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레네 Mar 19. 2022

4분 37초, 사랑에 빠진 시간  

싸이월드가 부활한다지? 


*표지 배경: 애니메이션 <귀를 기울이면>





싸이월드가 한창 인기를 끌던 시절이었다. 나는 아바타나 스킨 등으로 미니 홈페이지를 꾸미는 대신, 배경음악에 공을 들였다. 자미로콰이, 유카리디스코, 타히티80 등- 그 당시 내가 즐겨 들었던 음악은 대중적인 것과는 조금 거리가 먼 음악들이었다. 부러 노린 것이었다. 남들과는 조금 다르고 싶었고, 이 노래들이 그런 나의 유니크함을 보여준다고 생각했으니까.














어느 날 동네 봉사 모임에서 A를 만났다. 멀끔한 외형에 봉사에 대한 의지가 선해 호감이 생겼다. 몇 마디 대화를 나누다 연락처도 주고받았다. 그가 처음 보낸 문자는 '잘 들어갔어?'였다. 이게 호감인지 단순한 인사 문자인지, 괜히 나 혼자 김칫국 마시는 건 아닌지, 머리가 복잡했다. 나는 그때까지 남자 친구를 사귀어 본 적이 없었고, 누군가를 이성적으로 좋아한단 느낌조차 생경했다.



그러나 A에 대한 감정은 생경함과 낯섦에서 점차 호기심과 궁금함으로 바뀌어갔다. 나는 봉사 모임 주최자의 미니홈피부터 몇 번이나 파도를 타 금세 A의 미니홈피를 찾아냈다. 기본 배경화면에 게시물이랄 것도 별로 없는, 그야말로 손이 안 간 홈피였다.



'여자 친구는... 없는 거 같네'


일촌평과 방명록을 훑기를 십 분 째- 묘한 안도감으로 미소가 번지려던 찰나 익숙한 노래가 흘러나왔다. 브라운아이즈의 <사랑>이란 노래였는데,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앨범 수록곡이자 나의 미니홈피 배경음악이기도 했다.




I wanna fall in love

I wanna fall in love

I wanna fall in love

wanna fall in love with you

사랑에 빠져봐요 그대 얼마나 기다리죠 don't you worry

망설이지 말아요 그대 위해



… 웃기지만, 노래 제목처럼 나는 사랑에 빠졌다. 단순한 호기심이 마음 떨리게 하는 사랑으로 바뀌는 데엔 4분 37초가 걸렸다. 단지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함께 좋아하고 있었다는- 어찌 보면 황당할 수 있는 이유였지만, 그보다 더 운명적일 수 없는 이유이기도 했다.



*출처: Pixabay 



사랑은 왜 거친 동사가 따라붙는 걸까 생각했던 적이 있다. '빠지고', '떨어지고(fall)', '뭉개고(crush)' …. 그만큼 마음이 제 의지와는 상관없이 속수무책으로 휘둘린다는 뜻인가? 


정답 대신 나는 그날을 떠올린다. <사랑>이란 노래를 들으며 그 애의 미니홈피를 멍하니 바라보았던 그날, 그 순간.


빠지고, 떨어지고, 그리하여 한참이나 뭉개졌던 내 첫사랑을. 

작가의 이전글 카레 예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