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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gjeje Oct 04. 2023

파도 없는 바다

단편 에세이 소설

 

폭풍의 기세를 몰아  방파제를 넘어오는 거친 해일을 기대하며 장마철에 휴가를 떠나본다. 큰 비를 예고하는 기상캐스터의 자신만만한 일기예보에 기대를 걸어보기로 했다. 지난여름휴가 때 마음에 담고 왔던 후포항의 게스트하우스는 앞으로 닥쳐올 장마철을 피하려는 휴객 덕분에 한가했다. 아무렇게나 버무려 놓은 시멘트 담장 사이사이로 자유롭게 자리 잡은 돌들이 투박하게 박혀있다. 푸른색 양철 지붕에 낮은 담장이 투박한 돌들마저 이색적인 정감을 느끼게 했다. 빛바랜 회색 돌담에 소금기를 머금은 희끗희끗 한 무늬는 빈티지스럽기까지 했다. 세월이 머물고 있는 민박집이었다.

언젠가 바다 마을을 여행하면서 만났던 강풍의 위엄을 그녀는 잊을 수가 없다. 방파제를 넘어서 공격적으로 몰아쳐 오던 파도와 다시 기세를 모으려고 뒷걸음질 치던 물결을 긴장감으로 지켜보았다. 쏟아지는 비속의 풍랑은 하늘을 덮어버린 구름으로 검은 바람을 일으키며 삼킬 듯이 달려들었다. 갑자기 온몸으로 풍랑의 포효를 느끼고 싶어 심호흡을 하는 순간, 동행했던 친구가 그녀의 손을 잡고 뒤로 물러섰다. 날개를 크게 펼치고 다가왔던 파도가 바로 눈앞에서 그녀를 응시하다 사라졌다. 그녀도 두려움에 더 가까이 갈 수는 없었다.      

품으로 달려들다 휩쓸려 뒤 돌아가는 파도를 오랫동안 지켜보고 싶었다. 그녀도 누군가에게 그렇게 달려들어보고 싶었다. 그럴 때 그녀에게 두려움을 느낀 상대가 한 발 물러서는 것을 보고 싶었다. 그때 보았던 성난 파도를  다시 기대하며  바다 마을 후포항을 찾았다.


이틀이 지났지만 기다리던 비 대신 연일 폭염이 이어졌다. 한낮에는 뙤약볕을 피해 집 앞에서 멍하니 바다를 바라만 보았다.  유튜브에서 흘러나오던 애절한 파디스타의 목소리가 습한 바닷바람에 실려 바다를 향해 가다 갑자기 멈췄다.  풍랑에 남편을 잃고 울부짖는 어부 아내의 노래 파두를  잔잔한 파도 위에 흐르게 하는 것은  마치 거친 파도를 불러내기 위해 주술을 거는 것 같아 그녀는 유튜브를 꺼버렸다.  강렬한 태양아래  파도를 잃어버린 요염한 바다에서 호드리게스가 부르는 파두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것 같기도 했다. 한낮의 바다는 여전히 미동도 없이  뜨거운 정오의 햇살에 눈부셔하고 이른 새벽을 열었던 공판장도 밤배를 보낼 채비를 위해 잠시 휴식을 하고 있었다.


장마가 올 때면 후포항은 오징어잡이가 활기를 띤다. 장마에 이어 폭풍까지 겹치면 조업을 멈추어야 한다며 민박집주인 남자는 매일밤바다로 떠났다. 어렵게 잡은 휴가인데 그녀는 하루도 비 오는 바다를 볼 수가 없었다. 내리쬐는 태양에 지친 바다는 물결도 없이 머문 채로 매일 저녁을 맞이한다. 늦은 밤이면 간혹 더위를 식힌 밤바다가 그녀를 불러냈다. 어김없이 오징어 배의 불빛이 멀리에서 그녀를 맞이했다. 주인 남자는 여느 때와 같이 점심을 서둘러 먹고 항으로 나갈 준비를 했다. 아내가 남편을 붙잡고 당부를 한다.


‘ 저녁부터 큰비가 온다고 하는데 오늘은 나가지 말고 하루 지켜보는 게 어때요 “

’아 언제는 비 온다고 바다에 안 나갔나. 이제 장마가 시작되면 당분간은 못 나가니 웬만할 때 부지런히 해놔야지.”


 남자는 걱정하는 아내를 피해 그녀를 바라보고 인사처럼 대꾸하며 건장한 뒷모습을 남기고 사라졌다. 아내는 일상처럼 그런 남편의 등 위에서 미소로 배웅했다. 사랑과 신뢰가 담겨 있는 눈빛에는 든든한 남편에 대한 아내의 과시가 보였다. 왠지 그녀의 마음이 쓸쓸해지며  문득 자신의 결혼에 대해 상상을 해본다. 이내 멋쩍은 웃음으로 잠시 출렁거리고 있는 바다로 눈길을 돌려 주시했다. 다른 날보다는 바다의 물결이 크다고는 느꼈지만 곧 다가올 밤바다의 움직임은 눈치채지 못했다.


늦은 오후부터 바다는 더욱 깊고 검게 변해갔다. 몰려오는 검은 구름 탓이라고 생각했다. 민박집과 어우러져 한 폭의 풍경화가 되었다. 그녀는 기다렸던 모습을 놓치지 않으려고 연신 사진을 찍어댄다. 오랜만에 해를 가린 구름이 그녀의 머리 위에서 따라다녔다. 어느새 지친 구름이 잔 비를 내리기 시작하자 이내 바다는 시야에서 희미해지고 습기 찬 그녀의 얼굴로 장대비를 퍼붓기 시작했다. 양철 지붕에 떨어지는 빗소리에 주인집 여자가 우산도 없이 달려 나왔다.

“내가 이럴 줄 알았다니까. 벌써 멀리 나갔을 텐데 그냥 돌아왔으면 좋겠네...”


이들 부부가 후포항에 들어온 것은 불과 5년 전이었다. 혼자 오징어잡이를 하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그 일을 이어받기 위해 울진 시내에서 이사를 했다. 아내의 남편은 어려서부터 아버지와 배를 타고 나가 오징어잡이를 해 왔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면서 아내와 아이를 위해 울진으로 나가 살았다. 처음에는 남편이 울진에서 후포항을 오가며 생활했지만 아버지의 노환으로 날이 갈수록 혼자 바다에 나가는 횟수가 많아지면서 혼자 후포항에 머무는 날이 많아졌다. 아이들이 남편을 찾을 때마다 그 핑계로 남편을 보러 왔지만 실은 바다에 나간 남편의 안부가 궁금해서였다. 비바람이라도 불면 불안함에 시도 때도 가리지 않고 울진에서 차를 몰고 와서 남편을 직접 봐야 안심이 되곤 했다. 이런 아내를 위해 남편은  후포항으로 함께 들어가자고 제안했다.

보육교사였던 아내는 어부의 아내로 산다는 것이 마음이 내키질 않았다. 어린이집 원장을 꿈꾸며 어렵게 쌓아 놓은 경력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도 마음이 허락하지 않았다. 남편은 아내의 선택을 존중하겠다며 한발 물러서는 눈치였지만 계속 남편을 바다에 혼자 보내 놓고  떨어져 지낼 수도 없었다.  남편에 대한 배려와 사랑은 결국 자신의 꿈을 접은 아내를 항으로 불러들였다.


새벽에 돌아오는 오징어 배의 공판장 일은 언제부턴가 그녀의 몫이 되었다. 처음 공판장에 나가던 날,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자신에게 쏠리는 것 같았다. 바다 냄새가 아직은 익숙하지 않은 아내의 서툴고 어색한 행동을 다른 어부의 아내들이 함께 보듬어 주었다. 오랜만에 공판장에 새로운 인물이 들어온 것을 축하한다며 진한 믹스 커피 한잔을 치켜들기도 했다. 아내는 동창들에게 한동안 자신의 일을 숨기기도 했다. 그랬던 아내가 지금은 만선으로 돌아오는 남편의 오징어 배를 맞이하러 매일 새벽 4시면 항으로 나간다. 간혹 다른 배의 오징어보다 더 좋은 값에 넘겼다고 으스대기도 한다. 긴 고무장화를 신고 검은색 비닐 앞치마로 무장을 한 아내가 새벽 불빛처럼 웃는다. 그렇게 매일 새벽에 맞이하는 남편이 늘 반갑고 고맙다고 했다. 검은 밤의 망망대해에서 밤새도록 바다와 사투를 벌이는 남편을 그녀는 하루도 걱정 없이 기다린 적이 없었다.


아내의 앞마당에서는 한밤중이면 멀리서 반짝이는 오징어 배의 불빛을 볼 수 있다. 여러 개의 오징어 배 불빛이 선명한 맑은 날에는 그나마 걱정이 덜 했다.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이면 비에 젖어가는 바다는 오징어 배의 불빛을 삼켜버린다. 그럴 때마다 아내는 사라진 먼바다의 불빛을 눈과 마음으로 쫓아가며 새벽 4시가 되기를 기다렸다. 그런 날은 빈 배로 돌아와 멋쩍어하는 남편을 더 반갑게 맞이했다.


5년 차 어부의 아내는 오늘 밤도 새벽 4시까지 불빛 사라진 바다를 향해 방문을 닫지 않았다. 간혹 몰아쳐 들어오는 빗물을 닦아내는 것이 그녀의 방에서도 보였다. 눈물을 닦아낸다고 생각했다.

이런 비의 속도로는 풍랑을 기대할 수 없다.  현실에서 맞이 한 부부의 바다는 그녀가 기대했던 환상 속의 바다와는 전혀 다른 삶의 의미로 다가와 그녀를 부끄럽게 했다. 화를 풀기 위한 바다의 거친 파도가 부부에게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일상에 품고 사는 찰나의 운을 짊어진 삶이었다.  어부는 성난 바다에 겸손하고  잔잔한 바다에 감사한다. 어부의 바다에서 뒤틀린 마음을 풀어보려 파도를 기다린 자신의 오만함이 지금 저 아내에게 이 상황을 만들어 준 것은 아닐까 하는 죄책감이 들기도 했다.  

어부의 아내를 보며, 후포항 이른 새벽 남편의 무사 귀환을 기다리는 어부의 아내들을 보며 그녀는 지난 풍랑의 거센 파도를 기억에서 내보내기로 했다. 밤을 끌어안고 애태우는 어부의 아내 그들의 바다에는 파도가 없기를 기원했다. 비 탓인지 오늘은 밤새도록 후포항에 불빛이 꺼지지 않았다. 새벽은 아직 요원한데 남편의 옷을 챙겨 든 아내가 벌써 후포항을 향해 급하게 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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