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생활에 마침표를 찍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다. ‘그 일’로 내 모든 감정을 소진한 뒤라, 누군가에게 그동안의 일을 털어놓고 싶었다. 같은 밥벌이를 하는 동료 기자를 만나고 싶었지만, 번듯한 기자단에 속하지 못한 나에게는 그저 허황된 바람일 뿐이었다. 결국 내가 기댈 수 있는 사람은 친구뿐이었다. 회사 얘기를 꺼내는 게 미안했지만, 그때 내 정신 상태로는 그런 미안함조차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소주 한 병이 비워지고 나서야 내 이야기도 끝을 맺을 수 있었다. 줄곧 그 사건에 관한 이야기였다. 너무 오랫동안 붙잡은 게 아닐까 미안했지만, 친구는 싫은 내색 없이 내 말 한마디마다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사실 같은 기자가 아니라면 쉽게 공감할 수 없는 이야기였을 텐데, 내 말에 귀 기울여준 것만으로도 고마웠다.
이야기가 끝날 무렵, 잠깐의 적막이 흘렀다. 식당 안은 손님들의 대화 소리로 가득했지만, 내 귀에는 그저 백색소음일 뿐이었다. 그 적막을 깨고 친구는 짧게 물었다.
“근데, 왜 지금까지 그만두지 않았냐?”
그 질문은 늘 듣던 말 같았지만, 그날따라 다르게 들렸다. ‘이제는 정말 이 직장을 놓아야 하나?’라는 생각이 마음속에서 파도처럼 밀려왔다. 지난 1년 반의 기자 생활이 후회로 바뀌기 시작했다. 독자들의 달콤한 피드백이 사실은 예의상 하는 말은 아니었을까. 나는 우월감에 빠져 스스로를 과대평가한 건 아닐까.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제는 정말 벗어나야겠다고 결심했다.
사실 이 친구뿐 아니라 많은 사람이 같은 질문을 했다. 회사 뒷담화가 끝날 때마다 “왜 그만두지 않냐?”, “지금이라도 도망쳐라.”라는 조언이 따라왔다. 그때만 해도 나는 기자라는 직업에 매력을 느끼고 있었다. 많지 않은 조회 수에도 구독자들이 “잘 보고 있습니다”라고 남겨주는 댓글이 달콤했다. 사람들 앞에서 ‘기자’라고 소개할 때 느끼는 성취감도 컸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 직업을 가진 이후 내 자아가 너무 망가졌다. 취업 후 나를 만난 사람들은 하나같이 “너 왜 이렇게 변했냐?”, “요즘 너무 힘들어 보인다.”고 걱정했다. 과거 내 SNS 기록을 다시 보니, 혼란스러워하는 내 모습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그저 형식적인 친목이 아니라, 진심으로 나를 걱정해준 말들이었다.
그날 그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은 “그래야겠다.”였다. 짧은 다섯 글자였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고민과 결심이 담겨 있었다. 이제는 언론인으로 살지 않겠다는 결심, 무너진 나를 다시 찾겠다는 다짐,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불안함까지. 단순한 술김이 아니라 정말 마음 깊숙한 곳에서 터져 나온 말이었다.
약속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나는 끝내 눈물을 쏟았다. 직장을 그만둔다는 생각보다는, 왜 1년 반 동안 이런 ‘개고생’을 했는지, 그 긴 시간을 허비했다는 자책감이 더 컸다. 당장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고단한 삶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그렇게 나는 짧았던 기자 생활에 마침표를 찍을 준비를 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