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눈감아야 해요?(下)

나를 엿 먹이나 싶었다

by 박타미
지금 그 기사는 내려간 상태다.

“오늘 중요한 미팅 있으니까 잠깐 사무실에 있어”


아침부터 선배의 다급한 목소리였다. 내가 선약이라도 있을까 봐 불안했던 걸까? 하지만 그날은 취재 일정이 전혀 없었다. 하루를 전부 미팅에 써도 상관없었다.


적막한 사무실에 초인종이 울렸다. 어디서 본 듯한 익숙한 얼굴. 며칠 전 나에게 “기사 안 쓰기로 했잖아요? A 신문사 아니에요?”라던 시설관리회사의 차장이었다.


사실 그 차장은 그나마 나와 대화가 통하던 사람이었다. 한바탕 언성을 높인 뒤 내가 담배를 태우고 있을 때, 그는 “이해해 달라”, “우리도 대책 세우는 중이다”라며 해명 아닌 하소연을 늘어놨다. 권위적이지 않아 보였다.


멀리 대전에서 올라온 그가 굳이 사무실까지 온 이유는 그날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자료를 안 보여주겠다던 입장을 갑자기 바꾼 이유가 뭘까?


훗날 들은 이야기로는 국장이 시설관리회사 임원에게 전화를 걸어 으름장을 놨다고 했다. 당황한 임원이 차장에게 자료를 들고 우리 회사로 가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차장은 한 뼘 정도 되는 자료를 내밀고 자초지종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해가 안 되면 다시 물었다. 오늘 하루는 이 사람의 시간을 다 쓰기로 했다. 몸은 지쳤지만 알고 싶었다.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너무나 알고 싶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취재는 오후 2시쯤 마무리됐다. 모든 걸 알았다고 할 순 없었지만, 큰 줄기는 파악했다. 물론 이 사람이 설명했다고 기사를 안 쓰는 건 아니다. 보도는 신문사의 권한이다. 어떤 외압이 있어도 원칙적으로 보도는 언론사의 몫이다.



[단독] XX역에서 열차 두 대 정면충돌할 뻔



그날 밤, 기사가 나갔다. 파급력이 대단했다.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 철도 라운지에 내 기사가 공유됐다. 사람들은 시설관리회사를 비판하기 시작했고, 조회 수는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1,000자도 안 되는 단신이 어마어마한 화력을 내뿜었다. 무섭거나 두렵지 않았다. 다만 앞으로 써야 할 후속 기사에 대한 중압감만 남았다.


다음 날, 전화벨이 울렸다. 어제 사무실에 왔던 그 차장이었다.


“아이고... 결국 기사 나왔네요... 거참.”


겉으로는 웃었지만 속은 복잡했을 것이다.


“아... 네... 뭐, 이렇게 됐네요.”


내가 자주 쓰는 핑곗거리다. 사실 맞는 말이기도 했다. 마지막 송고 버튼을 누르는 건 내가 아니라 데스크니까. 그런데 차장은 뜻밖의 말을 꺼냈다.


“이거 참 난감하네요... 거기는 안 올리기로 했는데...”


여기서 ‘거기’는 A 신문사였다. 분노가 치솟았다. 왜 자꾸 그 신문사를 들먹이나? 자존심이 상했다.


“거기는 신문사 골라서 취재 응대하세요?”


목소리가 높아졌다. 국장이 바로 옆에 있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대체 그 회사가 그 신문사와 무슨 거래를 했기에 계속 언급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리고 물 한 잔 들이켜며 숨을 고르려 애썼다. 화를 내봤자 내 감정만 소모될 뿐이었다.



후속 기사를 쓰는 과정은 고통스러웠다. 내가 들은 내용과 데스크가 들은 내용이 서로 엇갈렸기 때문이다. 매 순간이 논쟁이었다. 아무리 수직적인 조직이라도, 취재는 기자의 몫이다. 직접 보고 들은 걸 쓰는 게 기자다.


그런데 초안은 점점 내가 들은 이야기가 아니라 데스크가 통화로 들은 이야기로 채워졌다. 내가 취재한 내용은 사라졌다. 기사에는 내 이름이 붙는다. 책임도 내가 진다. 그런데 회사는 내 이름을 지켜주지 않는다.


결국 기사는 내가 쓴 것이 아니었다. 남의 말을 받아 적은 글이 됐다. 비문투성이 기사 초안이 모니터를 뒤덮었다. 창피했다. 기자라면 사실로 말해야 하는데, 나는 뭘 하고 있나 싶었다.


그때 내 무너진 마음을 붙잡아준 건 논설위원님이었다. 내 상태를 본 논설위원은 국장에게 ‘특별취재반’이라는 이름으로 기사를 내보내자고 제안했다. 내 이름을 빼자는 것이었다. 국장은 흔쾌히 동의했고, 결국 사실상 익명으로 나갔다.


하지만 내용은 달라지지 않았다. 데스크가 들은 이야기로 도배됐다. 더 싸우기엔 지쳤다. 논쟁은 나를 갉아먹을 뿐이었다. 이름이 빠졌으니 그냥 따르기로 했다. 이쯤 되면 내가 기자인지 데스크 블로그 관리자인지 모르겠다.


기사는 바로 송고되지 않았다.


“일단 내보내지 말고 인쇄해서 넘겨줘.”


데스크의 말이었다. 이상했다. 취재한 지 오래됐는데도 왜 미루는 걸까? 기다리는 독자들이 분명 있을 텐데.

다음 날, 국장은 출근하지 않았다. 어디 가는지 아무 말도 없었다. 평소라면 단체 채팅방에 남겼을 텐데 그날은 메신저도 잠잠했다. 신경 쓰지 않았다. 당장 눈앞의 일부터 처리해야 했다.


세 시간이 지났을까. 선배가 전화를 받더니 급히 회의실로 들어갔다. 꽤 길었다. 반투명 유리 너머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국장과 통화 중인 듯했다.


10분쯤 지났을까. 선배가 나를 불렀다.


“박 기자...”


평소와 다른, 싸늘한 목소리였다. 최악의 시나리오가 떠올랐다.


“기사를 내리게 됐다.”

“그때 단독 기사 내리고, 어제 쓴 것도 못 올라가.”


한 대 맞은 듯 멍해졌다. 믿기지 않았다. 예상보다 더 최악이었다. 표정이 굳었다. 마스크를 썼는데도 선배는 내 표정이 안 좋아진 걸 눈치챘는지 소리쳤다.


“너 표정이 왜 그래?”


선배도 답답했을까, 아니면 내가 건방져 보여서였을까. 갈라지는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선배 말을 제대로 듣지 않았다. 머릿속엔 딱 한 가지 생각만 맴돌았다.

기자... 그만두자 X발


처음엔 쓰지 않는다더니, 갑자기 태세를 바꿔 취재 지시를 내리고, 출입처에선 문전박대당하고, 아버지뻘 사람의 하소연까지 들으며 감정을 쏟았다. 그런데 돌아온 게 기사 삭제라니. 이 회사는 언론의 책임이 있긴 한 걸까?


그 순간부터 회사는 더 이상 신뢰할 대상이 아니었다. 한때 ‘전문 기자’가 되겠다는 목표도 산산조각 났다. 박봉에 야근에 몸은 지쳤지만, 내 기사를 기다리는 독자와 회사가 나를 키워줄 거란 희망으로 버텼다. 하지만 이 달콤한 마약 같은 희망은 이제 그만이다.


이 지옥에서 벗어나야겠다고 결심했다. 더는 기자로 살고 싶지 않았다.


3일쯤 지났을까. 그 이후는 역겨움 그 자체였다. 회사에 손님이 찾아왔다. 그 시설관리회사 임원, 차장, 현장 소장이 한꺼번에 왔다. 국장실에서 웃으며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치가 떨렸다. 국장에게 “취재 다녀오겠다”며 자리를 피했다. 화장실에서 구역질을 하고 어디론가 떠났다. 도저히 맨정신으로는 그 자리에 있을 수 없었다. 나는 그 사건을 취재하며 온갖 수모를 겪었고, 결국 기사가 내려갔다. 그런데 그들은 해피엔딩이라니. 나를 엿 먹이는 건가 싶었다.


왜 기사가 내려갔는지는 지금도 모른다. 다만 A 신문사처럼, 우리도 뒷거래가 있었겠거니 짐작할 뿐이다.


아직도 내 노트북 한켠엔 그 기사 백업본이 남아있다. 언젠가, 정말 언젠가 필요하다면 꺼낼 마지막 카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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