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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gjeje Dec 05. 2023

꽃비

단편에세이소설

바람이 불자 한바탕 꽃비가 쏟아졌다. 거리는 순간 꽃길이 되었다. 마침 들어온 신호등 붉은 불빛이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얼마 후 익숙한 멜로디와 함께 다시 사람들의 빠른 움직임이 느껴졌다. 연우도 자신의 걸음을 떼어보려고 자동 휠체어의 버튼을 누르자 형욱이 가만히 제지했다.

 손끝에 느껴지는 연우의 팔목이 더 가늘어진 것 같아 순간 알 수 없는 통증이 형욱의 가슴 언저리를 훑고 지나갔다.

“ 연우야 조금만 더 있다 건너자. ”

이유를 듣고 싶어 할 것 같아 시선 없이 앉아 있는 연우를 향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 벚꽃 기억하지”

“ 응 떨어지는 모습이 더 아름다웠지”

“그래 넌 항상 그렇게 말했어. 벚꽃은 떨어지는 모습이 더 아름답다고”

생각보다 덤덤하게 말해주는 연우의 목소리에 형욱도 주저 없이 이야기를 이어갔다.

“ 네가 좋아하는 꽃비가 지금 내리고 있어서 조금만 더 맞고 가자고”

“그럼 여기는 꽃길이 되었겠네”

연우는 작은 미소를 지었다. 떨어지는 작고 여린 꽃잎들이 마치 그런 연우의 미소 같았다. 다시 신호등이 바뀌자, 형욱이 휠체어에 손잡이를 잡으려고 했다. 이번에는 연우가 형욱의 손을 잡았다.

“ 오빠 조금만 더 있다 건너자. 바람이 불어서 나도 벚꽃이 떨어지겠구나 했어. 항상 이때쯤이면 왔던 곳인데 눈이 안 보인다고 기억마저 지워지는 것은 아니잖아, 근데 내가 물어보면 오빠 마음이 아플까 봐 혼자만 느끼고 있었는데, 이런 바람이라면 너무 예쁘게 날리고 있겠다.”

연우의 미소가 커졌다. 형욱은 건널목을 벗어나 조금 더 한적한 곳으로 휠체어를 밀고 갔다. 한동안 연우의 휠체어는 꽃길을 걸었고 형욱은 꽃잎을 모아 연우의 머리 위로 날려보기도 했다. 꽃잎이 웃고 그 웃음에 연우도 웃고 있었다.


후천적인 실명으로 병원에서 주기적으로 검진을 받아오던 연우가 치료가 힘들다는 선고를 받던 날도 병원 뜰에는 벚꽃이 날리고 있었다. 연우는 내년 봄에도 과연 저 흩날림을 볼 수 있을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그때 안과 병동에서 수련받던 형욱이 어느 환자에게나 건네는 인사처럼 말을 걸어왔다.

“ 벚꽃이 예쁘지요”  

“ 네, 떨어질 때는 더 예뻐요. 벚꽃은...”

그렇게 병원에서 형욱은 연우의 눈이 빛을 잃어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 빛이 어둠으로 잠기기까지 3번의 봄을 같이 맞이했다. 형욱과의 인연은 연우가 정기적인 검사와 치료를 위해 병원을 다니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고 눈이 제구실을 할 것이라는 희망을 갖게 했다. 하지만 결국 봄날 벚꽃의 흩날림은 연우에게 기억 속의 그림이 되었다. 완전한 실명 상태가 된 것을 알았을 때 연우는 결혼은 물론 생을 포기하려고도 했다. 기억으로만 남은 세상에서 인생을 보내기에는 아직 너무 젊었고 형욱과 함께 하며 보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았다. 그런 연우의 마음을 눈치채고 먼저 죽음을 제안한 것은 형욱이었다. 같이 생을 마감하면 저승에서 영원히 동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그때 연우는 자신의 죽음에 앞서, 형욱이 세상에 없다는 두려움에 오히려 형욱을 설득해야 했다.

      

형욱은 자신의 재능과는 상관없이 의사라는 직업을 선택한 것에 회의를 느끼고 있었다. 공부하는 과정도 힘이 들었지만, 막상 병원에서 의사로서의 나날은 지쳐가는 환자의 모습처럼 고달프고 의욕도 없었다. 그런모습으로 의사 놀이를 해야 하는 부담감에  환자를 잘 보고 있다는 확신이 없었다. 봄이면 병원 안에 비처럼 쏟아지는 벚꽃조차 바쁘고 지친 형욱의 발걸음에는 걸림돌처럼 걸리적거렸다.

그렇게 인턴을 마치고 안과를 선택한 레지던트 1년 차 때 연우를 알게 됐다. 연우의 담당 의사는 시력을 점차 잃어가는 것을 수련생들 앞에서 안타까워했다. 그리고 연우에게도 크게 희망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날도 한참 벚꽃이 만개한 3월의 끝자락이었다. 시력을 회복할 수 없다는 선고를 받은 날 연우는 병원문을 나서기가 두려워 벤치에 앉아 있었고 그런 모습을 지켜보던 형욱이 그녀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형욱과의 만남 이후 연우는 판사의 선고에 항소를 하는 피고인처럼 담당 의사의 결론에도 기적이라는 선고를 기다리며 열심히 검사와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기적을 바라는 마음은 그런 연우를 지켜보던 형욱도 마찬가지였다. 정작 그런 연우에게 그만 포기하라고 한 것은 담당 의사였다. 그날 연우는 알고 있던 사실이었지만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마음의 거부는 몸으로 전이되며 무기력한 상태가 되어 응급실로 내려가야 했다. 그렇게 몸이 움직임을 잃은 지 벌써 3개월이 지났다. 오늘도 연우는 형욱의 도움을 받으며 병원에서 재활치료를 받고 돌아가는 중이었다. 당시 그런 연우를 보면서 형욱은 자신의 게으름과 투정이 부끄러웠다. 빛이 오히려 무겁고 부담스럽던 자신의 일상과 직업에 대해 가치와 보람을 찾아보기로 했다. 바라보는 마음의 눈이 조금 방향을 틀자, 형욱의 앞에 놓인 많은 사람이 자신의 손길을 기다린다는 것을 알았다. 무엇보다도 형편없다고 생각한 의사로서의 자신을 믿고 따르는 환자들을 보며 그들의 순수함과 간절함에 마음이 경건해지기도 했다.

형욱의 이 모든 사실을 직접 듣고 보아온 연우는 자신으로 인해 형욱이 죽음을 생각하는 것에 죄책감이 들었다. 더욱 형욱이 알게 되었다고 환하게 웃으며 들려준 ‘마음의 눈’을 잃게 되는 것이 더 두려웠다.


어려서부터 부재했던 형욱의 부모는 세상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눈 대신 경쟁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그들로부터 살아남기를 강요했다. 그런 그에게 연우는 눈이 아닌 마음으로 볼 수 있는 아름다움에 대해 눈을 뜨게 했다. 연우가 할 수 있었던 자기 자신을 위한 노력과 빛을 잃고도 볼 수 있는 아름다움은 결코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형욱은 알고 있었다. 앞을 볼 수 없는 연우는 바람의 느낌으로 꽃잎을 만나고 그 아름다움을 느끼고 있었다. 때론 거칠고 험악한 사람을 어둠에 갇힌 체 환한 미소만으로 그들을 순하고 고요하게 만들기도 했다.     

건널목의 신호등이 그들을 기다리며 색깔 놀이를 하고 있었다. 하나둘 들어오는 거리의 가로등에 꽃비의 날개 짓은 더욱 화려하게 하늘과 거리로 퍼져갔다. 건널목 건너 작은 가게들의 네온 간판과 카페 창가에 보이는 텅 빈자리에는 밤이 깊어진 듯 하나둘 전등불이 꺼져가고  연우의 휠체어는 형욱의 마음을 함께 태우고 아주 오랫동안 꽃비를 맞으며 머물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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