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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지 Nov 03. 2023

미지의 인터뷰_작가 이희타(1/3)

작가명 "이희타"  그리고 소원여행과 사진

 책방을 하는 동안 문학작가와 함께하는 프로그램을 꾸리는 사업에 참여하게 되었어요. 희타님은 협업하는 서점을 통해 소개받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책방 미지의 세계에서 함께 여름을 보내게 되었어요.


 첫시간에 우리는 희타님의 진행에 따라 명상을 통해 여름의 장면을 떠올리고, 글로 써보는 시간을 가졌어요. 우리 안에는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있고, 그것을 바탕으로 글을 써볼거라고 했던 그 말이 기억에 남아요. 


희타님의 안에 있는 무궁무진한 세계와 고유한 분위기에 매료되었고 더 알고 싶어 인터뷰를 요청했습니다. 창작과 표현, 자기다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제 안에 있는 그러한 씨앗들도 자극을 받아, 밖으로 꺼내어보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던 마법같은 시간이었습니다. 






 




미지   다른 인터뷰도 읽어보셨어요? 어땠어요?        


                 

희타   음, 솔직하고 투명해서 좋다고 생각했어요. 너무 힘을 주지 않은 느낌이 좋았어요.



미지   제일 재밌게 읽었던 거 있어요?



희타   우울증에 대해 이야기하셨던 거요. 스스로도 뭔가 알긴 아는데, 설명을 열심히 하는데 정리가 되지는 않지만 아는 것. 그걸 읽는 사람으로서도 알겠다는 게 너무 신기했어요. 그리고 재미있었던 부분은 그거였어요. 미지 님이 그 머리로는 아는데...      


                              

미지   (웃음)                         


          

희타   그런 식으로 얘기하니까 인터뷰하시는 분이 “모두가 알죠,” 라고 말하는 부분이 재미있었어요. (웃음)



미지   맞아요.        

       

제가 인터뷰라는 거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거는 이슬아 작가님의 인터뷰집 『깨끗한 존경』을 읽으면서부터였던 것 같아요. '인터뷰가 이렇게 재밌을 수 있구나', 하는 걸 그 책에서 처음 경험했고 어쩌다 보니  기획단체 0에서 엄마 인터뷰도 하게 됐는데 그것도 되게 재밌었거든요.     


어머니를 먼저 했었고 이번에 아버지들을 했는데, 그런 인터뷰는 아무래도 좀 더 각이 잡혀 있으니까 거기서 아쉬웠던 거를 이 개인적으로 하는 인터뷰에서 푸는 것 같아요. 그거는 다 미리 사전 질문 준비해서 전달드리고 이렇게 딱딱 끊기는 느낌이어서, 이렇게 좀 그냥 대화하면서 하는 인터뷰를 해보고 싶었어요.       


평소에도 저는 레퍼런스 찾아보는 거를 되게 많이 하고 좋아하는 편이어서 인터뷰도 많이 찾아보는데 인터뷰에서도 되게 영감을 많이 얻거든요. 이런 사람은 이렇게 생각하는구나, 하면서. 그래서 제가 배우려고 하는 것도 있어요. 그리고 또 해보면 또 하시는 분들이 다 내 얘기하면 재밌어요. 막 이렇게 말씀해 주시더라고요.



희타   저도 그럴 것 같아요. (웃음) 처음 제안 받았을 때는 도대체 왜 나를 인터뷰하고 싶으신 걸까? 난 어떻게 해야 될까? 싶어서 다른 인터뷰를 보니까 아무 생각 없이 편하게 가야지 미지 님이 원하는 모양이 나오겠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미지   맞아요 맞아요.    

                 

그러면 요즘에 제일 전형적인 하루 일과는 어떻게 되시나요?



희타   요즘에는 일어나자마자 수영을 가요. 제가 평소엔 아침에 절대 안 일어났는데, 최근에 백수가 되고 나서는 뭔가 일도 안 하는데 늦게 일어나려니까 내키지가 않더라고요. 원래 저희 가족이 저 빼고 다 수영을 다녔거든요. 그래서 자꾸 저를 꼬셨는데 제가 하기 싫다 하기 싫다 하다가 이번에 “그래 나도 해보겠다!” 해서 아침에 일어날 핑계로 수영을 다니고 있어요.



미지   몇 시쯤에 가시나요?        


                           

희타   9시 반에 일어나서 자전거 타고 수영장 가서 씻고 수영하고, 다시 씻고 11시반쯤 나와서 아빠가 차려주는 집밥 먹고. 그리고 낮잠을 자고 싶은 그 욕구와 싸우다가 (웃음) 자거나, 아니면 안 자고 잠깐 누워서 쉬고?... 또 뭐 하지?



미지   (웃음) 생각보다 이렇게 질문받으면 내 일과가 뭐였지? 이렇게 생각해 보게 되는 것 같아요.



희타   그러게요. 저는 그날그날 다른 것 같아요. 최근에는 작업을 해야 했어서 수영하고, 작업하고, 운동하고 그러고 저녁에 또 작업하고 그랬던 것 같아요. 


소소한 루틴은 항상 있어요. 수영 갔다가 집 들러서 텀블러 가지고 카페에서 커피 사 오고 돌아와서는 엄마아빠랑 밥을 같이 먹고 나면 아침 일과가 끝나요. 그러고 나서 오후에는 그때그때 하고 싶은 걸 해요. 뭘 사거나 보러 어딜 갈 때도 있고 약간 즉흥적으로 이것저것 사부작거리다가 운동하러 가서 운동을 하고..



미지   오후에도 운동을 해요?



희타   네. 운동을 하고 저녁 시간에는 작업을 하거나 뭘 보거나 게임을 하거나 해요.



미지   게임도 해요? 어떤 거 해요?



희타   애인이랑 같이 보드 게임도 하고 협동 게임도 해요. 아무래도 멀리 사니까, 같이 할 수 있는 게임을 자주 해요. 아니면 통화하거나. 그렇게 놀다가 자요.      



미지   그렇구나.           

          

그러면... 필명? 작가명?으로 ‘이희타’라고 이렇게 쓰시잖아요. 그거의 의미는 뭔가요?                 



희타   의미는 없어요. 



미지   없... (웃음) 그럼 왜 쓰게 됐나요?                  



희타   아니지, 아니지. 뜻은 없는데 의미는 있어요.



미지   뜻.. 의미...??



희타   서울에 이리카페라는 데가 있어요.



미지   아 원래 서울에 계셨나요?



희타  아뇨, 부산에 살다가 열아홉 살 때 서울에 사는 언니를 알게 됐는데 제가 스무 살이 되면 서울에 한 달 여행을 갈 거라고 했거든요. 그때 언니가 갈 만한 카페들을 종이에다 적어줬어요. 그때가 10년 전, 홍대 근처에 멋진 카페들을 언니가 많이 알려줬는데 그중에 한 군데가 이리카페였고 거기를 제일 먼저 가게 됐죠. 실제로 가서는 완전히 빠졌어요. 사랑에 빠진 거예요. 그 카페가 너무 좋아서 서울 갈 때마다 갔어요. 또 거기 파는 가정식 포도주가 "인민혈주"라고 있었는데.         


                        

미지   인민혈주..?                         


     

희타   인민혈주라고 가정식 포도주가 있었어요. 알코올이 살짝 있고 정말 맛있어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막 그리운 맛이 나고 그랬어요. 그걸 먹으려고 자주 갔죠. 그러다가 제가 경기도에 있는 대학을 가게 됐고 그 카페를 언제든 갈 수 있게 된 거예요. 그래서 글이 잘 안 풀릴 때마다 그 카페에 가서 혼자서 글을 쓰고 기분 좋게 나오고.     


그러다 어느 날 한 친구가 카페 이름을 물어보길래 이리카페라고 쳤는데 “이히타페”로 오타가 난 거예요.                    


미지   오~        


                      

희타   근데 어? 괜찮은데? 해서 "페"만 빼고 "이히타"로, 이히타에서 “이희타”로 블로그 이름을 바꿨어요. 그때부터 비공개로 쓰던 이름이었는데 이번에 책을 내면서 그 이름을 쓰기로 했어요. 계속 쓰던 이름이기도 하고 오히려 뜻이 없어서 질리지 않고 오래 쓰겠더라고요. 그리고 이 이름을 들은 사람들을 하나같이 다 잘 어울린다고 해서 더 마음이 갔어요.



미지   오히려 그럴 수도 있겠네요. 제 친구도 약간 그렇게 어릴 때부터 그냥 별 뜻 없이 썼던 걸 계속 쓰더라고요. 근데 “희타”라는 단어 자체가 흔하지 않은 것 같아요. 어감도 뭔가 독특해서 유니크한 것 같아요.



희타   저도 아직 정을 붙이고 있어요. 새 이름이랑 좀 친해지는 단계예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웃음) 이름이랑 낯을 가리는 중이에요.



미지   (웃음) 그렇군요. 


이제 오늘 전시를 봤으니까 그 작품에 대해서, 저는 아티스트 토크 못 가니까 여기서 들을래요. (웃음) QR코드로 연결된 유튜브로 작품설명을 봤는데 작가님 작품만 유일하게  뭔가 소리가 있어서 그건 어떤 소리인지도 좀 궁금했고, 어떤 사진들일까? 그런 걸 여쭤보고 싶었어요.




희타   제가 여행을 상당히 좋아하는데 코로나 때문에 여행을 못 가게 돼서 3년의 공백이 생겼어요. 이건 여행 가서 찍은 사진인데 그 여행을 다짐했던 시점이, 제가 책을 내고 하고 싶은 걸 다 해낸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이제 뭐하지? 내가 뭘 좋아했더라?' 하니까 생각나는 게 여행밖에 없는 거예요. 그러다가 문득 코로나 기간 동안 '여행하지 않아도 괜찮네'라고 생각했던 게 기억나서 '나는 여행을 여전히 좋아하나? 내가 여행을 좋아하는 마음이 아직까지 유효한가?'라는 질문이 생겼어요.       

         

그러다가 또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저한테 소원이 있었거든요. 눈을 엄청 좋아해서 눈이 있는 마을에 가서, 아무도 없는 허허벌판에 눈만 쌓여 있는데 외딴집이 있고 거기서 고립되고 싶은.



미지   되게 디테일하네요.



희타   그게 되게 오랫동안 상상했던 로망이에요. 눈이 키만큼 쌓여서 어쩔 수 없이 못 나가고 바깥엔 눈 밖에 없는데 그 중앙에 내가 혼자서 나와의 시간을 보내는 그런 게 오랜 소원이었으니, 그 소원을 풀러 가자. 그래서 이 여행 이름이 소원 여행이었어요. 저 혼자 붙인 이름이.(웃음)                


그래서 오타루에 다시 갔죠. 7년 전에 엄마랑 여행했던 곳들, 그동안 그리워했던 곳들을 혼자서 다 돌아다니면서 여행을 시작했어요. 그리고 그때 당시에 사진에 대한 생각이 좀 많이 들어서 정말 정말 찍고 싶을 때만 찍자라고 마음을 먹고 갔었거든요. 그래서 사진들이 그렇게 많지가 않아요. 근데 정말 찍고 싶을 때만 찍었어서 한 장 한 장 다 이야기가 있는 거예요. 저만 아는 이야기. (웃음) 아무한테도 알려주지 않은, 물어보면 얘기는 해 줄 수 있지만 어쨌든 그래서 전시장에 걸린 사진들은 그런 사진들이고요.      


소리는 그때 담았던 소리들이에요. 잘 들어보면 제일 먼저 나는 소리가 서랍 여는 소리인데 뒤이어서 오르골 소리가 나요. 그게 여행의 막바지에, 삿포로의 어떤 가정집 숙소에 있었던 오르골인데 체크아웃하던 날 아침에 보조테이블에 있던 작은 서랍을 열었는데 소리가 나는 거예요. 그 음악이 나오는데 순간 입이 떡 벌어지고 들으면 들을수록 되게 좋더라고요. 여행의 끝에서 들었는지라 괜히 엔딩 크레딧이 나오는 것 같고. (웃음) 그래서 거기에다 눈 밟는 소리랑 제 숨소리도 얹었어요. 제가 여행 내내 눈밭을 걷는데 너무너무 행복했거든요. 정말 아무것도 없고, 아무도 없고 나만 있어. 도로 위를 걸을 때도 있었고 스키장 언덕을 걸을 때도 있었고. 그때 담은 소리들로 사운드를 만들었죠.



미지   원래 그렇게 소리를 녹음하시는 편인가요?



희타   동영상에 있는 오디오를 뽑았어요. 동영상을 자주 찍는 것 같아요. 여행 가면.



미지   찍어서 소장만 하시나요? 어디 올리진 않고? 저는 브이로그를 하는 사람이라. (웃음)



희타   네. 저는 소장만 하는 사람이라 (웃음)



미지   궁금하네요.



희타   그래서 원래는 cd를 만들려고 했어요. 동영상에서 뽑은 오디오 소스가 되게 많아서 그것들을 연결해서 만들려고 했었는데 이번에는 여건이 안 돼서 cd는 못 만들고, 음성 해설로 이렇게 조금 몇 개만 가져다가 만들었어요. 만약에 제가 cd를 만들게 된다면 이제 확장판이..



미지   좋을 것 같아요.



희타   저는 분명히 좋을 거라 확신합니다. 훨씬 더 많은 소리들이 담겨 있기 때문에.



미지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까 생각나는 게, 혹시 사운드 스케이프라고 아세요?



희타   아뇨. 그게 뭐예요?



미지   풍경이 랜드 스케이프잖아요. 사운드 스케이프는 이제 소리 풍경이라고 제가 좋아하는 분야거든요. 음악... 나름 공부를 했으니까 좋아하는 파튼데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그 풍경이 상상이 되고 오히려 한 시선만을 담은 사진보다 소리가 더 많은 걸 말해준다는 그런... 넓은 음악의 개념이기도 해요. 사운드 스케이프 cd도 나오고 하거든요. 찾아보시면 좋아하실 것 같아요.



희타   제가 이번 전시에 하고 싶었던 게 그런 거예요. 말하지 않는 방법. 제가 글을 계속 써봤잖아요. 근데 뭔가 말도 그렇고 글도 그렇고 어쨌든 정제된 어떤 구체적인 언어잖아요. 그걸로 제 경험들을 이렇게 탁탁탁 다져서 내보내는 것 같았어요. 근데 그걸 안 하고 싶었어요.    

           

뭔가 말하는 방법은 다양한데 사진은 말이 없잖아요. 근데 제가 생각하기에는 들리는 게 많아요. 그래서 너무 자유롭더라고요. 뭔가 내가 정확하게 말하지 않아도 듣는 사람이 자유롭게 들을 수 있으니까 그게 되게 매력적이라고 생각했어요. 소리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그런 게 이번 작품에 잘 구현이 된 것 같습니다.     



미지   맞아요. 저는 사운드 스케이프를 좋아하는 게 우리는 시각 정보에 되게 익숙해져 있단 말이에요. 눈으로 항상 뭔가를 보고 있는데, 그것만큼 귀도 항상 열려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인지를 못할 때가 많아요. 음악은 귀로 하는 예술이니까 그 청각을 좀 더 예민하게 발전시키고 조금 더 우리 주변의 소리를 잘 듣자, 하는 게 사운드 스케이프의 목표이기도 해요.


 대학생 때 사운드스케이프 수업에서 과제를 했었거든요. 제가 했던 게 그때 학교 앞에 맨날 묶여 있는 강아지가 있었어요. 그 친구가 어떤 애였냐면 저희 학교가 되게 시골이거든요. 그래서 시골에 아저씨가 묶어놨다가 어디 파는 거죠. 그래서 맨날 강아지가 바뀌어요. 그러다가 이 친구는 이제 학생들이 살려보고자 저희가 돌보겠다 해서 학생들 몇 명이 돌아가면서 밥 주고 물 주고 가끔 산책시켜 주고 이렇게 한 친구거든요.   

        

 그래서 저도 그 친구를 가끔 산책시키고 했는데 과제를 하면서 그 친구의 소리를 녹음했어요. 그 친구가 가만히 있을 때, 아무래도 거의 묶여 있다 보니까 되게 불안해 보일 때도 있고 그러면 애가 낑낑대거나 막 파는 소리나 그런 소리가 들려요. 이럴 때 소리랑 비교해서, 산책을 시킬 때 애가 내는 소리를 들어보면 소리만 들어도 뭔가 행복해 보이거든요. 이런 게 느껴지도록 그런 작업을 했었는데 재밌었어요.



희타   그러게요 좀 관심이 생기네요. 저는 귀가 엄청 예민하거든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관심이 가는 것 같아요.                


 제가 예전에 영화의 전당에서 다큐멘터리 수업을 들었었어요. 그래서 다큐멘터리를 만들었었는데 제가 처음에 진짜 뭘 얘기하고 싶은지에 대해 준비를 진짜 엄청 많이, 10장인가를 준비해서 갔어요. (웃음)



미지   텍스트로 10장을?



희타   네. 자료로. 할 말이 너무 많았던 거예요. 근데 감독님이 저보고 하는 말이 "희타 씨는 제가 봤을 때 이런 거 안 맞다." 자꾸 제가 논리적이려고 엄청 애쓴대요. 객관적이고 논리적이려고 엄청 노력하는데 제가 본 희타 씨는 그런 스타일 아니라고. 감각적으로 풀어내야 하는 사람이라고. 처음에는 납득이 안 갔었어요. 근데 결국 정말 말 없는 작품을 만들었거든요. 그러고 나니까 마음이 너무 편한 거예요

.                

반면에 글은 그래요. 글은 내보내고 나면 마음이 되게 불편해요. 근데 사진이나 그런 말 없는 것들은, 이번 전시도 그렇고 내보내고 나니까 마음이 너무 편한 거예요. 그래서 저도 여러 가지 경험을 하면서 점점 나한테 맞는 표현 방법을 자꾸 실험해 보는 것 같아요.               


단이랑도 같이 작업을 예전부터 했던 게 감각과 관련된 거였어요. 감각이 되게 예민하다 보니까 그 감각이 긍정적으로 자극이 될 때 느끼는 기분과 고양감이 일상에 너무너무 도움이 되고 삶도 되게 윤택해지더라고요. 그래서 "그럼 우리 다른 사람들한테도 이걸 느껴볼 수 있게, 감각에 긍정적인 자극을 주자,"고 얘기를 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까 그게 여태 해온 것들과 다 연결이 되는 것 같아요. 제가 만든 책도 그렇고, 저는 처음엔 되게 되게 되게 이성적이고 객관적이려고 노력을 하거든요. 그런데 결국에 만들어내는 것들은 정말 두루뭉술하면서 이성보다는 감정, 감각이 많이 두드러지는 그런 것들이에요. 이번 작품도 그렇고 다큐멘터리도 그랬고. 그러고 보니 그러네요. 덕분에 돌아보게 되네요.



미지   앞으로의 작업도 기대가 되는 구만요.      

    

 얘기를 하다 보니까 준비했던 질문에도 그런 게 있었어요. 제가 자료 수집을 위해 인스타를 열심히 봤거든요. 되게 뭔가가 많더라고요. 제가 만난 건 글을 쓰는 작가 이희타였는데, 글도 많았지만 사진으로도 되게 활동을 많이 하셨고 무용도 하셨고, 영상도 만들어 보셨고 노래도 있고 그림도 있었어요. 진짜 모든 게 다 있었어요. 그런 것 중에서 가장 선호하는 표현 매체는 뭔지? 아니면 또 가장 많이 하시는 방식은 글과 사진인 것 같은데 그 두 가지가 나한테 어떤 방식으로 의미를 갖는지 궁금해요.



희타   솔직히 선호하는 매체는 없어요.        

       

그러니까 뭐라고 해야 할까? 아직 딱 이거다 하는 건 없는 것 같아요. 근데 그런 직감은 들어요. 내가 원하는 거, 나한테 맞는 거는 소리, 영상, 그림, 글... 이렇게 딱딱딱 나눠지는 게 아니라 이 모든 게 혼합된 뭔가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아니면 이것과 이것 사이가 되거나 시기별로 나뉘거나 하는 식으로 좀 유동적일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으로서 편한 매체는 사진이 맞아요. 그렇다고 해서 마음이 엄청 편하다기보다는 몸이 편하다. 



미지   지금은 사진인 것 같다?



희타    아무래도 어떤 마음이 잘 담기는 것 같아요. 담고 싶은 마음? 필름이 특히 그렇고. 사진이라는 게 긍정적인 동기에서 시작되는 거잖아요. '뭔가를 찍고 싶다!' '이걸 담고 싶다! 이걸 소유할 만큼 마음에 든다.' 하는 그 마음.     


이게 한끗 차이로 되게 어긋난 욕망이 될 수도 있지만. (웃음) 그런 걸 배제한 상태에서 보면 되게 순수하고 긍정적인 감정에서 촉발이 된다는 게 일단 기분이 좋고 마음이 편해요. 그리고 예쁘게 나오면 시각적으로 즐겁고. 그래서 요즘 사진이 좀 끌려요.



미지   '찍고 싶다'는 그럼 그런 감정이잖아요. 그럼 '쓰고 싶다'는 언제 그런 마음이 들어요?



희타   문장이 떠오를 때? 어떤 시간이나 장면을 계속해서 생각하다가 한 문장이 떠오르면 그때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그렇지 않으면 그냥 조용히 그리워해요.     

      

이번에 전시한 작품도 가장 큰 키워드가 그리움이었어요. 전 그리움이라는 감정을 되게 긍정하거든요. 좋다고 생각해요. 동기가 되어 준다고 생각하고, 나한테 그리울 만한 일이 있다는 게 참 좋다고 느껴지거든요. 글을 쓸 때도 어떤 그리움에서 구체적인 한 문장이 시작되면 그때 쓰기 시작해요.



미지   그렇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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