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곰손이 Jan 27. 2022

그렇지...죽음은 나쁜 게 아니지...

너한테 내가 또 하나를 배워간다. 

우리 집은 물을 끓여서 마신다. 보리나 옥수수, 둥굴레, 작두콩 등등. 그래서 항상 물이 누렇다. 

어느 날은 물을 미처 끓이지 못해 오랜만에 사다 놓은 생수를 마셨다. 

아들은 투명한 유리잔에 담긴 투명한 물이 마치 다이아몬드 같다며 웃었다. 

그러곤 다이아몬드 물이라 아깝다며 물을 마시지 않겠다고 했다. 


물을 안 마시면 어떻게 돼?

음.... 몸이 힘들어하겠지. 

그럼 하늘나라에 가나?

음.... 오래 안 마시면 그럴 수 있지. 


혼자 곰곰이 생각하다, 혼잣말로 작게 말한다. 

그럼, 나 물 안 마시고 송탄 할아버지처럼 하늘나라 가야지. 


아들의 친할아버지, 그러니까 나의 시아버님은 아들이 4살 때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지셨다. 

그러곤 몇 달 못 버티시다가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셨다. 

어린 나이였지만 아들은 혼란스러워했다. 갑자기 할아버지는 왜 사라졌는지, 

할아버지가 갔다는 하늘나라는 어딘지, 사람들은 왜 그렇게 우는지 말이다. 


어쨌든 난 그 이야기에 불쑥 화가 났다. 

아니, 괘씸했나 보다. 죽는다는 얘기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 아들이 미웠다. 

그러곤 입을 꾹 닫았다. 


나의 달라진 분위기를 감지했을까. 아들이 물었다. 

엄마, 왜 말을 안 해?

........

엄마~~~~~~

.......

엄마~ 엄마~~~~

미운 말 하는 아이랑 얘기하기 싫어서. 


아들도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그게 왜 나쁜 말인지 이해가 안 돼, 잘 모르겠어.


'잉? 이해가 안 된다고?? 그럼 엄마한테 아들이 죽어야겠다고 말하는 게 잘못이 아니라고?'


당황스러웠지만, 차분히 아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결국 아들이 말했다. 

난 이해는 안 되지만 엄마는 나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네. 

이렇게 마무리됐다. 


사실 아들에겐 이런 저런 이유를 둘러댔지만, 

뭐가 나쁜다는 건지 나도 뚜렷하게 떠오르진 않았다.  

어른이 된 나에겐 죽음은 무섭고 두렵다. 생각하는 거 조차 싫다. 

더구나 가족의 죽음은. 특히나 나의 소중한 아들이. 

감히 생각조차 할 수 없다. 그건 너의 부재니까. 

만질 수도, 들을 수도, 말할 수도 없으니까. 

생각만도 슬프고 가슴 아픈 걸 너는 하겠다고? 괘씸하고 미웠던 거다

그래서 그걸 생각하는 것조차 나쁜 거라고 여겼나 보다. 


하지만 아들은 달랐나보다. 

죽음은 그저 먼저 하늘나라에 간 송탄 할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일일 뿐. 

그것이 얼마나 슬픈 이별인지. 이별의 깊이나 애통함은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거다.  

그래서 아들에게 죽음은, '나쁜 것'도, 생각조차 '금지'해야 하는 것도 아니었던 거다.  

그것이 아직도 옆에 없으면 편히 잠들지도 못하는, 엄마와의 이별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던 거 같다. 

사실 이것도.... 

어른인 내가 아들의 생각을 짐작해본 거다. 


그래. 죽음이 왜 나쁜가. 왜 생각하면 안 되는가. 

탄생은 그토록 축복받으면서 죽음은 그토록 무섭고 두려워야 하는가. 

결국 우린 누구나 그렇게 끝을 향해 가는데. 

아들 덕분에, 

죽음이, 삶의 마지막이, 조금은 가볍게 느껴진다. 



작가의 이전글 너의 시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