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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웨이즈 정은미 Jan 30. 2022

5년이 지나 잠들 수 있었다.

시집온 지 8년


침대가 아니라서 인 줄 알았다.

내가 평소에 쓰는 침구가 아니라서겠거니 했다.


시댁에 가면 이상하리만큼 피곤했다.

가는 길이 멀어 도착하면 이미 진이 빠지고 만다.

딱딱한 방바닥에서 잠을 자려고 노력하다 보면

어느새, 새벽닭이 운다. 그러나 나는 그전에 잠이 깨고 만다.


100년 된 나무집이라 주방과 방은 미닫이로 되어 있으며

평소 핸드폰 진동으로도 잠을 잘 깨는 나는

미닫이문이 열리는 소리, 밥 짓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린다.


이따금씩 듣던 뾰족한 말들이 문득문득 떠오르고

그걸 나는 피곤하고 지친 모습으로 저항을 표했던 거 같다.


나는 계속해서 피곤했다.


가족이 많은 것이 좋아 결혼하고 싶었다.

북적거리는 게 좋아 나도 섞이고 싶었다.

그러나 결혼을 하고야 실감이 낫다.

시부모님, 도련님뿐 아니라 친척 어르신분들, 사촌 조카들과 가족이 되는 것이었다.

맏며느리로서, 그냥 좀 무던하게

그냥 좀 허허거리며

수줍음을 콘셉트로 한 며느리로 보냈다.


그리고, 5년이 지나고 로이를 낳았다.

엄마가 되었다.

수줍고 말고 할 여력이 없다.

나는 나처럼 행동하기 시작했다.






가족이 된다는 건

필요충분조건이 있다.


<절대적 시간을 보내기>

시집온 지, 8년

같이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이야기를 하고,,


뭐가 먹고 싶냐고 하시면 당당히 회가 먹고 싶다고(여기는 전주, 내륙지방이라 바닷가 음식보다 고기이다) 말하기도 하고

설거지를 하고, 벌러덩 눕기도 한다.

그게 허용되는 분위기를 8년 며느리를 하며 만들어졌다.




<함께 해결하기>

신혼 초에, 도련님께서 다니던 회사가 너무 안 맞아서 관두고, 완전히 새로운 일에 도전해야 하는 시기가 왔다.

이력서와 면접 준비를 해야 되는데

형이 제대로 봐줄 수가 있다는 판단하에

한 달 정도 우리 집에서 함께 생활한 적이 있다.(21평 아파트라 옷방에서 간신히 잠을 잤다)

그때, 나도 자격증 시험 준비를 하고 있던 때라

도련님과 함께 독서실을 다녔다. 그리고 우리는 둘 다 좋은 결과를 얻었다.

그 일이 나는 큰 결심을 한 게 아니다.

평소 도련님의 성품을 알고 있었고, 나도 같이 있으면 더 시너지가 있겠다 라는 생각이었는데

그걸 두고두고 어머니는 고맙다고 말해주고, 도련님도 나에게 감사함을 표한다.




<배려심 배우기>

결혼 전, 나는 세상에 혼자인 느낌을 자주 받곤 했다.

나는 그렇게 커왔고 그게 세상을 사는 법이라 여겼다.

웬만하면 내가 알아서 해결하고 결론적으로는 옳지 않은 판단과 결과를 얻더라도

어쩔 수 없었다는 생각을 하며 살았던 것 같다.

이 말은 주는 것 받는 것 둘 다 안 한다라는 성향을 가지고 있는 것.

이런 생각을 깬 것은 남편을 만나고, 결혼생활을 하면서이다.


한 일례를 들어보면


우리가 명절이든 언제든 왔다가 차를 타고 마지막 인사를 하려 할 때,

집에 있는 과일이며 주전부리를 주섬주섬 챙겨주시고, 커피를 사 먹으라고 5만 원씩을 꼭 창문 너머로 주신다

다 큰 자식에게 돈을 주시는구나.. 이렇게 생각했던 나이다.

그러시면서 이제 가는구나.. 아쉽다..라는 눈빛이 지금 내가 로이를 쳐다볼 때랑 별 반 다름이 없으시다.



이불을 꼭 빨아놓으신다.

어머니께서는 우리가 온다고 하면 이불을 빨아놓던지, 아니면 새 이불을 장만해놓으신다.

그리고 시골집이라 자는 게 불편할 거라며 미안해하신다.

나는 어머님 아버님 오실 때 그렇게 까지 못 해 드리는 거.

그리고 거실에 주무시게 하는 게. 참 마음에 걸린다.





지난 토요일 밤, 우리는 도착해 내가 좋아하는 회를 밤 9시에 먹기 시작했다.

다 먹고 나니, 컵에 한약같이 생긴 걸 뜨거운 물을 넣어서 가지고 오신다.

흑염소라고, 전주에서 진짜 유명한 데라나~~


그리고 하고 싶으신 말이 있으시지만 차마 강요하시지는 못하는.


-일을 좀 줄이고, 아이를 잘 봤으면 좋겠다-


아마 이 말일 것이다.

삐족하게 들리지 않는다.

그냥 세상을 조금 더 살아본 어른으로써,

진짜 나의 엄마, 아빠로서 걱정이라고

말하고 싶어 하신다는 걸 느낀다.


좋다.

나는 가족이 생겼다.

그리고 나는 딱딱한 바닥에서

닭울음 소리를 들으며 아주 잠을 잘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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