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했던 어느 밤에 우린 함께 누워, 서로의 조각을 지켰던 거겠지
커버 이미지: 피터 도이그 作 <Milky way>
내 우울의 역사는 길다. 시작이 언제인지 모르는 데다 꽤 오랜 시간 상담을 듣고 약을 먹었음에도 여전히 종종 우울해지는 걸 보면, 그냥 태어날 적부터 이렇게 생겨먹은 건지도 모르겠다.
내 친구 '알라(코알라를 닮아 붙여진 별명이었다)'는 그런 나의 우울함을 오랜 시간 보아온 친구다. 열두 살 때 만난 우리는 같은 동네에 살며 같은 학교를 다녔다. 겁이 많은 알라와 매사에 심드렁했던 나는 많은 시작을 함께 하고, 무수한 끝을 함께 목도했다. 알라의 엄마가 언젠가 했던 말처럼, 둘이 합쳐 일 인분의 십 대를 보냈다고 해도 영 허튼소리는 아닐 것이다.
2009년 봄은 지독했다. 수면제를 먹지 않으면 잠 못 이루는 밤이 계속됐다. 오랜 시간 나를 길러준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첫 연애의 끝을 보았으며, 2년간 휴학해서 모은 돈을 모종의 일로 다 잃었다. 자존감이 떨어지고 그에 따라 삶에 대한 의지도 점차 희박해져 갔다. 예전 드라마를 보면 수면제 같은 걸 과다 복용해서 죽기도 하던데 그즈음의 약은 너무 발전되어 그럴 수도 없다 했다. 그렇다면 뭘로 죽을 수 있을까. 내 손으로 죽는 거는 좀 그렇고, 차에 좀 치여볼 순 없을까 … 그딴 생각을 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내가 우울할수록 알라는 나를 자꾸만 불러냈다. 곱창 싫어, 치맥 싫어, 입맛 없어, 씻기 귀찮아… 거절이 길어질 때면 집에 쳐들어 오기도 했다. 마침 자취를 하고 있던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알라가 나를 혼자 두기 두려워한다는 게 어렴풋이 느껴졌다. 그 애는 여전히 겁이 많았고, 나는 심드렁의 끝까지 떠밀려 세상을 간당간당하게 붙잡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그 애의 겁이 날 붙잡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날은 알라가 꽃을 사들고 왔다. 내가 좋아하는 후리지아였다. 자취방에 꽃병이 없어 그나마 긴 유리컵을 꺼냈다. '원래 여기엔 수입 맥주를 가득 따라 마셔야 하는데, 꽃이 담겨 있는 동안엔 그러지 못하겠네'라고 멋쩍게 고마움을 전하던 그때, 유리잔이 떨어져 깨졌다. 산산조각이 났다. '아, 역시 난 재수가 없나 봐' … 지금 생각하면 별일도 아닌데 세상이 깨진 기분마저 들었다.
후리지아는 꽃 병도 유리컵도 아닌, 우리가 먹은 참이슬 병에 꽂혔다. 각자의 주량을 가뿐히 초과한 후 침대에 누우니 세상이 빙글빙글 돌았다. 알라는 내 옆에 누웠다. 혼자 있을 땐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던 더블 침대가 꽉 찼다. 조심하는데도 어깨가 자꾸만 닿고, 사부작 거리는 움직임이 싸구려 침대 스프링을 통해 고스란히 전해졌다.
"야, 내가 어디서 읽은 시인데, 함 들어봐 봐."
그때, 알라가 핸드폰 화면에 시선을 둔 채 뜬금없이 시를 읽기 시작했다. 정호승 시인의 <산산조각>이라는 시였다.
룸비니에서 사 온
흙으로 만든 부처님이
마룻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팔은 팔대로 다리는 다리대로
목은 목대로 발가락은 발가락대로
산산조각이 나
얼른 허리를 굽히고
서랍 속에 넣어두었던
순간접착제를 꺼내 붙였다
그때 늘 부서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불쌍한 내 머리를
다정히 쓰다듬어 주시면서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가 있지
나는 생각했다. 산산조각 난 유리컵이 형광등 빛에 비춰 반짝였던 모습이 아름다웠다고. 컵으로써의 가치는 잃었지만, 어쩌면 그냥 그것대로 괜찮을지도 모르겠다고.
알라는 그날 밤, 나를 침대 끝에 빈틈없이 밀어 넣고 잠이 들었다. 그 애가 나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침대에 너울너울했다. 나는 안다. 혹여나 내가 바보 같은 짓을 할까 그 좁은 침대에 나란히 누웠던 겁먹은 마음을. 깨진 마음이 생을 할퀼까 시를 읽어주었던 마음을.
그날 밤 내가 마주한 천장은 여전히 까맸지만 더 이상 슬프진 않았다. 지금도 종종 우울감에 젖어들 때면 그때의 까끌까끌했던 밤을 떠올린다. 그리고 곁에 없으나 언제고 함께인 알라를 기억한다. 그 애가 지켜준 조각들로 나는 이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