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는 웃지만, 뒤에서는 칼로 내려친다.
지난해 장안의 화제를 몰고 온 <스물다섯 스물하나>라는 드라마에는 기자라는 직업이 나온다. 주인공 ‘백이진’은 스포츠부 기자로 펜싱 종목을 출입한다. 또 다른 여자 주인공 ‘나희도’와 ‘고유림’을 상대로 취재도 한다. 두 사람은 펜싱 선수이자 대한민국 국가대표다.
한 회차에서 백이진은 고유림의 귀화 소식을 단독으로 다룬다. 보도 이후에 고유림은 전 국민에게 질타받는다. 두 사람은 관계가 틀어지기 시작한다. 친구들도 ‘자신의 이익을 위한 고유림을 기삿거리로 이용했다’라고 생각한다. 배신감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백이진은 자신의 역할에서 최선을 다할 뿐이다. 그는 기자이기 때문이다.
기자는 세상을 조명하는 직업이다. 따뜻한 소식뿐만 아니라 이슈와 사회의 불공정함을 다룬다. 그 과정에서 타인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웃으면서 술 한잔 걸친 사이도 어느 순간 그 사람 등에 칼을 꽂아야 한다. 그것이 기자라는 직업이다. 그래서인지 정이 많은 사람은 이 직업이 어렵다. 취재원과 돈독한 관계를 쌓았지만 한순간에 나쁜 놈 낙인을 찍어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핑계든 전후 관계도 필요 없이 프레임을 씌워야 한다.
내가 출입하는 분야는 내 대학 전공과 연관된 산업이다. 그래서인지 나의 대학 동기들이 그 산업에 대다수 종사한다. 그것을 보고 누군가는 ‘취재하기 쉽겠다’라고 생각한다. 동기들을 취재원으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쉬운 것은 맞다. 내가 모르는 현장 소식을 그 친구들에게 물어보면 답을 찾을 수 있다.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루트를 얻은 셈이다.
하지만, 나는 절대 동기들, 선후배를 절대 취재원으로 두지 않았다. 자칫하면 그 사람들에게 칼을 꽂을 수 있기 때문이다. 소중한 인연을 일 때문에 잃기 싫었다. 만약 나 때문에 그들이 곤란해진다면 죄책감에 시달릴 것이다. 애초에 긁어 부스럼을 일으키기도 싫다.
어려운 길을 선택하더라도 나에게 중요한 것은 사람과의 관계다. 소중한 사람에게 칼을 꽂을 바에 차라리 비즈니스 관계에 불과한 사람에게 총을 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