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어쩌라고?
2021년 설날에 전국을 떠들썩하게 한 소셜미디어(SNS)가 있었다. 음성으로 소통하는 ‘클럽하우스’(이하 클하). 클하는 코로나19로 덕분에 많은 사람의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부담 없이 음성으로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전에서 전 세계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나 또한 클하를 통해 사람들과 다채로운 대화를 즐길 수 있었다. 기자라는 직업을 살려 부동산 방송의 고정 출연자가 됐었고, 독립서점을 운영하는 작가님과 인연을 맺으면서 소중한 모임에도 들어갔었다. 또 100여 명이 가입한 대규모 모임에도 가입해 여러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물론 내 지분은 0%에 불과했었다.
100여 명이 모인 모임은 나이를 공개하지 않고 서로 반말로 소통하는 곳이었다. 그러다 보니 세대 차이를 극복하고 편안한 대화를 이을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 말하기 무거운 주제도 여기서는 편안하게 말할 수 있었다.
하루는 그 모임의 한 사람이 따로 방을 개설한 것이다. 제목은 없었지만, 족히 20명이 모인 방이었다. 또 누군가 심심했구나 싶었지만, 들어가는 순간 평소와 분위기가 달랐다. 방장의 목소리는 높았고 발음은 어눌했다. 이어폰 사이로 술 냄새가 났었다. 혼자 마시는 술 방이었다.
방장은 취해있었다. 무슨 대화가 이어지는 알 수 없었다. 족히 20분 사이에 5가지의 대화 주제가 오갔었다. 육체는 방구석에 있었지만, 정신은 시내 유흥가 한복판에 떨어진 느낌이었다.
평소와 같이 대화를 이어가다가 시사 이슈에 관한 이야기가 시작됐다. 맨정신이었으면 지향할 주제였지만 술은 그런 것까지 관대하게 만든다. 다만 개인적으로 입을 열기 싫은 주제였다. 매일같이 시사 이슈 중심에 서 있는 내가 퇴근 후에는 그 중심에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사람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너 기자잖아. 요즘 기자들 왜 그래? 기자 정신이 없어. 기레기밖에 없다고
순간 당황했다. 그래서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었을까? 나는 기레기다? 내 직업은 답이 없다?
이윽고 그는 “너 특히 조심해. 기자라는 사람이 말이야…”라고 훈수했다.
사람들은 그의 언행에 문제가 있었다고 판단했는지, 곧바로 제지했다. “왜 그래” 혹은 “그만해”라는 말이 반복됐다. 나 또한 속으로 “왜 저래”라고 생각했다. 솔직히 짜증이 났고 어이없었다.
당시 내 연차는 1년도 안 된 주니어 기자였다. 내가 그 사람에게 무슨 잘못을 했기에 이런 안 좋은 소리를 들어야 했을까? 심지어 오프라인에서 만난 적 없는 사람에게 말이다.
그렇다고 화낼 수도 없었다. 너무 많은 사람이 있었고 불과 몇 초 전까지는 분위기가 좋았기 때문이다. 이런 일에 화낼 바에 차라리 내 월급에 분노하는 게 더 이득이었다.
아… 뭐… 괜찮아… 술 마셨으면 그럴 수 있지
겉으로는 웃어넘겼지만, 속에서는 꾹꾹 눌러냈다. 술이라는 매개체로 상황을 넘길 뿐이었다. 사람이 적었다면 혹은 분위기가 그리 좋지 않았다면 나는 그 자리에서 화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손해를 보기 싫었다. 똥을 피하기로 했다. 대화방을 잠시 휴대전화를 꺼두었다. 침묵 속에서 감정을 가라앉히기로 했다.
사회적으로 손가락질 받고 있더라도, 자본에 굴복당하고 있더라도 나는 내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 세상의 중심에 서 있다는 것, 그 사이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에 자랑스러웠다.
그래서 그날 들은 모진 소리에 큰 상처받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