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감한 기자가 되고 싶었지만 나는 퇴사하기로 했다.
사실 그 회사는 내 취재에 굉장히 방어적이고 무언가 숨기는 뉘앙스였다. 관계부서에 전화해도 홍보실로 문의해달라며 칼같이 답변을 거절했고 설령 공식적인 방법으로 질의서를 보내도 홍보실은 원론적인 답변만 했다. 그렇다고 질질 끌 필요는 없다. 그쪽에서 그렇게 답변했으니 나는 그들이 말한 것 그대로 보도하면 끝이다.
입 꾹 닫은 취재원보다 오히려 진실에 입을 닫아야 하는 이 현실이 더 답답했다. 당장이라도 “X발”이라고 크게 욕하고 싶었지만 참아야 했다. 오랫동안 기자로 영면하고 싶어서다.
그런데 다음날 데스크의 태도가 180도 달라졌다.
당장 출입처 들어가서 알아봐!
아침부터 떨어진 불호령. 갑작스러운 취재 지시에 당황했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소극적이었던 데스크에 무슨 일이 있었나 싶었다. 이럴 때는 출입처 앞에서 담당 직원이 올 때까지 곤조를 부리는 방법이 있지만, 그렇게까지 몸을 갈아 넣으면서 취재하기에는 내 시간이 아까웠다. 일단 도착하고 사옥 안에서 전화하기로 했다. 그가 두 발로 직접 내려오길 기원하며...
출입처에 도착한 뒤, 직원에게 ‘안내 테스트에 있으니 나와 달라’ ‘그때 일이 궁금해서 내려왔다’라고 전화했다. 그는 이전과 다르게 내려가겠다며 내 요청에 쉽게 순응했다. 이렇게 쉽게 일이 풀릴지는 몰랐다. 사실 이날은 내 기자 인생 최대 난관이 부딪칠 줄 알았다. 굳게 다짐했지만, 생각보다 쉽게 해결되니 오늘은 운수 좋은 날인가 싶었다.
나는 크게 한 가지를 물을 계획이었다. 그날 검사과정에 하자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말이다. 사건의 원인을 파악할 수 있는 단서이기도 하다. 데스크도 이거 하나만 물어보고 관련 서류를 ‘확인’하라고 말했다. 데스크도 어디서 들은 게 있었나 보다.
하지만 고난은 예상치 못한 곳에 발생했다. 이날 나와 만난 사람은 부장과 차장이다. 두 사람은 ‘이럴 거면 홍보실에 물어봐야지, 왜 찾아왔느냐’며 되레 나에게 소리를 쳤다. 이 중 부장은 끝내 ‘에잇’하며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얼굴에는 당장이라도 화를 낼듯한 모습이었다. 주름 하나하나에 분노가 내 두 눈으로 보였다.
이때 또 다른 직원, 차장의 말이 의미심장했다. “기사 안 쓰기로 했는데, 왜 또 오셨어요?”
안 쓰기로 했다? 데스크가 소극적으로 보였고 끝내 안 쓰게 된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들에게도 이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그들에게 말할 이유도 없다. 기사를 쓰고 안 쓰고는 신문사가 결정할 뿐이지 취재원에게 말할 의무는 없으니 말이다. 그런데 오늘 처음 본 직원 입에서 나온 말 ‘안 쓰기로 했다’? 어디서부터 꼬인 건지 모르겠다.
이윽고 그는 “그때 안 쓰기로 했는데…. A 신문사 아니에요?”라며 말을 이었다. A 신문사는 우리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곳이었다. 처장은 A 신문사와 우리 회사를 착각한 것이다. 단순한 해프닝이라고 보기에 의심쩍은 것이 많았다. 과연 이 회사는 A 신문사와 무슨 거래를 했을까?
결과적으로 아무런 소득 없이 취재가 끝났다. 내가 얻은 것은 높으신 직원의 분노 썩인 주름과 A 신문사와의 밀정 의혹뿐이었다.
다음날 편집회의 때 그날 들은 이야기를 모두 말했다. 그리고 데스크는 “사실만을 쓰지 않고 과정에서 하자가 있었는지 낱낱이 써야 한다”라며 언성을 높였다. 애초 쓰지 않기로 한 것과 달랐다. 갑자기 세상을 깨우쳐야 한다는 사명감이 생긴 것도 아닌데 데스크가 저렇게 목소리를 높인 것에 의심됐다. 알고 보니 데스크가 나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들은 것이다.
보도 방향도 결정됐다. 단신 기사를 먼저 보내고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진단하는 것으로 총 2편 보도하기로 했다. 이쯤 되면 내 이야기는 세상을 뒤흔든 기사를 쓴 용감한 기자의 사연으로 보이겠지만, 현실은 시궁창이었다.
모종의 이유로 내 기사는 삭제가 됐고 나는 이 일에 지쳐 기자를 때려치우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