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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미스럽게 Nov 17. 2021

나의 겨울

추억팔이 엄마



중학교 입학을 앞둔 아들은 이제 쿨하게 말한다.

"다 버려도 돼."

정말 다 버리라고 한다.

나의 마음은 다른데 아들도 이제 컸나보다.

정리해야 되는 건 머리로는 알겠는데, 자꾸 코끝이 아리다.  

필히 버려야 하는 이번 겨울이 기어이 오고야 말았다.



마음 들여 애정 하는 물건들이 적지 않고,

좀 게으른 데다가 잘 버리지 못하는 성격이라

더 어려운 숙제처럼 느껴진다.

내 아이의 물건들 정리하는 일.


오뚝이는 버리지 못할 것 같다.

내 삶이 그러했듯,

앞으로 내 아들에게도

일곱 번 넘어져도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 나아가는 세상이길.

그 핑계 삼아 아기 때 보았던 오뚝이 친구

요고 하나 남겨주는 것도 괜찮겠다.






트롬곰, 널 버릴 수 있을까? 어쩌면 좋으니! 아이 세 살 적, 곰인형에 폭 안겨서 잘 놀았다. 

소파도 되었다가 베개도 되었다가, 발 디딤판도 되었다가, 따뜻한 품내어주기도 했던 녀석.

아들의 놀이방 터줏대감,


세탁소에 맡기지 않고 손수 세탁해보겠다며 낑낑대며 단판씨름을 했던 기억이 아른거린다.

물먹은 인형, 하얗고 커다랗기까지 한 게 어찌나 무거웠던지. 지금은 먼지 다 머금고 꽃거지, 상거지가 다 되었어도 자세히 보면 잘생겼다. 동그랗고 작은 까만 눈이 귀엽다. 묵묵하게 곁에 머물러 그래서 더 애틋한 곰돌이.

버리는 건 보류.



스밀라 블롬마 꽃등.

찾을 땐 단품이었던 터라,

핀란드에 살던 지인분께  구매대행을 부탁할까 고민했던 벽등이었다. 몇 년 후, 재입고를 확인하고

냉큼 질렀던 아이방 조명등. 그렇게 아들방에 주저 없이 꽃등을 벽에 달아 주었다. 그것도 핑크 꽃으로 개나. 버리지 못한다면 공간 어디에라도 고정해두어야겠다.




아들의 유아 시절,

아이 옷 만들기를 한참 배우며 다녔다.

실을 거는 북집 사용법은 할 적마다 그리 익숙하지  않았지만, 미싱을 붙잡고 사부작 거리며  바지티셔츠, 점퍼, 잠옷 등 내 아이옷을 여러 가지 만들었다.  

무조건 소장각. 오버록까지 들여놓고서

재봉틀에 코 박고 '드르륵' 한 번이면

언가 하나씩 새롭게 만들어지는 매직!



여러 생활 소품을 만드는 재미도 쏠쏠했다.

커튼도 만들고 ,  커피 보관 주머니, 휴롬 덮개, 휴지케이스, 아이 턱받이에 아이 가방, 아이방 천장에 달아둘 어닝 수선까지  참 부지런히, 많이도 만들었다.  재봉틀로 만든 소품들은 상자 안에 꾸깃꾸깃 모여 산다. 쓰지 않고 살다 보니 사실 잊고 산지 오래지만 쉽게 버릴 수 없는, 노력이 깃든  물건들이다.




아이 사진은 모든 것이 다 소중하지만

그중 선택해본 사진 한 장 소환.

옆지기 남편의 효과로

민들레 홀씨 수차례 불어대기 찬스.

덕분에 바람 타고 나는 민들레 홀씨 속에서

우리 아이가 돋보이는 연출은 성공한 편이었다.

'이럴 때가 있었지, '

새삼 기억을 떠올리며 사진 한 장으로

미소 지어보는 난 변함없는 도치 엄마다.


찾아오는 이들에게 키즈카페 같단 얘기를 듣기도 했다.

누가 보면 어린 자녀를 키우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아들의 장난감들이 생각보다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토미카, 핫휠, 디즈니 맥퀸 시리즈, 미니카 타워들까지. 이웃에게, 중고카페에, 사촌에게 물려주며 나눴다지만 여전히 장난감많다.


큰 일이다. 버릴 수 있을까? 그 많은 물건을 치우는 것도 큰 일이지만, 내 안의 추억이란 감정선과 한판씨름을 해야 할 듯싶다. 자동차를 두 번 보내던 나의 첫 번째 반응은 엉엉 스럽게 울기, 두 번째 자동차와 이별할 때는 찔끔 눈물 짜기. 강도는 약해졌다고 하지만, 코흘리개 내 아이 추억의 물건들 떠나보냄은 또 다르지 않을까? 하나하나 아이의 코 묻고 손때 묻은 물건들. 미련없이 정리할 수 있을까? 깔끔하고 부지런한 미니멀 라이프의 삶을 사는 이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을 껌딱지 같은 내 기억 보관소. 그렇게 맞이하게 될 나의 겨울. 아이의 어릴 적 물건들을 정리하고 졸업과 입학을 지나 아들의 또 다른 시작을 응원해주어야 한다.


이제 남편은 50줄에 접어들었고, 나도 50을 바라본다. 달마다 찾아오는 나의 혈의 문은 아직 닫히지 않았지만 갱년기를 준비해야 하는 시간들도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세월은 무심하게도 앞을 향해 흘러만 간다.

아들은 변성기가 곧 찾아올 것이고, 엄마보다 친구를 더 찾겠지.  사춘기라는 마법이 순하게, 혹은 거칠게, 대책 없이 몰아칠 수도 있겠다. 엄마, 아빠는 오십 대를 맞이하며 너와 우리의 시간, 사이좋게 잘 지냈으면 한다. 좀 더 단단해져 볼까? 추억팔이 엄마는 마음 무장 준비 시동 걸기 중!





이 모든  글쓰기는 먼저 내 아이를 우선한 추억의 물건들이었어요. 눈에 보이고 찾기 쉬운 것들로 구성해보았습니다. 지난 날들을 추억하니 새삼스럽기도 하고,  만들고 꾸미기는 본능적으로 좋아했던 모양입니다. 아들의 어릴 적 사진을 두루 찾아보며 감사했습니다. 사랑스럽게 잘 크는 제 아들은 뽀뽀와 궁둥이 팡팡을 불러일으키는 애교쟁이랍니다. 게임은 줄였으면 싶고, 공부는 더 집중해주면 합니다. 가족 채팅방에서 일하는 남편과 아이 사진도 공유하며 잠깐이지만 행복했습니다.


©Couleur by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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