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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na Apr 17. 2021

3-3. 퇴사 전 TO DO LIST,
그리고 태풍.

퇴사 전까지 나를 괴롭힌 태풍, 여행, 이별파티.

퇴사까지 D-60. 나는 TO DO LIST를 만들었고 실행해 갔다. 이번 글에는 귀국 전까지 해야 할 업무들도 있었지만, 이번 글에는 내가 퇴사 전까지 내가 겪었던 일들을 정리해보겠다. 


가족 해외여행 가기


따로 만나서 해외여행도 해보았지만, 가족 다 같이 모여서 일본이 아닌 지역으로 여행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퇴사 전에 큰 맘먹고 하와이를 가기로 결정했다. 3박 5일이라는 조금 타이트한 일정이었고 더운 날씨와 시차 적응을 잘 못한 탓에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호텔에서 보냈지만, 그냥 바다만 보고 있어도 우리는 행복했다.


호텔 베란다에서 계속 바깥 바다 풍경 보면서 쌓였던 대화도 몇 시간 떠들고, 아침이나 저녁쯤에는 주변 산책이나 쇼핑하고 밖에서 사 먹고 슈퍼에서 간식들을 잔뜩 사 먹고 정말 크게 관광을 한 건 없었지만, 다 같이 즐기고 돌아온 여행이었다.


돌아갈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는 동안, 게이트에서 엄마가 나의 손을 꼭 잡으면서 이렇게 말씀해 주셨다.


퇴사 정리 잘하고 아직 이른 말이지만 고생 많이 했다. 우리 딸.
다음에 또 기회 되면 다 같이 가족 여행 가자.


그냥 별거 아닌 한마디인데, 괜히 뭉클해졌다. 엄마 얼굴 보면 울 것 같았지만, 웃으면서 농담으로 그냥 넘겨버렸다. 일본 가족 여행지로 항상 1위를 차지하는 지역은 ‘하와이’이다. 처음에는 그 이유를 잘 몰랐는데, 이제는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꼭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하와이는 가족이랑 다 같이 한 번 더 가고 싶은 곳이 되었다. (그렇지만, 코로나 때문에 지금 여행은 꿈도 못 꾸고 있다^^)

다시 가고 싶다. HAWAIIII!!!
눈물의 이별 파티는 무슨, 불같은 이별 파티다!!!!!!!!!


나는 회식을 안 좋아한다. 하지만,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노는 건 좋아한다. 그래서 귀국 전까지 나는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들 다 만나면서 이별 파티를 즐겼다. 참고로, 귀국하기 이틀 전쯤 동생이 도쿄에 와주었는데, 그때 동생이 내 얼굴 보고 쓰러질 것 같다고 말해줄 정도였다. 아니...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를 사람들인데 즐겁게 보내야 하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서프라이즈 준비도 해주고 감사합니다.

우리 동기부터 시작해서, 입사 전 합숙훈련 때 만난 팀원들과 담당자 선배님, 대학 친구들, 호주에서 친해진 친구, 일본 유학 처음 왔을 때 친해진 일본인 등.... 정말 언제 또 볼지 모르니 그냥 시간 나면 만났다. 그래서 이번 이별 파티를 통해서 깨달은 점은 술은 적당히 마셔야 하는 것이다. 과도한 음주가 왜 몸에 해로운지 알 것 같다. 내 인생 진짜 이렇게 장기간 연속적으로 술로 보낸 건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일본 국내 여행.


퇴사 전까지 하고 싶은 리스트 중 하나가 일본 국내여행이었다. 항공 회사를 다니면 사원 티켓을 쓸 수 있게 되는데, 동기들은 정말 열심히 이곳저곳 잘 다녔지만 나는 항상 일이 끝나면 너무 몸이 피곤해서 그냥 회사-집으로 살아왔다. 그런데 퇴사가 다가오자 내가 제대로 이 회사에서 주는 혜택을 즐기지 못한 게 아쉬워졌다. 그래서 시간 날 때 짧게나마 일본 국내여행을 떠돌아다녔다. 


친한 한국인 언니랑 같이 일본 국내여행 다니면서 관광객처럼 많이 먹고 사진도 많이 찍고 재밌었다. 여행을 다니면서 다시 처음 일본에 왔을 때의 감정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하지만, 여행의 단점이라고 하면 여행시간이 지나갈수록 현실로 돌아가는 그 순간이 너무 슬펐다. 기내 밖 파란 하늘을 보면서 계속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다음엔 또 언젠가는 올 수 있겠지..?'

언니랑 오사카, 교토에서 헤어진 뒤 나는 나홀로 고베 여행을 즐겼다.


또다시 찾아온 태풍 그 녀석.


아.. 그리고 태풍의 인연은 저번 에피소드에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동기 결혼식에 참여하기 위해 나는 1박 2일로 서울에 가기로 했다. 비행기도 숙소도 다 예매했고 짧지만 알차게 보내기 위해, 결혼식 가기 전날에 그 유명한 나만의 증명사진을 찍어주시는 '시현하다'에서 사진을 찍고 고등학교 친구도 만나고 쇼핑도 좀 하고 이것저것 계획을 다 짜 놓은 상태였다,


그런데.... 서울로 떠나기 전, 또다시 태풍은 나를 쉽게 놔두지를 못했다..... 심지어 저번 태풍보다 크기도 일본 전체를 가릴 정도로 어마 무시했다. 아...... 결국, 정말 가고 싶었던 결혼식에도 참가하지 못했고, 나는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발권카운터에 가서 공석도 겨우겨우 구해서 그다음 날 아침 비행기도 변경해서 결국 내가 서울에 있는 시간은 15시간 정도밖에 없었다.


나의 짧지만 알차게 지내고 싶을 서울 여행 계획은 그렇게 깨끗이 사라져 버렸다. 계획들 중에서 유일하게 한 것이 그 유명하다던 '시현하다'에서 증명사진 찍은 것. 정말 이쁘게 찍어주셔서 감사했지만, 나는 이것만 찍고 나니 벌써 저녁이라서 숙소 근처에서 그냥 간단하게 술과 밥으로 서울 여행을 마무리했다.

급하게 도쿄로 돌아가는 기내 밖 풍경. 아무것도 안 보인다.

새벽부터 일어나, 바로 김포공항으로 이동했다. 태풍이 다가오고 있는 공항의 그 긴장감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아직 태풍 전이라 엄청 북적이지는 않았지만, 티켓 변경하러 오신 손님들도 꽤 있었고 직원들도 바빠 보였다. 어찌 됐든, 나는 정말 짧은 여행 아닌 여행을 끝내고 도쿄로 다시 돌아갔다. 이럴 거면 왜 갔을까.


그런데 저번 태풍의 피해도 컸지만, 이번 태풍의 위력도 만만치 않았다. 당시 태풍 19호는 일본 역대급 태풍이라고 불릴 정도였다. 공항에 도착했을 때 도착 로비에서 이미 크게 전철이나 택시, 버스는 태풍 영향권에 들어가는 시간부터 운행 중지한다는 안내문도 써져있어서 나는 빨리 기숙사로 돌아갔다. 내 기억상, 그 당시 편의점이나 슈퍼에 다들 사재기를 해버려서 사 먹을 음식이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역 근처에 있는 패스트푸드에서 사들고 간 기억이 난다.



기숙사에 돌아가는 길에 내 옆방 동기(저번에 같이 태풍을 지낸 동기)가 나를 보더니 엄청 웃었다.

'너...... 결국에 돌아왔니??'이러면서. 나도 이 상황이 너무 어이없어서 같이 웃고, 자연스럽게 옆방에서 뉴스 보면서 저녁을 보냈다.


참고로 이 동기는 그다음 날 오전 근무였고 나는 오후 근무였는데, 동기는 출근시간 때가 태풍 영향권이고 갈 수 있는 수단이 없어 회사에서 오지 말라고 연락이 왔다. 근데, 나는 오후라서 이미 태풍 지나고 난 뒤라 어떻게든 가야만 했다. 진짜 동기가 부러워지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이 날 태풍만 온 것이 아니라 진도 3,4? 정도의 지진도 와서 재난경보가 계속 울렸었다. 태풍과 지진이 동시에 오는 경우가 나는 처음이라 좀 당황했었는데, 일본인 동기는 조금 놀랬지만 잠잠해지자 다시 별 일 아닌 듯 지내는 모습이 놀라웠다. 

창문 밖은 태풍 때문에 난리가 났지만, 나는 동기 방에서 뉴스를 계속 보면서 근무 전 파티를 즐겼다.

다행히 태풍은 무사히 도쿄를 지나갔지만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근무하러 평소보다 더 일찍 공항에 갔다. 그리고 지난번 태풍 상황보다 공항은 더 붐비고 지옥이었다. 사람들은 카운터 어디에 서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었고, 위층에 레스토랑 앞과 벤치에는 사람들이 누워있거나 앉아있어서 무슨 피난처같이 느낄 정도였다. 


이 날 뉴스를 보니 도쿄 외 지역들에서는 홍수나 산사태 등 큰 피해를 입었다. 그래도 저번 태풍의 피해에 조금은 이런 상황이 익숙했는지 다들 일을 척척해냈던 것 같다. 다들 거의 기계같이 느껴질 정도로 매뉴얼대로 척척 일하는 모습이 대단했다. 하지만 자연재해가 2019년에 연속으로 왔고 피해도 막심했기 때문에, 자연 앞에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느낄 수 있었다. 최근에도 일본에서는 진도 높은 지진들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일본에 계속 생활하고 있는 친구들이 걱정된다. 



이렇게 태풍이 지나가고 남은 근무는 2,3주도 채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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