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엿 먹이나 싶었다
“오늘 중요한 미팅 있으니까 잠깐 사무실에 있어”
아침부터 선배의 다급한 목소리였다. 내가 선약이 있을까 불안한 것인가? 하지만 나는 이날 아무런 취재 일정이 없었다. 하루 통째로 미팅에 써도 상관없었다.
적막함만 흐르는 사무실에 느닷없이 초인종이 울렸다. 어디서 본 듯한 익숙한 얼굴. 그때 나에게 ‘기사 안 쓰기로 했는데? A 신문사 아니에요?’라고 물은 차장이다. 이 사람은 ‘에잇’하면 소리 지른 부장의 부하직원이다.
사실 차장은 그나마 나에게 협조적인 사람이었다. 한바탕 싸움이 끝나고 내가 줄담배를 피울 동안, 이 사람은 ‘이해해 달라’ ‘우리도 대책 세우는 중이다’며 해명 아닌 하소연을 하고 있었다. 사람이 권위적이지 않아 보였다.
먼 걸음은 한 차장이 이 자리에 오게 된 이유는 그날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처음에는 자료를 보여주지 않다더니 갑자기 태세를 전환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처음에는 몰랐지만, 훗날 데스크에서 출입처 이사 한 명에게 전화해 으름장을 놓았다고 한다. 그 간부가 당황한 나머지 직원에게 자료를 들고 우리 회사에 가라고 지시한 것이다.
한 뼘 정도 되는 자료를 보여준 이 직원은 이윽고 자초지종 설명을 시작했다. 이해가 안 되면 다시 물어보고 또 물어보고 계속 물어보았다. 오늘은 이 직원의 하루를 모두 사용하기로 했다. 몸은 이미 지쳤지만 알고 싶었다. 왜 그랬는지, 너무 알고 싶었다.
끝이 없어 보였던 취재는 오후 2시가 되자 마무리됐다. 솔직히 완벽히 알지 못했지만, 어느 정도 윤곽이 그려졌다. 물론 이 사람이 직접 설명했다고 기사를 안 쓰는 건 아니다. 보도는 신문사 고유의 권한이기 때문이다. 그 어느 외압이 있어도 원칙적으로 보도는 신문사의 결정이다.
[단독] XX역에서 열차 두 대 정면충돌할 뻔
다음 날 저녁에 보도된 기사. 파급력이 어마어마했다.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 철도 라운지에는 내 기사가 공유됐다. 사람들은 그 회사를 비판하기 시작했다. 조회 수는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1,000자도 안 되는 단신 기사가 어마어마한 화력을 내뿜은 것이다. 무섭거나 두렵지 않았다. 앞으로 곧 써야 하는 기사에 대한 중압감만 남을 뿐이었다.
전화벨이 울렸다. 어제 우리 회사를 찾아온 차장이었다. “아이고... 결국 기사 나왔네요... 거참” 겉으로는 웃고 있었지만 사실 그는 속으로 난감해하고 있었을 것이다. “아...네...뭐 이렇게 됐네요” 내가 일하면서 자주 하는 핑곗거리다. 사실 맞는 말이기도 하다. 마지막 송고 버튼을 누르는 사람은 내가 아닌 데스크이기 때문이다.
그러자 차장은 “이거 참 난감하네요... 거기는 안 올리기로 했는데...” 여기서 ‘거기’는 A 신문사를 말한다. 분노가 차올랐다. ‘왜 자꾸 그 신문사를 들먹이지?’라는 생각에 자존심이 상했다. “거기는 신문사 골라서 취재 응대하세요?” 목소리 높여 화를 냈다. 바로 내 옆에 국장이 있었지만, 신경 쓰지도 않았다. 도대체 그 회사와 무슨 거래를 했길래 계속 언급되는지 이해가 안 됐다. 전화를 끊어버렸다. 더 이상 말을 섞기도 싫었다. 그리고 물 한잔 들이키며 잠시 나 자신을 진정시켰다. 화를 내봤자 내 감정만 소모됐을 뿐이다.
후속 기사를 쓰는 과정은 고난하고 다시는 겪고 싶지 않았다. 내가 취재한 내용과 데스크가 들은 내용이 서로 엇갈렸기 때문이다. 매시간이 논쟁의 연속이었다. 아무리 신문사가 수직적인 관계더라도 취재는 기자의 권한이다. 지시받고 들은 이야기를 적으면 된다. 대형 이슈는 수십 번 검토하고 기록으로 검증한다.
그런데 초안이 수정되는 과정에서 내가 들은 이야기가 아닌 데스크가 들은 이야기로 가득 차기 시작됐다. 나는 첫 취재부터 미팅에서 들은 이야기를 모두 담았다. 과장도 없었다. 그런데, 데스크는 누군가와 통화한 내용을 바탕으로 수정했다. 현장에서 직접 들은 이야기와 전화 통화로 들은 이야기 중에 어느 것이 더 신빙성을 가지고 있을까? 무엇보다 이 기사는 내 바이라인이 달린다. 결국 일차적인 책임은 내가 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회사가 기자를 보호해줄 수 있는가?
결국 내가 취재한 내용이 아닌 남에게 들은 이야기로 기사가 작성됐다. 곳곳에 사실이 아닌 것이 쓰여있다. 비문으로 가득 찬 문장이 모니터를 가득 채웠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더니 이미 태백산맥을 넘어간 수준이었다. 창피하고 답답했다. 문제를 제기하더라도 사실을 기반으로 말하는 것이 기자 아닌가? 내가 이 직업을 잘못 알고 있었나 싶었다.
무너지는 내 감정을 조금이나마 잡아준 사람은 우리 신문사 논설위원님이었다. 답답함으로 책상에 얼굴을 파묻고 있는 내 모습을 보자 논설위원님은 국장에게 한 가지 제안했다. ‘특별취재반’이라는 이름으로 내보내자는 것. 어느 정도 내 책임은 덜어내자는 것이다. 다행히 국장은 흔쾌히 받았고 내 이름이 아닌 사실상 익명으로 나가는 것으로 가닥이 잡혔다.
하지만 기사는 데스크가 들은 이야기로 대다수 차지했다. 너무 지쳤기 때문이다. 더 이상의 논쟁은 오히려 나 자신을 갉아 먹을 뿐이었다. 어차피 내 바이라인으로 안 나가게 됐으니 이렇게 된 이상 순순히 따르기로 했다. 이쯤 되면 내가 기자인지 데스크 미니홈피 관리자인지 헷갈린다.
기사는 곧바로 송고되지 못했다. “일단 내보내지 말고 인쇄해서 넘겨줘” 데스크의 지시사항이다. 이상하다. 첫 취재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 내보내지 말라니. 당장이라도 후속 기사가 궁금할 독자들이 있을 텐데 말이다.
다음날, 국장이 아침부터 사무실로 출근하지 않고 어디론가 갔다. 우리에게는 아무런 말도 없었다. 평소였음 단체 채팅방에 목적지를 말했을 텐데, 오늘따라 메신저도 조용했다. 그렇다고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당장 쌓인 일부터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출근하고 3시간 정도 흘렀을까? 선배가 급하게 전화를 받으려 회의실로 들어갔다. 꽤 긴 시간이었다. 회의실은 유리 벽으로 막혀있지만, 소리까지 완벽하게 막지 못한다. 이따금 들리는 목소리로 얼추 무슨 내용인지 맞힐 수 있었다. 국장과의 통화다.
한 10분 정도 흘렀을까? 선배가 나를 조용히 회의실로 불렀다. “박 기자...” 평소와 다른 목소리 톤이다. 싸늘했다. 내가 생각한 최악의 시나리오로 흐른 것이 아닌가 싶었다.
“기사를 내리게 됐다”
“그때 먼저 쓴 단독기사 내리고, 어제 쓴 것도 올라가지 못할 거야”
순간 한 대 쥐어박힌 기분이었다. 믿기지도 않았다. 예상보다 더 최악의 결과였다. 표정이 굳어졌다.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선배는 내 표정이 안 좋아진 게 보였는지 “너 표정이 왜 그래?”라며 소리치기 시작했다. 선배도 이 상황이 답답했는지 아니면 족히 10살이나 차이 나는 내가 건방진게 아니꼬운지 잘 모르지만, 아마 그도 여러 가지 감정이 들었을 것이다.
이윽고 선배는 나에게 여러 가지 꾸중하기 시작했다. 소리를 너무 질렀는지 중간중간에 갈라진 목소리도 들렸다.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다”라고 개겨보았지만 받아들일 리는 없다. 사실 이때 나는 선배 말에 경청하지 않았다. 머릿속에서 이 생각만 맴돌기 시작했다.
기자... 그만두자 X발
처음에는 쓰지 않기로 하더니, 갑작스러운 태세 변화에 보충 취재 지시가 떨어졌고 출입처에서는 문전박대를 당했었다. 아버지뻘 되는 사람의 하소연까지 들었고 화도 냈고 불필요한 논쟁까지 했다. 이 사건 덕분에 내 감정 모든 것을 쏟아냈는데, 돌아온 것은 기사 내리기? 도대체 이 회사는 언론의 책임이라는 게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
이때부터 나는 회사를 신뢰할 수 없게 됐다. 그리고 몇 년 전 내가 꿈꾼 ‘전문 기자’라는 목표도 완전히 사라지게 됐다. 박봉에 잦은 야근으로 몸은 지쳤지만, 회사가 나를 키워주고 내 꿈을 실현시킬 수 있다는 생각에, 내 기사를 기다리는 독자들의 응원 덕분에 버텼지만, 이 달콤한 마약에 언제까지 지옥 같은 삶을 살아야 하는가?
이 지옥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이날 이후로 퇴사할 결심을 하게 됐다. 더 이상 기자로 살기 싫다.
그다음 상황은 더 역겨웠다. 3일 정도 지났을까? 회사에 손님이 찾아왔다. 그 회사의 관계자, 그러니까 사건의 당사자인 이사와 차장 그리고 현장 관계자까지 찾아온 것이다. 그들은 국장실에서 웃으면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국장에게 취재하러 간다는 핑계를 대고 자리를 피했다. 역겨운 나머지 화장실에서 대충 게워내고 어디론가 떠났다. 도저히 이 회사에서 맨정신으로 있을 수 없었다. 나는 그 사건을 취재하면서 온갖 수모를 겪었다. 결국 기사가 내려가는 치욕적인 결말을 맞았지만, 되레 이들은 해피엔딩을 맞이하고 있으니… 나를 엿 먹이나 싶었다.
지금까지 그 기사가 내려간 이유를 알지 못한다. 하지만 추측건대, 아마 A 신문사처럼 우리도 모종의 거래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아직 내 노트북 한편에는 내려간 기사의 백업본이 남아있다. 기회가 되면 터트릴 판도라의 상자라기보단 혹시 모를 그날을 위해 남겨놓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