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월급에 누가 일할까?
내가 다녔던 신문사 직원의 평균 나이는 45세다. 정확히 측정한 계산값은 아니지만 내가 피부로 느껴본 결과, 대략 45세였다. 내 직속 선배의 학번이 한일월드컵이 열릴 때이고 그다음 연장자가 우리 아버지와 비슷한 세대다. 상황이 이러니 조직에는 젊음이라는 이미지를 느낄 수 없었다. 사무실에는 가장들의 한숨이 가득 차 있었다. 그 가운데 머리에 피도 안 마른 20대 청년이 앉아 있는 셈.
그러다 보니 회사는 젊은 신입직원을 갈망하고 있었다. 내가 2030세대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하다 보니 꽤 신선한 이야기로 들렸나 보다. 아무래도 젊은 이미지가 대외적으로 좋은 인상을 남기니 말이다. 사실 나는 그렇게 젊은 세대치고 신선하진 않다. 주변인들이 나를 지칭할 때 ‘젊은 꼰대’라고 말한다. 아마 이 회사는 세대 간극이 너무 넓다 보니 내 기획 하나하나가 색달랐나 보다.
그렇지만 젊은 이미지는 내 다음으로 맥이 끊겼다. 내가 퇴직을 선언하고 대체자를 구할 때였다. 새로운 직원이 들어오면 일주일 안에 그만두는 일이 허다했다. 지원자는 10명에 불과했고 회사가 원하는 ‘젊은 사람’은 아예 지원서조차도 제출하지 않았다. 경력 기자들도 그렇게 화려한 스펙을 가지진 않았다. 말이 기자지 사실상 영업사원에 불과했다.
사실 젊은 사회초년생 관점에서 우리 회사는 그렇게 매력적이지 않다. 비수도권에 연고지를 둔 사람이 서울에서 혼자 살기에 너무 부족한 금액이었다. 일반적인 중소기업에 주는 4년제 대졸자 초임보다도 낮다. 여기에 포괄임금제가 적용된다. 잔업을 해도, 야근해도 그만큼 보상을 받을 수 없었다.
타 매체에서 중점적으로 보도하는 중소기업 구인난 문제를 피부로 느껴보니 얼마나 상황이 심각한지 알 수 있었다. 그렇지만 어차피 나는 나갈 사람이라 회사가 사람을 못 뽑았든지, 이상한 낙하산을 데리고 왔든지 냉정하게 내 알 바 아니다. 하지만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좋든 싫든 간에 정이라는 것이 생겼으니 일종의 ‘소신 발언’은 할 필요가 있었다. “신입 연봉을 올려야 한다. 누가 이 월급 받고 일하고 싶은가?” “인사제도에 변화가 필요하다.” 이런 말을 해도 회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여전히 적은 인원과 열정페이를 강요하고 있다. 상황이 이러니 그들이 원하는 신선한 이미지를 어디서 얻을 수 있을지 참 알 수 없다.
내가 나가기 직전까지는 회사는 ‘사람이 없다’라는 곡소리만 내고 있었다. 퇴직 전날까지 후배 한 명을 추천해달라고 말할 정도였다. ‘내가 왜 굳이 소중한 내 후배의 인생을 망쳐야 할까?’라는 생각에 단칼에 거절했다.
그때 데스크의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요즘 젊은 친구들은 공기업 아니면 대기업만 바라보니까 문제야” 인터넷으로만 떠도는 악덕 중소기업의 사례를 직접 경험해보니 숨이 답답하면서 한편으로는 내가 잘 나왔구나 싶었다. 이미 침몰하는 배에 무엇이 끌려 이렇게 아등바등 살아왔는지 후회스럽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