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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enna Jun 06. 2021

서른의 봄

선택해야 하지만 어느 쪽도 답은 아닌


스물 일곱의 겨울 워킹홀리데이를 떠나던 때에 선택할 건 워홀을 떠날 것이냐, 남을 것이냐 둘 중 하나였다. 떠나는 게 확고했던 나로서는 물을 것도 없는 질문이었다. 스물 아홉의 봄 한국에 돌아올 것이냐 겨울까지 남을 것이냐를 물었을 때도 비록 슬프고 아쉽지만 돌아오는 것이 나았다.


돌아오고 나니 선택할 것들이 더욱 많아졌다. 십년 전 이맘 때, 수년 어린 청춘을 바쳐 들어간 대학의 첫 학기를 끝내가던 무렵 느꼈던 현실적인 장래희망이라는 고민은 놀랍게도 지금까지 계속 되고 있었다. 우리는 무엇을 하고 살아 남아야 하는가, 는 한두 달에 한 번 만나게 되는 친구와의 반복되는 대화 주제였다. 나의 마음은 아직 스물에 머물러 있고 나의 사회적 경제적 위치는 여느 서른들의 범주에서 그다지 눈에 띄지도 뒤처지지도 않는 딱 중간인데 세상만 너무 빨리 흘렀다. 내가 따라잡지 못하는 속도가 거기에 있었다. 지금 하는 일을 계속 해야 하는지 다른 길을 찾아야 하는지, 나는 이 길이 좋은데 내가 이 길에 맞지 않는 건 아닌지, 지금 이 일을 하더라도 새로운 일에 마주해야 하는 건지--그러면서 빠르게 변해 가는 세상에 어떻게든 끼워 살아 봐야 하는 건지 혹은 그 안에서 나는 그래도 자연스러운 속도를 지향하겠다며, 가장 보통인데 보통이라 결국 눈에 띄는 삶을 살아야 하는 건지, 그런 것들.


독립을 나오면서 강아지 김밥을 동반하느냐 아니냐도 나의 큰 고민이었다. 김밥은 가족 중 나를 가장 좋아한다. 하지만 숱한 야근에 생활 패턴이 불분명한 나의 삶을 지난 구년 여간 참아 준 김밥에게 다시금 강요할 수 없었다. 그런 것들 하나, 하나가 또 선택의 연속. 그러나 수학문제처럼 과학문제처럼 답이 나오는 게 아니라서 뭘 선택해도 가타부타가 명확지 않은, 정말 그런 것들.


이 글을 쓰기 시작 한 건 4월인데 6월이 되었다. 나의 서른의 봄은 이렇게 지나가 서른의 여름을 맞이하고 있다. 김밥을 본가에 두고 나 홀로 나온 것 말고는 아무 고민도 해결되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근속과 이직의 기로에서 회사와의 눈치싸움을 하고, 현재적 안정과 미래적 대비의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고 있으며 하물며 탄산수 한 병을 사려고 할 때 조차 씨그램으로 할지 산토리니로 할지 그런 것들의 가운데에서 매번 고민을 하고 있다. 무엇이든 대단한 고민을 하고 있겠지 했던 나의 서른의 봄은 그저 그런 선택의 중간일 뿐, 그다지 대수롭지 않지만, 또 대수롭게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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