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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은주 Dec 10. 2021

성은 '미'요 이름은 '친년'이

드라마 또오해영 엄마의 독백

드라마 또 오해영은 이름은 같은 두 여자의 다른 이야기를 그린 이야기다. 한 명의 오해영은 사랑이 배고픈 사람이고 또 다른 오해영은 사랑을 많이 받은 사람이다.


사랑을 많이 받은 오해영, 그녀의 엄마는 자신의 딸을 친년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성은 미다. ㅁㅊㄴ


집에 들어오자마자 우엉을 찾는 딸 오해영을 위해 엄마는 하던 설거지를 멈추고 우엉을 사러 간다. 지갑을 들고 터덜터덜 슈퍼를 향하며 그녀는 자신의 딸을 소개한다.


나를 닮아서 미웠고, 나를 닮아서 애틋했다.


처음 이 영상을 볼 때는 재미있었다. 엄마보다는 철없는 딸의 모습이 나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웃고 넘겨버린 영상이었다.


지금은 오해영의 엄마가 말한 독백이 나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그녀의 말처럼 나도 내 딸이 나를 닮아서 미웠고, 나를 닮아서 애틋하기 때문이다.


꽤 눈치가 없고 사리분별이 둔했던 나는, 어느 자리에 둬도 잘 있었지만 거기까지 였다. 


잘하지도 않는데 눈치가 없어서 할 일을 제대로 못할 때가 있었다. 돌아오는 평은 좋지 않았고 나중에 알았을 때는 이미 늦은 후였다. 그래서 단체생활이 어려웠다.


눈치 없는 내 모습이 너무 싫었다. 그런데 내 딸에게서 나와 똑같은 모습이 보였다. 걱정보다는 미움이 먼저 다가왔다. 이런 건 아빠를 닮지 왜 나를 닮았을까. 유전자를 이 따위로 섞은 하늘도 원망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애틋했다. 같은 모습으로 살아갈 때 겪을 아픔과 고생을 나는 알기 때문이다. 나와 비슷하거나 다르더라도 힘들겠지. 그러니 내 딸이 안쓰러웠다. 왜 하필 나를 닮아서...


또오해영의 엄마가 말하는 딸의 모습은 과거의 자신이다. 그리고 엄마가 된 지금은 알고 있다. 딸이 하는 행동이 나중에는 독이 되어 자신을 아프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예상되는 자식의 아픔을 있는 그대로 봐야 한다는 것은 엄마에게 큰 고통이다. 할 수 있다면 피하게 해주고 싶고 그도 안된다면 덜 아프게 해주고 싶은 것이 엄마 마음이다.


그런데 이렇게 할 수가 없다. 내 딸이 겪어야 할 아픔은 그 아이의 몫이요. 나는 엄마로서 감당해야 할 역할의 몫이기 때문이다.


또오해영의 엄마는 딸이 미래를 염려한다. 그만두게 해야 하는지, 응원을 해야 하는지 고민할 때 엄마는 응원을 선택한다. 친년이지만 너무 사랑하는 딸이기에 딸의 몫을 인정하기로 한다. 그리고 자신의 몫을 버티려고 노력한다.


나도 내 딸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로 했다. 아직 어린아이지만 기어이 자기 고집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그 아이가 가진 무게가 있겠지. 나 역시 주저앉히기보다는 응원을 하려고 한다. 


내 아픔은 내가 감당하면 그만,


그래서 절망이라는 절벽에 굴러 떨어져도 다시 올라와서 버티려는 강함을 키우려고 한다. 이것이 내 딸에게 보여줄 수 있는 엄마의 책임 이리라.


내 마음의 불안과 걱정은 내가 갖고 아이에게는 사랑과 지지와 지원을 따스하게 보내려고 한다. 엄마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것뿐이다.


애 키우기 참 어렵다. 이 말은 부모가 되어 아이의 행복을 바라보는 것, 그리고 아이의 고통을 동시에 바라봐야 하는 부모의 마음을 녹여낸 말 같다.


나는 오늘도 되뇐다. 버티자. 버티자. 버티자. 그리고 아이에게는 웃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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