단 한 명도 없었다. 나는 정서적인 고아였으며, 늘 ‘아무도 없는 상태’ 에 익숙해졌다. 그 후 외로운 어른으로 자라나 세상 누구도 믿지 못한 채 스스로 고립된 슬픈 엄마가 되었다.  

          

과연 내가 '그날' 잘못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결혼하고 내가 엄마가 된 후에도 내내 그날을 복기하며,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나를 계속 생각해 보곤 했는데, 사실, 그날이 어떤 끔찍한 날이었든 간에 엄마가 그토록 가혹했던 근본적인 이유는 내가 뭘 잘못해서가 아니었다. 단지 그날 공교롭게도 엄마가 무척 화가 나 있고 스트레스가 가득한 상태였는데 내가 때마침 그 자리에 있었던 거 뿐이었다. 내가 맞았던 그 날도 엄마 아빠가 돈 문제로 크게 다투었던 그 시점이었고 그저 엄마는 내게 화풀이를 한 거였다. 그러나, 이유를 알았던 성인기에도, 삶의 위기나 고통을 맞이할 때면 늘 “너는 쓸모없는 인간, 너는 맞아도 당연해”, “너 같은 걸 누가 사랑해.” 이런 말들이 마음에서 떠올랐다. 즉 성인이 되어 과거의 상황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지만, 상처 입은 어린 마음이 성인이 되어도 바뀌지 않았던 거다. 이 머릿속의 소리는 성인이 된 후에도, 내가 조금이라도 행복해 볼라치면, 쉴 새 없이 나 자신이 얼마나 가치 없고 쓸모없는 인간인지를 자꾸만 말해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부모도, 자신도 제대로 돌아봐 주지 않던 나를 진심으로 배려해 주는 남자가 나타났다. 나의 선으로 넘어오지 말라는 내 심리적 거부를 넘어 그는 나의 범주로 용감히 왔다. 그는, 늘 나를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사람으로 대해 주었다. 그는 청혼하며, 꿈같은 미래의 이야기도 했다. "이 사람은 대체 뭘까?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걸까? 이 사람이 좋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너무 무섭다."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 혼란한 내 마음이 이렇게 말했다.  

    

이처럼 난 결혼 적령기가 되어서도 늘 누군가 다가오면 멀리 달아나기 바빴다. 나는 사랑하고 사랑받는 게 당연한 상황 속에서도, 바보 천치같이 진심으로 사랑할 줄도 모를 뿐만 아니라, 사랑을 받을 때도 혹여 그 사람이 엄마처럼 돌변하거나 화내고 떠나버릴까 봐 왠지 모를 무서움을 느꼈다. 결혼해서도 남편이 내게 화내며 떠나는 꿈을 자주 꿨다. 난 늘 두려웠고 이유 없이 무서웠다. 

          

그러나, 사실 이 혼란한 감정조차 처리할 수 없었던 때에는 이런 감정이 두려워서 무조건 가슴속 깊이 여며두었다. 가끔 생각하면 이유 없이 마음이 아려왔지만, 겉으로 그럴듯하게 사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올해 결혼 15년 차가 되었다. 그리고 만남, 이별, 결혼, 출산, 육아 등 남들은 그렇게 순리대로 받아들이는 당연한 인생의 일조차 과거의 상처가 깊었던 내게는, 어쩌면 어떤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혼란의 도가니와 두려움 일 수도 있다는 사실도 이제는 알게 되었다. 


지난 15년간 나는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내 감정을 훑어보았다. 그리고 거기에 새로운 배움의 과정에서 얻은 지식을 더해보니, 난 그저 좋은 부모를 만나지 못한 사고를 겪었을 뿐이었다. 이러한 사고는 성인이 되었다고 해서, 모든 것이 스스로 극복되지 않는데도 나는 어른이면, 나이를 먹으면 다 괜찮아지는 줄 알았었다. 그러나 어린 시절 부모와 내가 맺었던 관계들의 영향력은 평생에 걸쳐 내 삶에 영향을 미치는 거였다. 즉, 내가 자라나며 겪었던, 엄마의 기분에 따라 이랬다저랬다 하는 비일관적인 양육 태도와 폭력과 폭언이 그랬고, 엄마의 잘못된 행동을 모른 체했던 아빠의 방임이 모두 내 성인기의 삶에, 엄마로 사는 삶에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또한, 그 끔찍한 과거의 경험은 내가 삶을 사는 내내 평생 누군가에게 매달리며, 나의 가치를 나 자신 내부에서 찾기보다는 타인으로부터 확인받기 위해 갈구하는 삶을 살게 했었다. 또, 이 세상 그 누구도 의지하지 않고 75억 지구 세상 속의 외딴섬처럼 혼자 살아가게 했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동안 내가 왜 그리고 얼마나 아픈 줄도 모르고, 괜스레 부모에게조차 사랑받지 못한 아픈 ‘나’를 미워하고, 스스로 경멸하기까지 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사실, 내가 엄청난 잘못을 해서 부모로부터 육체적 혹은 정신적으로 내쳐지고 미움받은 것이 아니었으며, 누군가 내게 다가올 때, 그 사람이 나의 사랑받지 못할 ‘본모습’을 알게 될까 두려워할 필요도 없었다. 왜냐하면, 부모님이 내게 준 모든 유년기의 경험을 걷어내고 보면 지금, 현재의 내 모습이 바로 본모습이며, 감춰진, 사랑받지 못할 본모습 따위는 애초부터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냥 나는 나였다.


결혼 후 스스로 했던 자기 치유 과정을 통해 나는 내가 품은 고통을 객관적으로 깨닫고 받아들이며 마음을 스스로 치유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엄마가 되어, 중년이 되어 평생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꿈을 찾고, 그걸 이룰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어릴 적 경험했던 부모의 학대와 방임으로 45년간 세상과 심리적으로 단절한 채 귀와 마음을 닫고 살았던 나였다. 세상이 두려워서 결혼 후 15년간 경력 단절 전업주부로 살았던 나였다. 그런 나도 이렇게 스스로 마음을 치유하고 꿈을 찾아 이뤘다. 


나는 매일 아침, 독서를 통해 그 속에서 다양한 나를 만났고 바라보았다. 또, 그때 떠오르는 내 마음을 글로 정리해 쓰고 읽고 또 읽었다. 이렇게 스스로 나를 이해하고자 하니 서서히 내 마음이 달라졌다. 그리고 행동이 달라졌다. 행동이 달라지니, 나의 꿈도 삶도 달라졌다. 마흔다섯, 어느 날 고개를 들어보니 나와 나 주변의 모든 것이 달라져 있었다. 유년기에도 성인이 되어서도, 엄마가 되어서도 이유 없이 마음이 아프고 공허하다면, 누구나 지금 자신이 어떤 상처를 안고 있는지를 찾아서 바라봐야만 한다. 그리고 그 상처를 통해 자신이 현재 얼마나 비뚤어진 거울로 자신과 세상을 보았는지 깨달아야만 그 불행의 고리를 끊어 낼 수 있다. 나처럼 꼭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가 아니더라도, 각자가 가진, 인생 고통의 멍에를 벗기 위해서는 스스로 움직여야 한다. 그래야만 이유 없이 매일 아픈 자신의 마음을 회복할 수 있고, 엄마로서 여자로서 살며 자신의 꿈을 꿀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이 시각에도 세상의 많은 엄마, 여성들이 분명히 이겨낼 수 있는 과거의 아픔을, 어찌할지 몰라서, 남몰래 감싸 안는다. 그리고 나, 그리고 가정이라는 외롭고 안전한 테두리 안에서 홀로 수많은 날을 아프게 지낸다. 심지어 그들은, 그렇게 내면이 아파 찢어질 것 같은데도 엄마의 책임을 수행해야만 한다. 마음이 골병들었는데, 사회에서 암묵적으로 요구하는 희생적이고 자애로운 엄마로 살아나가야만 하는 여성의 고통을 감히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이제 내면의 고통을 스스로 극복해 보자. 세상과의 단절을 끝내고 나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꼭 스스로 그 아픔을 정면에서 봐야 하니까 말이다. 우리 스스로 과거와 현재, 미래의 마음을 비춰볼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도구를 함께 활용해 보자. 바로 수천 년을 이어져 내려온 책과 글 그리고 배움을 통해서 말이다. 나와 함께 책을 읽고, 떠오르는 과거의 생각들을 적어보며,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거다. 아마도 그 과정을 통해 너무 아파서, 꼭꼭 숨겨둔 과거 어느 지점의 ‘나’ 자신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행복한데도 왠지 자꾸만 눈물이 난다면, 이제는 정말 숨겨둔 우리의 마음을 스스로 치유할 시간이다. 

         

이제 과거의 상처 입은 너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 보는 거야.        




                                                                        


[추천 책  & 마음으로 쓴 서평]

           

<나 좀 칭찬해 줄래?> (이동귀, 이성직, 안하얀, 타인의 사유, 2020)

:이 책은 현직 심리학과 교수들이 쓴 책으로 가볍고 쉽게 읽히지만, 내용은 심리학 대학 전공교재만큼이나 훌륭하고 탄탄하다. 따라서 전공자가 아닌 일반인도 이 책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해석할 수 있도록 다양한 심리적 이론을 체계적으로 안내하고 있다. 특히 내가 이 책에서 관심 있게 보았던 내용은, 어떤 사람들은 왜 어른이 된 후에도 더 불안정할 수밖에 없는지, 그 이유를 여러 관점에서 설명해 준 부분이었다. 특히, 애착 이론을 기반으로 한 장에서는 한 인간이 어린 시절, 부모와 맺은 잘못된 관계로 인하여 성인기의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파괴적인 심리적 장애를 나타낼 수 있음을 이야기하였다. 즉, 과거의 부모와의 관계에서 우리가 만들어낸 '사랑받지 못할 아이'가 남들은 모르는 나 자신, 즉 숨겨진 진실한 본 모습이라고 믿게 된다는 거다. 이 책을 토대로 보면, 불행하게도, 어린 시절 부모와의 부정적인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 우리 내부의 심리적인 장애와 불안감은 전쟁 참전 용사가 겪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같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난 이 책을 읽고 평생 내가 막연히 밑도 끝도 없이 느꼈던 불안과 공포를 좀 더 구체적으로 보게 되었다. 또한, 책 속의 사례를 보며, 세상에 나처럼 이런 사람이 얼마나 많으면, 책에 사례로 등장할까 싶어서 졸던 눈을 크게 뜨고 볼펜을 쫙쫙 그으며 읽었다. 이 책은, 자신조차 이해할 수 없는 '나의 마음'을 이론적 기반과 사례들을 통해 꼼꼼히 조망해 보고 싶다는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나는 내가 아픈 줄도 모르고>(가토 다이조, 나무생각힐링, 2014)     

:저자는 부모의 사랑 속에서 아무런 구김 없이 자란 아이와 부모의 학대, 방임 속에서 자란 아이는 나중에 성인이 되어서도 전혀 다른 인생의 출발점에 서게 된다고 한다. 상처받은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다고 마음이 저절로 치유되는 것도 아니며, 어른이 되었다고 해서 보통의 가정에서 잘 자란 그들과 같을 수가 없다고 했다. 그런데도, 과거의 상처가 깊은 사람일수록 더 좋은 환경에서 자라 나은 삶을 사는 타인과 경쟁, 비교하며 아픈 자신을 사는 내내 더 아프게 한다고 했다. 이 책의 제목처럼 지난 수십 년간 나도 내 마음이 아픈 줄도 모르고 살았더랬다. 그리고 내가 아픈 줄도 모르고 아픈 나를 더 미워만 했고 말이다. 난 내가 남들처럼, 사지육신이 멀쩡하길래 내 마음도 보통의 다른 사람들처럼 멀쩡한 줄만 알고 살아왔었다. 그런데 내가 부모가 되고 나서 어느 날부터인가 이상하게 너무 마음이 아파져 왔다. 그래서 난, 이유 모를 이 아픔에서 살아남기 위해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그동안 내 마음이 내내 계속 아팠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책은 인생이 매우 공허하고 불행하다고 느껴지지만, 자신의 마음이 어떤지 잘 모르겠다는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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