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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레네 Jul 18. 2021

두려움을 밟아야 할 때

바람을 두발 아래두자

방탄소년단 RM이 만든 노래 <Bicycle>을 들었다. 화려하고 반짝이는 랩을 늘어놓던 그가, 이 노래에선 잔잔하고 은은하게 속닥였다. "두 발을 구르며/ 볼 수 없는 그댈 마주해/ 언제나처럼 날 맞아주는 몇 센티의 떨림/ (…) / 슬프면 자전거를 타자/ 바람을 두 발 아래 두자" 



얼마 전, 아주 오랜만에 자전거를 탔다. 대학을 갓 졸업한 백수였던 8년 전, 여의도 공원에서 한 시간에 3천 원을 받고 대여해주는 자전거를 탄 게 마지막이었다. (그때도 자전거에 능숙한 편이 아니었기에, 반은 질질 끌고 다니고 나머지 반은 느릿하게 타다/서다를 반복했을 뿐이었다.) 



8년 만에 다시 접한 자전거는 역시나 어려웠다. 예전엔 도대체 어떻게 중심을 잡았는지, 이 비틀거리는 사지육신을 어떻게 다스렸는지 감도 안 왔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체력장에서 늘 최하위권에 머물렀던 나의 몹쓸 운동신경이 한탄스러웠다. 친구는 '잘하고 있어!'라며 나를 다독이고 성심껏 도와주었지만, 나는 두 발을 페달에 올려놓는 것조차 힘들었다. 그렇게 중심을 못 잡고 자꾸만 한쪽으로 넘어지기를 수십 번-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그저 나를 바라보고 있는 친구에게 '너라도 시원하게 한 바퀴 돌고 와'라고 말했다. 잠시 망설이던 친구는 가뿐하게 자전에게 올라타 공터를 매끈하고 자유롭게- 마치 한 마리의 새처럼 돌았다. 바람을 가르고 나풀거리는 친구의 머리에서 괜히 포카리 스웨트의 향기가 나는 것만 같았다. '아 부러워…' 뱅글뱅글 돌아가는 두 발에서 느껴지는 산뜻함에, 나는 다시 한번 힘을 내보기로 했다. 오늘, 지금 이 순간 성공하지 않으면 평생 못할 것만 같단 생각이 스쳤다. 



십 오분쯤. 아니, 어쩌면 삼십 분쯤. 친구의 안타까운 시선과 공원 한 구석에 있던 아저씨의 '거 참 드럽게 못 타네'라고 말하는 것만 같은 시선에 풀이 죽어가고 있던 나는, 몇 번 째인지 모를 발을 구르다 문득 내가 넘어질 것 같아 두려울 때마다 발을 멈춘다는 것을 깨달았다. 문제는 핸들의 방향이나, 정확히 중심에 앉지 못한 엉덩이라든가 삭막한 운동신경이 아니었던 거다. 두려움을 저 편에 꾸욱 누른 채 계속 페달을 밟는 것이 포인트였던거다! 나는 넘어지더라도 일단 계속 한 번 밟아보자,라고 생각하며 힘차게 발을 굴렀다. 이리저리 휘청이는 핸들 때문에 몸이 갸우뚱갸우뚱거렸지만 어떻게 저떻게 굴러갔다. 나의 첫 주행은 그렇게, 두려움을 밟으며 이뤄졌다. 



어쩌면 난 지나치게 생각이 많은 건지도 모른다. 지금은 그저, 페달을 부지런히 밟을 때인데. 

갑작스레 얻은 교훈을 마음에 삼킨 날, 나는 자전거를 타며 RM의 말처럼 바람을 두 발 아래 두었다. 날 수 없지만 날아가고 있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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