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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na Apr 17. 2021

3-4. 생일날 마지막 근무, 한국으로 돌아가다.

8년 6개월 일본 생활을 마무리하다.

생일날 뭐 받고 싶으세요? 이런 질문받으면 다들 명품 지갑, 가방, 맛있는 음식 등 다양한 대답이 나올 것이다. 그 당시 나는 뭐 때문에 그런 지 모르겠지만 "다 필요 없고 일 그만두고 싶어요"라고 대답하고 싶었고 그 소원을 이루었다. 나의 마지막 근무 날이 내 생일이었다.


마지막 근무 날이 다가오면서 나는 정말 바빴다. 회사일도 정리해야 할 게 너무 많았지만, 일단 귀국 준비하는 데 있어서 아래의 리스트를 처리하는데 정말 바쁘게 움직였다. 원래 최종 근무 날과 퇴사 날를 여유 두고 움직여도 괜찮았는데, 나는 그냥 빨리 한국에 가고 싶어서 마지막 근무 날 전에 최대한 모든 걸 정리해버렸다.



1. 은행 통장/카드 해지(월급이나 잔업수당 받을 통장 1개는 남겨두자!)

2. 구청에서 할 일-전출신고, 마이 넘버 해지, 건강보험 해지 등

3. 인터넷, 수도, 전기, 가스 해지

4. 기숙사 해약

5. 가구들 다 정리/한국으로 보낼 짐 정리

6. 세금 환급받기 준비!


정말 오전 근무 끝나면 바로 은행이나 구청으로 달려가서 업무 보고 휴일은 정말 많은 짐들을 정리하고 정리하고..... 계속 정리했다. 혹시 귀국 준비하시는 분들이 계신다면 1-2달 정도 여유 두고 계획적으로 준비하시는 편이 좋습니다.



정신 차리고 보니 어느새 마지막 근무 전날이었다. 빨리 집에 가서 쉬고 싶었는데, 회사 동기가 나한테 와서 오늘 뭐 하냐고 물었다. 나는 "家に帰ると思ったんだけど、どうしたん?(집에 가겠지...? 왜에?)"라고 답하니, 동기가 이렇게 대답했다. "急にこんな風にお願いするのおかしいと思うけど、今日終わったら空港回ろう!(갑자기 이렇게 부탁하는 거 이상해 보이겠지만, 오늘 일 끝나고 공항 돌아다니자!)"



지금? 갑자기........?라고 생각했지만, 뭐 간단히 커피 마시고 가는 거겠지라고 생각하고 그래 좋아라고 대답했다. 일 끝나고 라커룸에서 만나서 나는 동기에게 간단하게 커피 마실 거지?라고 물어보고 싶었는데, 갑자기 내 손을 잡더니 카운터 층으로 갔다. 내가 당황해서 계속 뭐냐고 물어보니, 동기는 이렇게 대답했다.


이제 내일이면 마지막이잖아!
마지막 근무 분명히 정리하느라 공항 제대로 볼 시간 없을 테니까,
오늘 사진 많이 찍어둬! 언제 또 올지 모르는 곳이 될 거잖아!


당당하게 말하는 동기의 말에 반박할 이유가 없어서 그렇게 나는 밤늦게까지 공항을 몇 시간이나 돌아다녔다.

어두워지기 전이라 동기는 전망대로 나를 이끌고 올라갔다. 내가 처음에는 내가 무슨 대단한 거 하지도 않았는데 추억사진 찍냐고 생각이 들었는데, 전망대 쪽으로 가서 비행기 모습을 보니 어느새 나는 비행기를 계속 찍고 있었다.



이렇게 사진을 여기저기 찍다 보니, 어느새 하늘은 어두워졌다. 찍다가 보니, 나는 일하느라 바빠서 제대로 공항 모습을 보지도 않았던 것 같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좋은 일도 힘들었던 일도 많았다. 입사 전까지 공항에서 일한다는 나의 모습은 상상되지 않았다. 항공 회사에서 일한다는 것도 생각이 되지 않았다. 어쩌다 보니, 운 좋게 최종 면접까지 가서 내정도 받고 입사도 하게 되었다. 입사식 때의 그 두근거림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일에 익숙해져서 공항에 가면 기분이 설레는 마음은 어느새 사라진 듯했다. 하지만, 전망대에서 다시 그 설레는 마음이 돌아온 것 같았다. 아무 말 없이 밖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힘들었지? 고생했어, 진짜.


동기가 이렇게 말해주는 순간, 갑자기 눈물이 펑펑 났다. 힘들어도 그냥 꾹 참고 회사 안에서는 계속 웃었다. 그런데, 사실은 나 고생한 거였구나. 힘든 거였구나.라는 생각이 드니, 그냥 계속 몇 분 동안 울었다. 그렇게 울었는데, 아무 말 없이 나를 기다려주는 동기가 고마워졌다.


이렇게 울고 나니, 배고파져서 저녁 먹으러 레스토랑 층으로 가서 저녁을 먹었다. 레스토랑 층에 항상 규동이나 간단한 도시락 사서 휴게실로 향하는데,  어차피 마지막이니까 비싼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진짜 비싼 걸 먹는 이유를 알겠다. 거짓말 안 하고 너무 맛있었다.


먹고 나서 나는 이제 집에 가려고 했는데, 동기가 아직 공항 산책 안 끝났다고 나를 붙잡고 제1 터미널로 향했다. 제1 터미널은 JAL 국내선 터미널인데, 그쪽에 스타벅스로 향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하네다 공항은 국내선, 국제선이 나눠져 있었고 제2 터미널이 ANA, 제1 터미널이 JAL 비행 편이었다. 그런데, 올해부터 우리 항공사가 일부 국제선 편이 제2터미널로 옮겨졌다고 한다. 어쨌든 우리는 스타벅스에서 빵과 커피 마시면서 영업시간 끝날 때까지 떠들었다. 나의 마지막 근무 전날을 의미 있게 보내게 신경 써준 동기가 고마웠다.




마지막 근무 날. 나는 무슨 정신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이 날 기숙사를 나와야 했고 캐리어 옮기고 호텔로 향해야 했고 바로 오후 근무하러 달려가야 했다. 그래서 새벽부터 일 다 못 끝낸 짐을 급하게 정리하며 전기, 수도, 가스와 인터넷 해지하고 정말 급하게 호텔로 향했다.


마지막 근무 떠나기 전의 기숙사.


마지막 날은 근무 정리하며 꼭 마지막에 하고 싶었던 '김포 게이트'담당하고 끝나는 정말 심플한 근무였다. (그런데, 이 날 게이트 진짜 바빴다.) 조용히 선배들 인사하고 끝내려고 했는데, 오피스에서 동기들이랑 선배 후배들이 고생했다며 편지랑 선물들 주셨다. 또 거기서 난 울어서 화장 지워지고 난리도 아니었는데, 사진도 엄청 찍었다. 메일도 보내야 했는데 인사하고 돌아다니다 보니 막차시간도 지나버려 택시 타고 호텔로 돌아가야만 했다.



지상직 근무는 그렇게 생각보다 화려하고 쉬운 일이 아니다. 생각보다 확인해야 할 사항도 많고 까다로운데 거기다가 좋은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상황에 따라서는 땀이 날 정도로 큰 소리로 뛰어다녀야 하기도 했고 무거운 짐을 들고 달리기도 했다. 짧은 시간 내에 정확하게, 실수 없이, 많은 일을 해야 한다. 그래서 매 순간이 긴장감 있고 빠르게 처리해야만 하는 업무였다. 좋은 손님보다 화내는 손님들이 더 많았고 클레임 처리하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그래도 왜 이 일을 계속했을까? 힘든 일도 있으면 기분 좋은 일도 있다. 나쁜 사람도 있으면 좋은 사람도 있다. 결국 사람들이랑 만나는 게 좋아서 계속 일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여기서 일하면서 좋은 인연, 잊을 수 없는 순간들도 정말 많았다. 출발과 도착의 연속이지만 나랑 같이 일한 사람들, 내가 대응했던 손님들을 대부분 다 기억하고 있다. 그만큼 이 일을 통해 나는 소중하고 좋은 추억들이 가득했다.


누군가가 이 일을 다시 하고 싶다고 말하면, 나는 망설임 없이 다시 하고 싶다고 말하고 싶다. 현재 항공사가 많이 힘든 건 사실이지만, 나는 하늘의 문이 자유롭게 열린다면 공항에서 다시 일하고 싶다.





귀국 준비를 하는 데 있어서 회사에서 준비해야 할 것들도 많았다. 회사 규정상, 구체적인 내용은 자세히 못 말하지만, 대충 말하면 유니폼, 사원증, 그 외 제출해야 하는 서류들이 있고 정해진 부서가 있어서 거기에 제출하면 된다.


그리고 퇴사 전에 원청 진수 표, 연금 수첩, 퇴직 증명서/재직 기간 증명서 등 필요한 서류들 받고 싶다고 미리 메일로 연락했다.


이렇게 다 제출하고 나니, 진짜로 모든 일이 끝난 것 같아 속이 후련했다. 남은 건 한국으로 돌아가는 일밖에 없구나라고 생각하니 또 뭔가 아쉬워진다. 사람 마음은 참 이상하다. 싫은 순간에는 그만두고 싶은데, 그 순간이 끝나면 아쉬워지는 게 참 이상하다.





한 달 전만 하더라도, 귀국 준비 잘 마무리하고 돌아갈 수 있을까 걱정 많이 했는데, 어찌해서 정리 잘 마무리하고 공항까지 왔다. 다행히 날씨도 좋았다. 진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공항에 혼자 그냥 들어가려고 하는데, 동기랑 대학교 단짝이었던 친구가 인사하러 나리타공항까지 와줬다. 동기는 내일 새벽 근무인데 와줘서 감동이었다. 나를 이렇게 생각해 주는 사람들이 몇 명이라도 있어준 것이 너무 행복한 순간이었다.


친구들이 계속 울어도 된다고 그랬는데, 회사 때와는 다르게 너무 홀가분했다. 진짜 너무 가고 싶은 마음이 한가득이었을까.. 한국에 돌아간다는 기쁨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후회 없이 여기서 잘 생활해온 만족감도 큰 것 같다. 와 준 친구들에게  '또 보자!'라고 인사하며 나는 출국심사로 들어갔다.


게이트에는 금방 도착해서, 그냥 멍 때리면서 바깥 풍경을 바라보았다. 영화나 드라마처럼 이런 순간에 여러 생각들 많이 하던데, 나는 진짜 피곤했는지 빨리 들어가서 쉬고 싶다를 도대체 몇 번이나 생각했는지 모른다. 역시 영화는 영화일 뿐, 현실은 다르다.

그렇게 멍 때리고 나는 기내에 들어가자마자 자버렸다.


한국에 오니 편안한 생활이 이어졌다. 한국 밥을 먹는다는 것, 한국 뉴스랑 예능 프로그램을 본다는 게 정말 행복한 거였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나는 4월에는 호주에 갈 예정이어서 영어학원, 운전면허증 학원을 다니고 있었다.

하지만 그놈의 코로나가 이렇게까지 나를 한국에 길게 있게 할 줄은 몰랐지만.


아, 그리고 돌아와서 일본 후생 연금 환급받기까지 정말 시간 많이 걸린다. 거의 6개월 걸린다고는 들었는데, 나 같은 경우도 정확히 6개월이 걸렸다. 서류들이랑 혹시 이상은 없을까, 연락이 없어서 괜찮으려나?라는 걱정을 몇 번이고 했는데, 다행히 무사히 후생 연금(근데 소득세를 왜 빼가는지 이해 못 함)을 받을 수 있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난 후 나는 일본에 왔다.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부모님은 일본에 가고 싶지 않으면 안 가도 된다.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나는 그냥 가보고 정말 나랑 안 맞으면 돌아오겠다고 말했다.


일본에 처음 왔었을 때, 나는 일본어 히라가나, 가타카나도 모르는 일본어 0인 실력을 가졌었다. 정말 그때 입국 절차 때 일본어로 뭔가 나한테 물었었는데, 내가 대답도 못하고 어버버 해서 직원이랑 30분 동안 영어 아닌 영어로 대화해서 겨우 풀려나갔다.


일본에 생활하면서 좌절의 연속이었다. 먼저, 어학원에서 대학 수험 준비도 하면서 정말 일본어도 못하고 시험 점수도 안 나와서 몇 번이고 좌절했고 힘들었다.


그리고 취준 생활하면서 거의 50-60개 엔트리를 넣었는데 서류전형 통과한 것도 10개도 안되고 다들 거의 끝나가는데 나만 내정도 못 받았을 때 한 번 더 좌절했었다. 회사에 들어가고 나니 대학과는 또 다른 생활이었고 군대 같은 분위기에서 익숙해지기 위해 정말 1-2년은 집에 돌아오면 눈물과 짜증의 연속이었다.


누군가가 나에게 일본에서 생활하는 거 어떻냐고 물어보면, 나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힘들면 힘들고 재밌으면 재밌게 지낼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보수적이고 깐깐한 나라에서 뭔가 얻으려고 하지 말고, 여유가 된다면 더 넓은 세계를 보길 바란다.라고...


일본 생활하면서 좋았던 점들도, 배워야 할 점들도 있긴 있다. 하지만, 요즘 일본 뉴스와 내가 경험해온 바에 따르면 시대에 뒤처져가고 있는 나라가 되고 있는 것 같다.


그래도 일본에서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배우고 성장했다. 결국 만나고 친해진 사람들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고, 좋게 마무리하지 않았을까 싶다.

힘든 순간도 많았지만, 정말 끊임없이 나를 일으켜 주고 응원해 준 친구들 덕분에 나는 즐겁게 지낼 수 있었고 일본에 좋은 추억들도 많다. 일본에 갈 수 있다면 나를 도와줬던 친구들 보러 한 번쯤은 가보고 싶다.


약 8년 반 동안 내 20대를 여기에 바쳤다. 후회는 없다. 인생 짧으니깐 더 즐기자, 앞으로의 내 인생. 긴 시간이었지만 고마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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