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igjeje Sep 22. 2023

숨어있는 흔들림

  단편 에세이 소설

4살배기 아이가 계단을 오르고 있다. 뒤따라오는 남자와 경주라도 하는 것처럼 한 계단 한 계단을 느리고 힘겹게 최선을 다해서 올라가고 있다. 남자는 아이 뒤에서 바싹 따라가고 있었다. 가끔 조심스럽게 팔이라도 잡아주려면 아이는 괜찮다는 듯이 남자의 손길을 뿌리쳤다. 그런 아이를 남자는 미소로 기특해 하며 주위를 살핀다. 아이가 혼자서 계단을 오르는 모습을 누군가가 봐주기를 바라는 눈치다. 주일 미사가 끝난 성당 마당은 공터처럼 비어있었다.


혼자서 당당하게 계단을 올라와 할아버지를 부르려던 아이가 잠시 문 앞에서 멈추었다. 튀어나오는 환호성을 진정시키려는 작은 두 손은 입 가리개가 되었다. 불 꺼진 성당 안에서 느껴지는 정적에 함께 침묵하려는 반사적인 아이의 행동이었다. 어둠과 고요함 속에서 아직도 매달려 있는 제대 중앙의 예수상을 찬찬히 바라보기 시작한다. 익숙한 아이의 행동이었다.   

   

”우리 둘리 혼자서도 이제 잘 올라오네. “  

   

할아버지의 칭찬에 웃음으로 답을 보내고 아이는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다시 앞을 응시하기 시작했다.

제대 옆 성체를 모셔둔 곳에서는 작은 빛이 새어 나와 예수상의 발끝에 머물렀다. 너무 진지하고 조용한 아이의 모습에 남자는 그저 웃기만 한다. 아이의 그런 모습은 남자가 예상한 시간을 지나서도 끝나지 않았다. 남자의 미소가 조용히 가라앉았다.  

   

모태신앙을 가지고 있는 남자는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성당의 분향 냄새를 맡았다. 그 향 냄새는 몸에 배어있는 지나간 시절의 냄새처럼 그 남자의 기억 속에서 늘 함께 했다. 초등학교 입학선물로 다른 아이들의 부모는 어깨에 메는 가방이나 운동화를 사줄 때 남자의 어머니는 첫 영성체를 모시게 해주는 것으로 남다른 선물의 의미에 만족해했다. 그 뒤로 그의 일상은 집과 학교, 성당이라는 트라이앵글을 벗어나지 못했다. 어려서부터 다녔던 성당은 어머니의 잦은 부재나 좁은 집을 벗어나고 싶을 때면 언제든지 찾아갈 수 있는 제2의 집이 되었다.

중학교부터 시작된 새벽 미사의 복사 생활은 더욱 강력한 소속감과 책임감을 부여했고 때론 자신이 신부가 되어 있는 꿈을 꾸게 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막 사제서품을 받고 첫 부임지로 온 신부님을 안내하며 자신의 노련한 모습에 혼자서 우쭐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일상에 일부인 당연한 자연스러움은 친구들이 대학에 갈 준비를 할 때 남자는 신 학교를 가기 위해 예비신학 과정을 준비했다.


홀어머니에 가난한 집의 장남이었던 그에게 신부는 생활을 위한 길이자 도피처였다. 20여 년, 같은 성당을 제집 드나들 듯했던 그 남자에게 2년마다 부임해 오는 새로운 신부님들은 아버지 같았고 형제와 같았다. 그에게 주어진 앵글의 세상은 그것이 전부였고 보호처이면서 안락했다.  

   

신학교로의 입학은 우선 어머니의 사명감을 완수하게 해 준 엄친아가 되게 했다. 신부님과 성당의 교우들에게는 어려서부터 이미 정해진 길로 그가 신학교에 가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남자에게 신학교는 청소년기를 벗어나 대학이라는 성인의 성역으로 들어선 친구들과는 다르게 흥분되는 곳도 이질적인 공간도 아니었다. 어차피 자라면서 자신만의 공간도 물건도 없었던 남자에게는 공동체의 생활도 수업 시간을 뺀 침묵과 미사, 기도의 시간들도 그저 일상의 연장선에 불과했다. 이러한 것들이 갑작스러운 자연 현상의 변화처럼 이미 서서히 변형될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는 예측하지 못하고 있었다.  

   

 신학생은 공동체 유지를 위해 2학년을 마치면 일괄적으로 군에 입대해야만 한다. 남자는 신체적 미달 조건으로 군에 입대 불가 판정을 받았다. 신학생이 군 면제를 받으면 3년간 병원 등에서 봉사 활동을 해야 했다. 아무런 전문적인 기술도 없는 남자는 환자를 돌보며 그저 그들의 고통이 잦아들고 보호자들을 위해 기도 하는 것이 전부였다. 비록 홀어머니에 가난한 살림이었지만 결핍이나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가슴에서 느껴 보지는 못한 것 같다. 그동안 남자가 속했던 세상은 자잘한 사건들이 있었지만 직접 해결해야 하는 일은 없었다. 정든 신부님이 임기를 마치고 떠나면 새로 온 신부님이 그 자리를 대신했고 오히려 새로운 기대감에 지루하지 않았다. 그때마다 터줏대감 같은 남자를 의지하는 신부님들은 늘 그와 친밀했다.   

   

병원의 상황은 친밀감이 필요하지 않았다. 뭔가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이 필요한 사람들인데 남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환자를 돌보려는 남자의 손길은 거부감에 어색했다. 알 수 없는 가슴의 떨림과 마음의 흔들림으로 남자는 새로운 답을 찾으려고 애썼다. 그럴수록 뒤섞여 버리는 참담함에 속이 매스꺼워 오기도 했다. 순간 예비신학 과정에 있을 때 사제서품을 받고 막 성당에 부임해 온 젊은 보좌 신부님이 떠올랐다.


” 성운아 너는 왜 신부가 되려고 하니? “


생각해보지 않았던 질문에 당황했다. 신부가 된다는 것을 성인이 되면 당연히 아빠가 되는 것과 같은 이치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뭐라고 대답했는지 생각도 나지 않았다. 남자는 정말 신부가 되려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병원에서 환자들의 신음 소리와 가족을 잃은 보호자들의 절규가 남자에게 다시 질문을 던졌다.


”성운아 너는 왜 신부가 되려고 하니? 신부가 되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   

  

남자는 갑자기 트라이앵글 같은 그의 일상들을 떠올렸다. 성당에 2년마다 바뀌는 신부님들의 매일의 일상들이 함께 겹치며 더 두껍고 뚜렷한 하나의 앵글이 되었다. 그때 느껴졌던 갑작스러운 지루함과 두려움이 남자를 병원 밖으로 끌어냈고 그 뒤로 남자는 모든 이에게서 모습을 감추었다.  

    

성직자라는 무늬를 지워 줄 수 있는 결혼이라는 가장 강력한 무기를 남자는 선택했다. 먼저 당연하게 여겼던 어머니를 대신해 집안의 경제활동을 도맡았다. 신자가 아니었던 남자의 아내는 남편의 독특한 과거에 왠지 모를 성스러운 매력을 느꼈다. 그리고 남자의 버릴 수 없는 모태신앙을 존중했고 아내도 결혼 전에 가톨릭 신자가 되었다. 그때는 성당이라는 성스러운 곳에서 결혼식을 올리기 위한 조건에서였지만 남편의 순수함과 가족에 대한 사랑에는 종교적인 힘이 작용한다고 믿었다. 두 아들도 아빠처럼 유아세례를 받고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첫 영성체를 모셨다. 다만 아내는 아들들에게 성당과 관련된 일을 하는 것에는 단호하게 경계를 그었다. 남자의 어머니처럼 주일마다 미사에 가는 것을 의무화하지도 않았다. 휴일에는 성당 대신 놀이공원에 가서 보내는 것에도 거리낌이 없었다. 여기에는 아들들이 남편 같은 꿈을 꾸게 될까 봐 미리 거리를 어느 정도는 두고자 하는 아내의 속내가 있었다.

    

 자연 현상의 변화란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고 이미 준비가 되어가고 있었다는 깨달음을 어느 날 남자가 아내에게 말했다. 누구보다도 성실하고 학업이 우수했던 둘째 아들이 의사 고시에 합격하자 다시 신학교에 지원했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막아보려는 아내에게 둘째 아들은 확고한 사명감과 의지를 보이며 자신의 소신을 밝혔다.

” 아버지 어머니 내가 의사가 된 것은 신부가 되어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신부가 되지 않는다면 의사의 길도 저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   

  

조용하고 단호한 아들의 확신 있는 태도에 부부는 듣고만 있어야 했다. 주일 미사가 끝난 빈 성당에서 혼자 기도하던 어린 시절의 둘째 아들 모습이 떠올랐다. 그 아들은 10년이나 걸리는 신학교 생활을 다양한 봉사 활동을 경험하며 보냈다. 지금은 의사로서 신부로서 이태석 신부님의 제자로서 수단에 머무르고 있다.


평범한 결혼 생활을 하는 것 같았지만 남자의 마음속에는 늘 답을 찾으려는 흔들림이 있었다. 그 흔들림을 견고하게 하려는 그의 믿음은 좋은 남편, 좋은 아버지가 되게 했다. 답을 찾기 위한 기도는 둘째 아들에 의해 이루어졌고 아내는 아직도 눈치를 못 채고 있다. 가끔 오지에서 고생하고 있는 아들을 생각하면 마치 자신의 임무를 떠넘긴 것 같은 미안함이 들었다. 어머니와 자기 자신에게는 성직자의 길을 포기한 것이 부끄럼으로 남아 간간이 마음을 뒤흔들어 놓기도 했다. 그런 아들에게 어머니는 자신만의 정해진 길이 따로 있는 것이라며 위로했다.

 어머니는 둘째 손자 이야기를 할 때면 항상 우리 신부님이라는 존칭을 붙인다. 처음에는 어색해하던 아내도 언제부턴가  아들을 신부님이라고 불렀다. 아내의 눈에서 남자는 눈물을 읽었다.  

   

나이답지 않게 두 손을 모으고 침묵을 지키며 기도하는 손자의 모습을 보며 남자의 마음이 다시 흔들렸다. 가슴의 벅참과 함께 밀려오는 두려움이었다. 아이는 할아버지의 마음도 모른 채 여전히 두 손을 모으고 있다. 큰아들의 유일한 자식이자 남자에게는 단 하나밖에 없는 손자다.

언제부턴가 아이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젊은 보좌신부가 다가왔다. 미사 시간에 볼 때보다 앳되어 보인다고 생각했다.

” 아기가 하는 모습이 하도 신기해서 한참을 지켜보았습니다. 이런 애는 처음 봤거든요. 기도하는 모습이 너무 진지하고 예뻐서요. 아가 이름이 뭐야? “

보좌신부는 무릎을 굽히고 앉아 아이에게 물었다.

”라빠에‘

아이는 정확하지 못한 발음으로 또렷하게 대답했다.

“라빠예? 아 라파엘이구나. “

”네 맞습니다. 신부님 “

남자가 대신 대답했다. 신부는 주머니에서 사탕 하나를 꺼내 아이의 손에 들려주고 제대 쪽으로 사라졌다.

곧 청소년 미사가 시작될 것 같았다. 남자는 손자를 소중하게 품에 안았다.

”라파엘이 무슨 소원을 빌었나 할아버지가 궁금하네. 비밀인가? “

” 아니 나도 매일 성당에서 살고 싶다고 기도했어요. “

아이는 사탕을 까며 진지하게 무심히 대답했다.

다시 한번 벅찬 감동과 두려움의 흔들림이 남자의 가슴속으로 달려들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파도 없는 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