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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na Apr 16. 2021

3-1. 지상직 승무원,
이제 그만둬야겠어.

2019년 07월, 어느새 일년의 반이 지나갔고 2020년이 다가오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3년 차 사원이었다. 2020년 도쿄 올림픽이 다가오면서 나는 이 회사에 들어온 지 3년 차가 되었다. 도쿄 하네다 국제선 공항에서 지상직으로 일해 오면서 1년 차는 정말 어떻게 시간이 흘러가는지도 몰랐다. 모든 것이 다 새로운 시작이었고 기본적인 체크인 업무조차 너무 떨렸다. 대학교 때와는 달리, 일본 회사 생활이란 누구에게나 다 똑같이 느껴졌겠지만, 적응하기까지 정말 힘들었다. 


하지만 어느새 나에게 내 담당 멘티 후배도 생기고, 몇 명의 신입사원을 가르치는 OJT 교육 담당도 해보았다. 그리고 라운지 업무에도 임명받기도 하고, 조금씩 내가 책임지고 담당하는 업무도 다양해졌다. 처음에는 항공 사니깐 텃세가 심하지 않을까?라는 걱정도 많았지만, 회사에는 한국인 사원들도 생각보다 많았고 다들 진짜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언니, 오빠 같은 존재인 선배님들, 계속 힘낼 수 있게 해 준 동기들과 귀여운 후배들이 있었다.


물론, 지금은 코로나로 인해 많은 분들이 휴직이나 이직, 퇴사를 해서 안타깝지만, 내가 한국에 돌아오기 전까지 내가 결근 없이 꾸준히 회사에 나올 수 있는 이유는 회사에서 만난 좋은 사람들 덕분이었다. 

힘들 때마다 휴식 시간이나 근무 끝나고 자주 올라갔던 전망대. 지금 보니 그리워진다.

 



이렇게 일에는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계속 만족스럽지가 않았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올 때, 계속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지금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는 걸까?'

'이 일이 나를 계속 성장시킬 수 있을까?'


이 고민은 입사하면서도 계속 생각해왔지만, 3년 차에 들어가면서 더욱 심해졌다.

서비스 일 자체는 정말 힘들지만 재밌었고 보람을 느끼는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 일을 통해서 성장했을까? 매일 이 고민을 혼자서도 생각해보았고 회사 사람들이나 친구들한테도 털어놨다. 하지만, 고민 끝의 나는 그 답을 낼 수 있었다. 나의 대답은 'NO'였다.




사람마다 퇴사를 결심하는 이유는 개인마다 있을 것이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들어서도 있을 것이고, 이직이나 결혼을 위해서도 있을 것이다. 내가 퇴사를 결심하게 된 계기가 남자 친구의 영향도 크지만,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아래의 이유들로 정리할 수 있었다.

(아래의 이유들이 내가 일본 회사에서 개인적으로 느꼈던 이유라 개인차가 있을 수 있다)



01. 아날로그의 방식과 업무 환경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일본에서 아직까지도 많은 것이 '아날로그'와 '보수적인 업무방식'이 아닐까 싶다. 보수적이고 아날로그 방식을 고집해오는 일본 업무의 문화가 사실은 제 회사에서도 자주 경험할 수 있었다. 신입시절 때, 업무를 끝내고 나면 결과나 성과에 대해 손으로 일일이 적어서 내 담당 멘토 선배님께 검사를 받고 검사를 받고 나면 내 담당 팀장님부터 시작해 매니저님, 리더님까지 제출 기간 내에 도장을 받기 위해 뛰어다녔다. 매번 새롭게 배우는 업무 내용이나 자료들을 일일이 인쇄해서 구멍 뚫고 바인더에 넣고 들고 다녀야 했다. 그걸 일본에서는 'あんちょこ(안초코/참고서)'라고 부르는데, 정말 양도 많아서 들고 다닐 때 정말 무거웠고 효율성이 없다고 생각했다. 최근에 들어서는 아이패드도 개인마다 지급해 주고 화상회의도 시작하는 등 디지털화됐지만, 사전같이 두꺼운 파일들을 계속 만드는 문화는 계속되는 것 같았다.


내가 아날로그 업무 문화를 배우기 위해서 이렇게까지 힘들게 들어왔나?, 여기는 회사가 아니라 학교 아냐?라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근데, 나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느껴지는데 그 문화를 바꾸려는 모습이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 외에도 힐을 신으면서 오모테나시/おもてなし 를 위해 현장에서 4-5시간을 계속 서 있어야 한다는 점이나 팩스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점등... 여러 업무 쪽에서 너무 많은 아날로그 방식과 문화가 이 회사를 계속 발전이나 성장할 가능성은 없겠구나 라는 생각이 이제는 확신이 들었다.




02. 잔업과 스케줄


이점은 모든 지상직 승무원이라면 겪지 않을까. 내가 일했던 공항은 24시간 동안 열려있는 곳으로 혹시 다른 공항에 도착하는 편이 우리 공항으로 오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 외에도, 비행기가 출발이나 도착을 못하게 됐을 경우, 그때는 비행기 출발할 때까지 또는 도착하고 손님들이 짐 다 찾고 공항을 나갈 때까지 우리는 손님 안내뿐만 아니라, 다음 편 비행기 예약 변경, 리무진, 숙소 찾는 것까지 공항에서 할 수 있는 업무는 우리가 다 해결해야 했다. 손님 대응이 끝나고 나면 引継ぎ(인수인계?) 할 경우가 많아 오후 근무면 새벽 4시까지 남거나, 오전 근무면 저녁 늦게까지 남는 경우도 자주 있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이 일도 좋아했다. 손님 대응하는 게 좋아서인지 아니면 준비하기까지 꼼꼼하게 체크하는 게 좋아했었는지 몰라도 그냥 시간 상관없이 이 일을 하는 거에 책임감을 느끼고 좋아했다.

(그래서 나는 퇴사 전 3일 전에 미국 도착 편이 새벽에 도착하는 바람에 갑작스러운 근무 변경해서 이레귤러 업무 담당해서, 새벽 6시에 집에 돌아갈 수 있었던 적이......)


잔업이나 스케줄 변경되는 건 상관없었는데, 큰 문제는 내 몸이 그걸 견디지 못하는 게 느껴졌다. 몸에 큰 이상은 없었는데, 가면 갈수록 몸이 이 일을 못 견디는 것이 느껴졌다. 일을 마치고 집에서 자려고 하면 잠이 안 와서 술이나 수면제를 먹은 적도 많았고 뭔가 먹으면 스트레스 때문인지 배가 자주 아파졌다. 이런 불규칙스러운 생활을 계속하다 보니, 문뜩 '나 이렇게 생활하다가 진짜 몸 다 망가지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이제는 내 몸도 생각해야 할 시기가 온 것 같았다.


12월이 들어가면 공항은 이렇게 일루미네이션이 시작된다.



03. 영어를 제대로 배우고 싶어


지상직 일을 계속하다 보면, 큰 장점 중 하나는 '외국어를 계속 쓸 수 있다'라는 점이다. 정말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우리 항공사를 이용하기도 해서 외국어(특히, 영어)를 사용하는 기회가 정말 많다. 특히, 회사에서 '한국인은 영어를 잘해!'라는 의식이 있는지, 외국인이랑 트러블이 생기면 동기들이나 선배님들은 한국인 사원들을 찾아서 물어보고 도와달라고 한다. 


그런데 나는 영어를 제대로 배운 적도 없고 정중한 표현을 몰라서 말이 잘 안 통할 때마다, 어떻게든 손짓 발짓으로  영어 아닌 영어로 손님 대응을 해왔다. 물론, 일본인 중에도 해외에서 오랫동안 살아오고 영어를 정말 잘하는 사원들도 있었다. 정말 정중하고 똑 부러지게 영어로 손님 대응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영어를 제대로 배우고 싶은 마음은 계속 커져만 갔다.


전 편에서도 적어놨듯이, 나는 휴가가 나올 때마다 호주에 놀러 갔는데 혼자 여행을 즐기기도 했고 거기서 친구들도 사귀었다. 그런데, 거기서 어쩌다가 친해진 호주-일본인 혼혈 친구랑 정말 친해져서, 어떻게 인연이 돼서 일본에서도 만나기도 했는데, 내가 회사나 영어 고민을 털어놓았을 때  그 친구가 해 준 말이 아직까지도 기억난다.


그냥 너의 인생이야. 
주변 신경 쓰지 말고 너의 인생을 후회 없이 살아.
한 번뿐인 인생이잖아.

그때 머리에 번개 맞은 듯한 느낌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일본에서만 살아갈 수 있을까.

세상은 일본과 한국만 있는 건 아닌데...

후회 없이 살자. 이 한마디가 왜 이리 충격을 줬을까.


시드니의 유명한 카페 중 한 곳. 다시 가고 싶다.


일본에 살기 시작했을 때부터 '영어'는 정말 풀리지 않는 과제였다. 영어 하고 싶다는 마음이 줄곧 남아 있어 대학에서도 영어동아리에 들기도 했고 짧게나마 어학연수도 가보기도 했다. 하지만, 몇 번이고 집중해서 공부하다가도 일본어로 계속 생활하다 보니 영어는 자연스럽게 묻혀 가는 존재였다. 이제는 영어를 제대로 배워서 좀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다. 회사에서 영어를 쓰더라도 내가 스스로 공부하지 않으면 내 영어실력을 향상할 수는 없다. 이런저런 이유들이 쌓이고 쌓여, 결국 나는 퇴사를 결심하기로 했다.


기숙사 방에 있는 냉장고 자석. 원래 더 많았는데 정리하다 보니 다 어디론가 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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